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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Mar 14. 2024

새 천년 새 희망 하프타임, 내 이름은 프리랜서

가정환경 조사서에 아빠는 ‘목회자’, 엄마는 ‘작가’라 쓰게 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희망의 새천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새해에 여러분 모두가 복 많이 받으시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지나간 천년은 인간과 자연, 강자와 약자, 남성과 여성, 동양과 서양이 서로 대립하던 갈등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새천년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실현될 수 있는 희망의 시대입니다. 새천년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 남녀평등의 실현 속에 평화와 인권과 정의 등이 지구촌의 보편적 가치로 정착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2000년 새해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은 ‘희망의 새천년’이란 말로 시작했다. 남녀평등의 실현, 인류 보편적 가치 실현, 지식혁명 등, 귀를 기울이며 가슴으로 들었다. ‘패러다임 변화Paradigm shift’와 ‘여성의 시대’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집으로 배달되는 여성신문을 읽으며 ‘여성’에 주목했고 깊이 알고 싶었다. 나는 생물학적으로만 여자였지 그때까지 한 번도 여성됨 주목한 적도 희망적으로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새천년 새 희망은 정치적 수사나 구호로만 들리지 않았다. 내 안에 알 수 없는 일렁임이 있었다. 그건 변화와 새 희망에의 갈망이었고 잠자던 내 영혼을 깨우알람 소리였다.        


        

줌마네 자유기고가 과정 1기     

     

가부장적 기독교라는 골방에 살던 내게 여성신문은 바깥으로 난 창문과도  같았다. ‘여성’이라는 화두는 창으로 비쳐 드는 햇살이었다. 나는 스프링처럼 튀어올라  밖으로 나가고 다. 남성의 돕는 배필이나 그림자 말고 인간 여성들로 가득한 새 세상을 보게 되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버지니아 울프, 마리아 미즈, 또 하나의 문화, 이효재, 장필화, 한국염, 고은광순… 여성신문에 나온 인물을 공부하고 책을 읽었다.


여성신문 광고를 보고 2001년엔 ‘줌마네 자유기고가 과정 1기’에 등록했다. 줌마네는 여성학을 공부한 이숙경, 로리주희 등 ‘아줌마들이 만든 아줌마 단체’였다. 아줌마로 10년이 넘었지만 내게 아줌마는 ‘멸칭’으로 들리던 때였다. 그런데 그들은 아줌마 됨을 긍정할 뿐 아니라 아줌마들에 의한 아줌마들을 위한 아줌마들의 공동체로 아줌마들의 자립까지 돕고 있었다. 골방 예수쟁이 아줌마와 열린 세상 ‘페미니스트 아줌마들’의 역사적인 조우였다.

 

자유기고가 과정 1기의 목표가 “아줌마가 글쓰기로 돈 벌기”였다. 내가 서울까지 도전한 건 바로 이 카피 때문이었다. 나는 정말 글을 쓰고 싶었고 돈도 벌고 싶었다. 무급 그림자 노동만 죽어라 하던 내가, 글쓰기로 돈도 번다니,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거긴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이 위계 없이 친구가 되는 공간이었다. 스트레이트 기사, 인터뷰 기사, 매체 글쓰기, 기획 기사 등, 배우는 즐거움에 8주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줌마들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올리는 게 강좌 마무리 과제였다. 2001년 11월 내가 올린 첫 글 ‘안 먹어도 걱정, 다 먹어도 걱정’을 잊을 수 없다. 초보의 글에 "느낌과 사실을 구별해라", "취재가 부족한 글이다" 폭풍 같은 댓글이 달렸다. 몸이 떨리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렇게 시민기자요 자유기고가로 호되게 신고식을 치른 , 이듬해 4월 기획기사 ‘환락가 모텔에서 보낸 하룻밤’ 등으로, 연말에 ‘올해의 시민기자 상’ 받았다.  


              

현타의 순간, 닥치는 대로 읽고 썼다          


2002년 하반부터 숙덕은 애 셋 딸린 중년 백수부부였다. 무슨 대단한 하나님의 종이랍시고 참 뜬구름을 좇았구나, 현타가 오는 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백수 부모에겐 아직 세 돌이 안 된 껌딱지 막내도 있었다. 내가 프리랜서로 원고료 받는 글 한 꼭지라도 집중하자면 덕은 막내를 돌보고 놀아줘야 했다. 가끔은 흥부가족처럼 초라해 보였지만, 아이들의 생명력은 부모의 부족함을 넘어 무럭무럭 밝게 자라갔다.    

 

가진 게 워낙 없어서 잃을 건 별로 없었다. 우리에겐 엄청난 시간이 주어졌고 자유가 주어졌다. 현타는 괴로웠지만 새로운 성찰과 발견의 복이기도 했다. 그래, 자유를 누려야 새로운 생각도 나오는  거야, 우리는 일단 자유가 절실했다. 양을 ‘돌보는’ 일도, 주일 예배도, 설교 준비도 없어 좋았다. 우선 손에 집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무더기로 빌려다 쌓아놓고 서로 먼저 보겠다며 읽는 게 하루 일과였다.     

 

궁금하던 대하소설 《토지》, 《태백산맥》, 《아리랑》을 읽을 땐 밥 먹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였다. (후에 기다렸다가 《한강》은 사서 읽었다.) 90년대 전반의 한국사회에 관해서도 공부했다. 80년대 센터에서 ‘금서’로 치부되던 《야훼의 밤 1,2》를 다시 읽었다. 선교단체의 권력 암투가 르포처럼 잘 그려졌지만 여성은 보이지 않았다. 조성기는 남성작가니까. 언젠가 나는 여성의 목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쓰겠구나 예감했다.

       

여성신문을 통해 ‘한국 여신학자협의회’와 연결되어 여성 신학을 통신 과정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내가 배워온 성경해석이 전부가 아닌 걸 말해 뭐 하랴. 세상은 넓고 공부할 건 많고 배울 사람도 많았다. 나는 여신협 회원이 되어 다양한 교파의 여성 사역자들과 교제하고 독서의 폭이 더 넓어져갔다. 학위는 없지만 ‘삶의 여신학자’로서 스스로 성서를 새롭게 연구하게 됐다.     

 

나는 프리랜서가 좋았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프리랜서 예수따르미’라며 한국교회를 둘러볼 수 있었다. 대형교회는 물론 작은 교회, 여신협 회원 목사의 교회, 다양한 교파, 성당, 그리고 구세군 교회에도 나갔다. 구세군 사관이 될까도 했지만 사관학교를 둘러본 후 마음을 접었다. 가정사역 단체에서 공부하고 글도 썼다. 조정래 작가 강의에선 빨갱이몰이 당한 이야기가 내 청춘의 경험과 비슷해 놀라며 들었다.



전반전 끝, 하프타임 좋아!

    

어느 날 《하프타임》이란 책이 손에 들어왔다. “지금 당신에겐 작전타임이 필요하다”라는 카피대로 피터 드러커가 추천한 자기 계발서였다. 석 달 만에 5쇄를 찍을 정도로 당시 잘나가던 책이라 숙덕도 읽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야말로 계획에도 없던 작전타임에 들어와 있음을 보게 되었다. 전반전을 정리하고 후반전을 준비하자고, 우리는 '하프타임'을 닉네임으로 쓰게 됐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믿고 살았는가?

내가 믿은 것들은 어떻게 나를 배반했는가?

전반 40년이 남긴 문제는 무엇이고 결실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고 싶은가?

그런 삶을 위해 무엇을 배우고 무얼 바꿔야 하는가?     


마흔에 바다를 보며 우리는 질문을 마주했다. 전반전 40년을 단번에 정리하긴 어려웠다. 그걸 읽어낼 눈도 언어도 우리에겐 없었다. 분명한 건 우리에겐 하프타임이 필요하고 작전을 새롭게 짜야한다는 것뿐이었다. 전반전이 40년이었으니 후반전도 40년이라 치면, 하프타임은 몇 년을 할애해야 할까? 4년? 아니면 8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일단 하프타임을 가진다, 그리고 후반전은 다르게 살자, 그게 방향이었다.  

    

눈과 귀를 더 열어 공부하는 게 작전타임의 핵심이었다. 이전에 알던 것들에게 배신당했기 때문이리라. 그러자면 밥벌이가 해결돼야 했다. 실업급여가 끊어지기 전에 우리는 가정교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이들 친구들과 이웃 아이들을 대상으로 나는 영어를 덕은 수학을 가르쳤다. 우리 아이들은 피아노 태권도 외엔 학원도 과외도 안 하면서 남의 애들 사교육해서 돈 받는 게 좀 찔리긴 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했던가, 작전타임이니 타협하기로 했다.     

 

그 모든 게 은총의 도우심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덕은 후반 인생과 사역의 그림을 신학대학원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하며 다시 그리기로 했다. 나는 무엇을 하든 작가로 살고, 그 길에 필요한 공부를 했다. 닥치는 대로 읽었고 강의를 들었고 글쓰기 강좌에 나갔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져오는 가정환경 조사서에 아빠는 ‘목회자’, 엄마는 ‘작가’라 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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