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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Mar 15. 2024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초등학부모 노롯하다 아이들과 함께 배운 경험 하나 공개한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지?      


이 질문이 나를 훅 덮쳐오면 나는 속수무책 흔들리곤 했다. 내가 옳다고 믿은 것들이 나를 배신했을 때 그랬다. 나를 알지도 못하는데 자신을 부인하는 것부터 배운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럼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이냐. 그것이 문제였다. 내가 나답게 못 사는데 아이들을 어찌 나답게 살도록 키울 수 있겠는가. 부모 노릇은 그래서 도전이자 기회였다. 아이들 덕분에 엉터리 부모가 다시 배우고 자라는 기회였다.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싶지?     

 

큰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수록 부모로서 마주하는 질문이었다. 하프타임으로 백수 부모가 되고 아이들은 정신없이 커가니 왜 아니겠나. 잘 뛰어놀고, 운동하고, 책 읽고 수다 떨고, 이 정도로 족한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입시 지옥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싶지? 우리의 정황과 맥락에서 우리 다운 길을 만들어야 했다. 우리는 학원·과외 없이 공부하는 원칙을 아이들과 합의했다. 돈 많은 부모가 될 가능성 제로인 우리가 세 아이를 사교육으로 키울 가능성도 제로라고 봤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이렇게 키우고 싶었다.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도록, 자기 문제는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하도록, 자기 의견을 말하고 주장할 수 있도록. 부모가 할 일은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게 전부였다.  

   

내게 아이들은 가장 큰 도전이자 늘 큰 선생이었다. 나는 세 아이 엄마로 아이들과 함께 배우며 나를 알 수 있었다.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며 엄청난 '스팩'의 사람이 되었다. 양육자, 보모, 돌보미, 상담가, 친구, 의사, 간호사, 복지사, 놀이지도사, 영양사, 임상심리사, 조리사, 토론진행자, 침묵으로 가르치는 선생, 말하기 선생, 글쓰기 선생, 영어 선생… 얼마나 풍요로운 부모교육인가.

  

초등학부모 노릇하다 아이들과 함께 배운 경험 하나 공개한다. 22년 전에 쓴 글인데 존대말이 너무 낯설다. 그때만 했는지 글로만 그리 쓴 건진 나도 모르겠다.    

    



아이들과 함께 읽고 쓰고 배우기

-《나답게와 나고은》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부모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사노라면 아이들에게서 배워야 할 때가 참 많다. 컴퓨터는 말할 것도 없지만 생각하는 것도 그렇다. 나는 늘 내가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보면 아이들이 나를 가르치는 경우가 있다. 새 학기면 4학년이 될 아들 훈이와 3학년이 될 딸 지야. 이들과 내가 최근 함께 읽고 쓴 경우도 그랬다. 그중 아이들이 독후감을 쓴 《나답게와 나고은》(김향이, 사계절)과 함께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답게 나고은     


나답게는 열 살 남자아이, 나고은은 일곱 살 여자아이다. 답게 아빠와 고은이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결혼해서 둘은 남매가 되었다. 답게가 어릴 때,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책은 엄마 없이 살던 답게가 어떻게 엄마와 여동생을 얻게 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갈등을 겪고 어떻게 이겨 가는지 주인공 답게가 화자가 되어 풀어간다.     


"나는 나답게 살아야"한다는 뜻의 이름 나답게. 이름처럼 답게는 엄마가 없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빠의 사랑 속에 '나답게' 잘 자라왔다. 그러나 갑자기 생긴 일곱 살짜리 동생 고은이가 어른들의 사랑을 다 차지하는 거 같으면서 그의 괴로움이 커졌다. 아직 어린 답게는 자신과 아주 다른 고은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답게와 고은이만이 아니다. 자기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특히 나처럼 자기중심적이고 엄숙한 어른에게, 날마다 새로운 아이들은 큰 도전이다.  

  

"세 권 중 제일 짧아서 그걸로 쓰기로 했어요."

독후감을 쓰기로 한 날 훈이가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알고 있었지만 녀석은 책 읽기에 비해, 쓰는 건 즐겁지 않다는 얘기였다. 이런 아이들 때문에 어떤 집은 따로 논술과외라는 걸 시키는 걸까(그런 게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어떤 식인지는 모르겠다). 짧은 거 긴 거 따질 때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글로 쓰는 즐거움을 알게 해 주고 싶었다.  

   

우리의 학교교육에서 생각하는 힘, 쓰는 힘이 부족하다는 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들이 쓰기를 하긴 한다. '독서 기록장' '일기장'등이 그걸 말해준다. 그러나 검사를 위한 글쓰기, 숙제로 내 준 양을 채우기에 급급한 글쓰기가 아이들에게서 재미를 앗아가는 걸 보아왔다. 재미있는 책을 읽고도 재미없는 글쓰기를 하는 아이들을 구원할 길로 생각한 게 독서감상문대회에 응모하는 것이었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우선 몇 권의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는 재미가 있었다. 아이들의 속생각을 표현하도록 대화하는 즐거움,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도록 말동무가 되어주는 즐거움. 아이들의 순수한 생각에 여지없이 깨지는 나의 낡은 교과서적 사고. 거기다가 아이마다 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큰가에 이르러 나의 즐거움은 거듭 증폭되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   

  

"그래, 너는 무슨 얘길 쓰고 싶니? 뭐가 기억에 남아?"

"답게는 괜찮은데 고은이가 너무 맘에 안 들어요."

멋진 교훈적인 얘기가 나올 걸 기대했던 나는 내심 움찔하며 아이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래? 고은이가 어때서?"

"너무 건방지고 답게를 화나게 했잖아요. 식구들도 모두 자기만 사랑하게 만들었고. 답게가 가출해서 맛을 보여 줬어야 하는 건데…"     


훈이가 제 또래인 답게와 자신을 동일시하리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너무 놀라운 말을 쏟아놓았다. 고은이가 한 말과 행동들을 떠올리며 나는 훈이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들어야 했다.

"오빠는 몇 살이야? 난 일곱 살인데."

"아저씬 우리 엄마가 더 좋아요? 제가 더 좋아요?"

"그럼 저 오빠랑 나랑 누가 더 좋아요?"…     

처음 답게네 집에 와서도 고은이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할머니께 말해서 답게가 심부름을 하게 했다. 함께 살게 됐을 땐 사사건건 고집을 부리고 떼를 써 답게의 미움을 샀다.     


'그래도 그렇지 고은이를 미워할 거까지야. 넌 엄마 아빠가 다 있으니 모를 거다. 엄마와 살아온 아이의 숨은 아픔을. 아빠와 오빠가 생겨서 얼마나 좋았으면 그렇게 행동했을까. 재혼으로 만난 아빠와 엄마, 새 가족이 서로를 알아가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상상해 볼 순 없겠니. 답게 아빠 성을 따라 '민미나'에서 '나고은'이 되는 길에 놓여있는 호주제…' 훈이에게 반박하고 싶은 말들이 내 속에서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아이가 말하도록 나는 닥치고 들어야 했다.     


"그럼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대목은 어디야?"

"답게가 등산학교에서 등산한 거요."

가족의 소중함이니, 새로운 가족 개념이니 하는 얘기는 역시 내 생각일 뿐, 갈수록 태산이었다.

"등산하는 장면이 제일 멋있다는 거야?"

"응. 답게가 도전해서 이긴 거 말이요."

"도전하고 이겼다? 멋진데? 근데 작가가 등산 얘기하려고 이 책을 쓴 걸까?"

"답게가 거기서 뭔가 생각하고 결국 이긴 걸 말하고 싶었겠죠."

"뭘 이겼는데?"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과의 싸움? 와! 그 말 좀 더 풀어서 해볼래?"

"고은이를 엄청 미워했는데 나중엔 그 애를 진짜 동생으로 느끼고 사이가 좋아졌잖아요. 그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거라 생각해요."     


   

내 마음은 살짝 복잡했다     


아이들의 맘속을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대화 시간이 길어지는데 훈이 눈은 점점 빛이 났다. 답게가 고은이를 미워하며 갈등할 때 자기도 많이 괴로웠나 보다. 동생들과 함께 살면서 자기도 그런 자기 싸움을 했다는 말인지…     


훈이가 책상 앞에서 신나게 쓰고 있을 때 지야가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왔다.

"나답게와 나고은에서 너는 뭐가 제일 맘에 들었어?"

"답게도 좋고 고은이도 좋은데 고은이가 더 맘에 들어요."

같은 책 같은 인물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은 작정이라도 한 듯 달랐다. 무슨 얘기가 계속될지 기대되지 않는가.

"그래? 고은이의 뭐가 맘에 들었어?"

"고은이 성격이요. 낯선 사람 만나서도 우물쭈물하지 않고 말도 잘하고 어른들하고도 금방 친해지는 게 좋았어요."     


역시 복잡한 가족관계에서 뭔가 나오길 요구하진 말자고 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들었다.

"그래? 고은이를 잘 이해했구나. 고은이가 미운 점은 없고?"

"나는 낯선 사람들이랑 얘기하면 그냥 네 네, 할 때가 많잖아요. 하긴 고은이가 오빠한테 너무 심하게 하는 점도 있었지만. 하여간 고은이 성격이 좋아. 편지 쓸래요."

"그래. 네가 쓰고 싶은 게 그렇다면 그렇게 해."     


그래서 딸의 독후감은 나고은에게 쓰는 편지글로 정해졌다. 쓰기 전에 아이는 고은이의 좋은 점을 한참 더 얘기했다. 낯을 좀 가리고 수줍음을 타는 자기와 달리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 고은이의 말과 행동이 그렇게 좋았을까. 내 마음은 살짝 복잡했다. 딸이라고 얌전하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혹시 내가… 아냐…, 아이 성격이 다른 걸 거야. 제 오빠와 남동생이랑 셋이서 놀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잖아…    

 

두 아이들은 그렇게 자기가 맘에 드는 식으로 독후감을 썼다. 자기 생각들을 정리하고 얘기한 뒤라선지 원고지 6매를 후딱 채워버렸다. 각자의 마음을 잘 표현한 글이라, 단락이며 반복되는 문장 빼는 것 말곤 손봐줄 게 없었다. 이렇게라도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걸 배운 결과물로 우리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독후감대회에 응모했다.     


"아주 수고했네. 그래 독후감 써 보니 어때?"

둘 다 이메일로 글 보내기를 마쳤을 때 내가 슬쩍 물어보았다.

"아주 재미있었어요, 엄마."

"좋았어요. 어떻게 쓰는 건지 좀 알 거 같아요."

와, 재미있었다니 얼마나 듣고 싶던 말인가. 나의 생각 속에 도전해 들어온 녀석들 덕분에 내겐 몇 배 더 재미난 시간이었다.  (02.02.22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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