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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Feb 17. 2024

두 번은 없다, 자유와 연대의 나라 폴란드

보고 싶은 내 친구 아시까에게


보고 싶은 내 친구 아시까(Johanna)에게    

      

요즘 나는 날마다 폴란드 앓이를 하고 있어. 보고 싶고, 그립고, 가고 싶고, 거듭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구나. 무슨 단어로 내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썼다 지우고 또다시 써 봐도 역시 언어가 모자라는구나. 모국어도 이럴진대 폴란드어로는 오죽할까. 너무 오랜만이야 아시까.     


우리가 못 본 세월이 벌써 28년이라니. 

    

2020년 1월에 주고받은 메일이 마지막 소식이었구나. 그때 한 치 앞을 못 보고 드디어 폴란드에 간다고, 비행기표도 샀다고, 사흘이 멀다 하고 네게 썼더랬지. 2월 17일에 베를린 도착하고 20일 바르샤바로 가서 27일에 떠난다는 계획으로 날마다 지도를 들여다보았더랬지.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그러나 코로나가 숨통을 조여오더구나.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없었어. 여행은 취소되고 비행기표도 날려버린 게 어느새 4년 전 일이구나.      

 

아시까, 보고 싶은 친구야, 우리가 다시 만나 포옹하기까지, 부디 건강하자꾸나.


아프던 허리는 어떤지, 하던 일은 그대로인지 궁금하구나. SNS로 너희 식구들을 가끔 보고 있어. 우리가 거기 있을 땐 배구를 잠시 떠나 있던 야첵이 배구팀 감독으로 계속 일하는구나. 아다가 결혼해 아이를 낳았고 아빠처럼 스포츠 일을 하는 게 보기 좋구나. 아냐는 개성을 발휘해 문화 전문 방송인이 되었네. 아냐 모습을 방송에서 나도 본단다.     


폴란드를 떠나 올 때 4살이던 우리 큰 놈직장일로 미국에 가 있어. 3월 말 와서 결혼식 하고 파트너랑 같이 간대. 사라는 로스쿨 3년을 마쳤고 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 한국에서 태어난 요나단은 야첵처럼 운동을 잘해. 중학교 체육 선생님으로 첫 출근을 앞두고 있지. 다니엘도 나도 이제 거의 은발인 거 알아? 다니엘은 목회를 계속하고 나는 작가로 활동가로 신나게 살고 있어.      


     



폴란드는 내게 무엇이었을까?  

      

나는 폴란드와 사랑에 빠진 사람인 거 알지?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사랑하는 나라, 부를수록 더 그리운 이름 폴란드야.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폴란드어만 하던 우치 어학학교 시절이 그립구나. 거기 1년은 나와 다니엘이 폴란드 ‘어린이’로 거듭나는 시간이었지. 슬라브어 특유의 발음과 격변화를 다니엘은 좀 어려워했지만 나는 신나게 즐겼어. 이런 핀잔을 들을 정도였지.     


수업 시간에 당신 질문 좀 안 하면 안 돼?"

"잘 못 따라가는 사람들 생각도 하며 살살하면 어때?"

"알아듣지도 못하는 사람은 어쩌라고 선생님하고 떠들며 폭주하냐고.”

     

심지어 어학 시작 달 만에 나는 임신한 몸이 됐어. 입덧에 수업 멀미에 힘들었지만 멈출 수 없었지. 나는 수업을 완주하고 폴란드어와 폴란드 역사 두 과목 모두 최고 점수를 받고 졸업했지. 그 후 바르샤바로 이사해서 15개월 터울로 둘째를 낳았어. 다니엘은 노동비자를 받고 한국회사에서 일했고 나는 두 아이 독박 육아하는 아줌마로 살았지.     


입덧으로 죽을 둥 살 둥 씨름하던  기억이 하나 나네. 한국에서 우편물이 왔는데 C의 사모가 메모 편지를 적어 보냈더구나. “입덧 좀 한다고 절대 죽지 않습니다. 깨어 영적 싸움을 하고 폴란드 캠퍼스 제자양성에 충성하기 바랍니다.” 죽지 않는대. 그땐 왜 그렇게 내 가슴에 뾰족하게 꽂히는지 잘 몰랐어. 서늘한 느낌만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느껴지니?

 

우리가 처음 만난 와지엔키 공원도 그립구나. 훤칠한 키에 아름다운 눈을 가진 네가 아다를 걸리고 아냐를 유아차로 밀며 다가오더구나. 나는 사라의 유아차를 밀고 있었지. 내 곁에는 마르친이 유아차에 묶인 띠를 잡고 걸었어. 아냐와 마르친은 같은 두 살배기였지만 연년생 동생을 둔 마르친은 걸어서 산책을 했지. 네 눈길이 띠를 잡고 걷고 있는 마르친을 놓치지 않더구나.    

  

“멋있구나! 동생하고 둘이 다 타기엔 유아차가 너무 작았지?”    

 

 따뜻한 목소리였어. 우리는 다로 금방 친해졌지. 너는 내 인생에 찾아온 천사였단다. 오직 사명, 사명, 하나님의 영광, 그런 거대한 이름 말고 사람 얼굴로 다가온 천사였지. 아무 이념도 목적도 앞세우지 않은 만남이었어. 너는 결혼한 아줌마로서 내가 사귄 첫 아줌마 친구였다고 하면 말이 될까? 다시 말해, 봄날의 조우, 거였어.   

  

아시까, 낯선 나를 지나치지 않고 말 걸어준 것 정말 고마워. 바르샤바를 떠날 때까지 나와 우리 가족과 친구해준 것 참 고마워. 너의 언어, 너의 문화, 네 음식과 돌봄까지 나눠주며 곁에 있어 준 거 고마워. 아이들 넷이 왁자지껄 노는 대가족이 되곤 했지. 사명도, 선교사도, 목자도, 사모도 아닌, 데보라와 아시까로, 자유와 연대로 만난 우리였지.      


그땐 다 몰랐지만, 그건 삶의 방향전환이었더구나. 폴란드에서 폴란드 사람과 어울려 사는 삶. 익숙하던 것들이 낯설어지고  내 안의 편견이 깨지는 복된 경험었지. 너하고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부부 사이도 달라지고 있었단다. ‘목자님’, ‘선교사님’ 대신 데보라와 다니엘, 이름우린 서로를 부르게 됐어. 폴란드어를 말할수록 존댓말도 사라져갔지. 그래, 사명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풀려졌던 정체성에서 바람이 빠져나가고 사람의 언어가 들어온 거였어.        


   



두 번은 없다, 그래서 나는 모른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1996년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Maria Wisława Anna Szymborska)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거 기억하지? 폴란드 시인이라 나도 기뻐 박수를 쳤어. 수상 소감에서 이 시인은 영감에 대해서 말했어. 영감보다 “나는 모른다”라고 말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하더구나. 그게 우리를 호기심으로 날아오르게 하는 힘이래. 이게 어디 시인에만 해당되는 말이겠니?   

   

너와 함께 나도 그런 생각 했었거든. 나는 폴란드를 몰랐으니까. 폴란드가 “나는 모른다”를 가르쳐 주었나 봐. 이전에 내가 믿고 있던 것들이 결코 영원불변의 진리가 아님을 알게 해 주었지. 내가 아는 게 쓸모없는 게 많더구나. 나는 거기서 외국인이자 이방인이자 아이로 다시 살기를 배운 셈이지. 나를 통제하는 이도 지시하는 권력도 거긴 없었어. 스스로 다시 배우는 길, 자유와 연대의 나라 폴란드가 날이 갈수록 좋아지더구나.

        

사랑하는 친구 아시까, 너를 그리며 나는 지금 우리가 함께 찍은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고 있단다.


1996년 4월 우리가 한국으로 떠나오던 날 바르샤바 공항에서 찍은 사진이야. 우리 가족을 환송하려, 폴란드에서 함께 했던 가장 가까운 벗들이 모인 사진이지. 내 친구 아시까가 두 딸 아다 아냐와 함께 섰고 마르친과 사라를 돌봐 주던 한나 밥챠(할머니)도 보이지. 나를 살뜰히 아껴준 두 사람이지. 나와 함께 성경 공부도 하고 예배에도 오던 대학생들도 왔지. 이자, 라덱, 그리고 그의 친구. 사라는 할머니 손을 잡았고 나는 아냐의 손을 잡고, 다니엘은 마르친을 안고 있구나. 사진 속 내 표정을 봐. 폴란드를 떠나기 싫어 며칠밤 울며 잠을 설친 내 얼굴, 웃을까 울까 애매한 표정이 그때의 내 심정을 보여주고 있구나.


삶은 모르는 것. '믿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안다고 믿으려 애쓴 시절이었구나.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수록, 나는 모른다,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구나.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남겨둘 수도 있지 않을까 아시까. 그래서 또 부끄러움만이 내 몫이 되는구나.


우리가 함께 한 시간에 감사해 아시까. 그때 나를 도와주며 폴란드를 게 해 준 것 정말 고마워. 익숙한 것들은 흔들고 깨뜨리며 내가 모른다는 알게 한 시간이 고마워. 지금도 분명한 건 “나는 모른다”, 그래서 지금 여기가 새롭고 고맙고 아름답구나. 바르샤바를 흘러나온 강물이 거기로 되돌아 흘러가법이 듯, 내게 삶은 매일 새롭게, 번이 없구나. 사랑한다 친구야! 아무런 연습도 준비도 없었지만, 똑같은 밤은 없었어. 언제나 새로운 오늘이 고맙구나. 두 번은 없다, 그치?


친구야, 우리 조만간 보자꾸나.


  



두 번은 없다 Nic dwa razy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023-2012)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는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하루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야속한 시간,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두려움을 자아내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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