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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Feb 06. 2024

순진했던 난 이제 없어!

22년 전 그 사표, 나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순진했던 난 이제 없어!          

다 속았어

매그니피코는 선한 사람이 아냐

난 봤거든


왕의 진짜 모습     

두고 볼 순 없어

순진했던 난 이제 없어    

 

나는 사랑에 눈 멀어

결국 모든 걸 모른척했었어

더 이상 두고, 두고, 두고

볼 순 없어 두고 볼 순 없어   

  

뮤지컬 애니메이션 <위시>에서 주인공 아샤와 친구들이 함께 부른 노래 가사 중 일부다. 소녀 아샤는 매그니피코 왕이 사람들의 소원을 접수해서 사기친다는 사실을 알아챈 후 가만히 있지 않기로 한다. “순진했던 나는 이제 없어”, 떨쳐 일어나 친구들과 함께 행동해 버린다. 왕비 아마야까지 “사랑에 눈이 멀어 모든 걸 모른척했다” 각성하곤 남편이 아니라 민중의 손을 잡는다. 작고 평범한 사람들이 작은 별에게 소원을 빌고 별과 함께 소원을 이루는 판타지다.     

 

시공간의 한계도 없지, 악당도 처단하지, 소원을 이뤄버리니 판타지가 나는 참 좋다. 디즈니 100주년 기념작이라 캐릭터들도 모두 '디즈니스러워' 낯설지가 않다. 아샤와 아마야에게 감정이입하면서 매그니피코에게도 공감하는 나는 뭘까? 그 기시감, 그 현실감, 내 인생에도 매그니피코가 여럿 있었기 때문이겠다. 22년 전 그때도 지금 아는 이걸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느닷없는 예감의 밤 이후 나는 사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뼈를 묻겠다며 충성을 맹세하던 단체를 이렇게 쉬이 떠나고 싶을 줄 몰랐다. 엄밀히 말해 나는 사표 낼 주체가 아니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집에서나 단체에서나 기도하고 상담하고 성경 가르치고 밥하고 섬기는 일을 했지만, 월급 없는 그림자 노동자였다. ‘동역자’ 또는 ‘사모’ 노릇에 갇혀 언어도 없었다. 이유를 설명할 순 없었지만, 이참에 좀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다.

       

A의 뜻을 따르기엔 우리 생각이 많이 달랐다. 변하는 시대와 역행하는 지도자를 지키겠다고 토론도 개혁도 없는 길을 가고 싶진 않았다. 반면 우리 견해를 드러내면 우리 지부도 결국 분열을 경험할 것이었다. 20명대 작은 공동체가 주고받을 상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도저히 못 할 짓이었다. 교회사를 보며, 종교개혁의 결과가 개신교라지만 그 과정과 결과도 개혁적인지 우리는 질문하지 않았던가. 결국 우리가 조용히 단체를 떠나 제3의 길을 가는 선택지뿐이었다.    

   

덕과 나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사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좀 막막해도 나에게야 새로운 시작일 수 있지만 덕에게는 실직한 중년 아저씨가 되는 길이었다. 자비량 선교사로 버는 족족 선교사업에 쓰다가 수고한 모든 걸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왔건만 또 선택의 기로였다. 하기야 안정된 삶 따위 애시당초 우리와 인연이 멀었다. 겨우 얼마전에야 4대 보험과 퇴직금 적립이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애 셋 데리고 쥐꼬리 월급 150만원 받으며 살아온 우린데 백수라고 못 살 이유가 뭐겠나, 허세가 좀 필요했다    


       

‘사표’라 쓰고 '토사구팽'이라 읽는다     


사표 수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002년 8월 마지막 일요일, 주일예배 설교를 마친 덕이 사표를 공지하고 덧붙여 못박았다. 공동체의 그 누구도 우리를 따라오는 걸 원치 않으며, 우리만 조용히 떠나는 것이라고. 단체 돌아가는 걸 인터넷으로 파악하고 있어서인지, 공공체는 생각만큼 술렁이진 않았다. 본부에 사표를 제출하니 약속이 잡혔다. 강남의 한 고급 식당으로 우리를 초대한 이는 선교 본부의 A가 보낸 B였다. 대기업인 그의 직장 근처 잘 아는 장소를 잡은 모양이었다.    

  

“살고 있는 집 전세금에 포함된 5백과 현금 5백을 합쳐 퇴직금을 갈음한다. 산정 범위는 폴란드 선교사 생활을 4년으로 계산하고 귀국 후의 기간을 합쳐 10년으로 한다. 피치 못한 퇴사이니 실업급여 받을 수 있게 단체가 처리해 준다. 단, 그 금액도 퇴직금에 포함된 것으로 본다....”     


이런 요지로 마무리됐다. 82년 대학 1학년 가을 한 발을 들여놓은 후, 3학년 가을 두 발을 다 들인 곳. 사명, 사명, 그 하나에 붙들려 이리저리 쓸려다닌 청춘이었다. 자아도 자기도 잊고 과몰입 헌신한 끝엔, 환송회도 감사예배도 친구도 존엄도 없었다. 이것 먹고 떨어져라, 건조하고 조잡 계산만 있었다.     

   

모멸감이랄까, 모욕감이랄까, 돌아서 나오는데 내 속에 이물감이 있었다. 살면서 그렇게 화려한 식당에서 밥을 먹은 건 처음이었다. 공간과 음식에 어울리지 않게 대화는 얼마나 쪼잔하며 우리 모습은 또 얼마나 후줄그레했던지. B는 왜 우릴 그런 곳으로 불렀을까. 수고했다거나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는 사표처리였다.      


B와 잠시 만났던 시간조차 비현실처럼 느껴졌다. 그 허접한 숫자놀음을 감히 우리 청춘의 가치와 연결할 순 없었다. 그랬다, 다 상관없다는 기분,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은 차가운 맘으로 돌아섰다. 인간과 인간으로 연결된 게 아니었구나, 사람과 사람으로 만난 게 아니었구나, 확인하는 자리였다. 조직의 방향과 생각이 다른 우리는 토끼잡이 쓸모를 다 한 개, 사표는 번역하면 '토사구팽'이었다.    

  

애니메이션 속 아샤와 아마야는 매그니피코를 두고 보지 않고 처단했지만 22년 전 숙이와 덕이는 매그니피코를 떠나는 길을 택했다. 거대 종교 권력이라는 매그니피코, 가부장적 위계질서라는 매그니피코, 두려움이라는 매그니피코... 속았구나 깨달았지만 대항해 싸울 생각까진 못했다. 선량한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소심한 이유였다. 부끄럽지만, 돌아볼 때 그건 40년 인생에서 내 마음을 따른 첫 선택이었다. 윗선의  뜻을 거역하는 인생 결정이었다. 순진했던 난 이제 없어! 바로 그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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