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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Mar 18. 2024

여그 여그 수놈들 좀 많이 보내 봐

인류 최초의 사회복지사는 예수가 아니었을까?, 사회복지사 시절의 단상들


나는 2004년 말부터 2015년 초까지 사회복지사로 직장생활을 했다.


2급 사회복지사로 1년 일한 후 국가시험을 합격해 1급 자격증도 받았다. 여성 쉼터에서 시작해 노인복지, 통합사례관리, 그리고 장애인 복지를 거쳤다. ‘대학생 선교’ 깃발만 따라다니던 전반기와 전혀 다른 모양의 하프타임이었다.

     

인류 최초의 사회복지사는 예수가 아니었을까?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동안 내가 종종 하는 생각이었다. 오늘의 언어로 '사회복지 대상자들'을 예수는 하나님의 형상이자 친구로 어울렸기 때문이다. 약자더러 강자에게 머리 조아리고 복종하게 하는 건 결코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 내가 인생 40년 동안 배운 게 알고 보니 강자의 역사요 승자의 기록이었다. 


나는 날마다 내담자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고 상담했고 복지 자원을 연결했다. 그들 중 하나가 되어 공감하며 웃고 떠들었다. 운전해서 출장을 다녔고 교육을 받았고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과외 아르바이트는 그만두었고 퇴근 후에는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주말엔 벗들과 작은 공동체 예배를 하고 같이 밥을 먹었다. 그리고 틈날 땐 책을 읽었고 글을 썼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쓴 단상을 조금 옮겨 본다. 40대인 내가 60대를 보며, ‘젊디 젊은’이라더니, 내가 지금 그 나이가 되었다. 경로당에서 할머니들께 들은 이야기를 끝까지 왜 글을 저래 마무리 했을까, 지금 보니 아쉽기 그지없다. ‘휘발유’ 이야기가 전혀 기억이 안 나게 될 날이 올 줄 그땐 몰랐겠지.  


                       




달콤 쌉싸름한 노인취업 이야기     


“예, 센터장님 지난번 말씀드린 P아파트 상가 청소직 사람 어떻게 됐어요?”

“아 네, 아직 못 구하셨어요? 어쩌나 며칠 됐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있는 사람은 힘들어하고 사장님들은 60대 초로 바꿔 달라 하고… 좀 해결해 주셔야죠.”     

사람이 없어 민망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용역회사 사장은 아이처럼 떼를 쓴다. 1790세대에 입주 5년 된 깨끗한 아파트단지. 30개 상가가 입점한 3층 건물 청소 자리다. 교통이 외진데다 월급 65만 원에 토요일 오전 근무까지 해야 한다. 좋은 조건이 아니니 소개하는 내 마음이 즐거울 리가 없다.   

  

‘노인취업’이라지만 갈수록 구인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센터의 구직자 연령 하한선은 만 60세다. 60대 초반 어르신들은 내가 봐도 젊디 젊다. 저런 초임에 토요일까지 일하는 조건이라니, 내 마음은 불편하다. 팍팍한 현실을 인정하며 나는 또 열심히 밀당을 할 수밖에 없다.     

 

“사장님, 연령대를 60대 후반까지 높이면 안 될까요? 70대 어르신도 일 잘하는 분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러고 싶지만 상가 사장님들을 이길 수 없어요. 지금 일하는 분이 64세인데도 힘들어해서 그래요.”

“아이고 사장님, 어르신들 개인차가 얼마나 많은데요. 연령 문제가 아니라 근무조건 때문은 아닐까요? 청소만 하는지, 다른 잡무는 뭐 해요?”


구인처는 내 질문엔 관심이 없다. 지금 청소하는 분이 종이박스 정리로 불평한다, 청소 상태가 만족스럽지 않다, 등등. 구인 전화를 받을 때마다 반복되는 상황이다. 노인취업이란 게 용역회사를 통한 간접채용이 대부분인 게 현실이다. 계약 기간은 짧고 업체가 바뀔 때 고용승계도 잘 안 지켜진다.

    

어쩌다 밀린 월급도 못 받고 일자리를 잃는 경우를 볼 때면, 내 복잡한 심기는 극에 달한다. 취업 어르신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듣기도 하지만, 이게 과연 노인복지 맞나 질문하지 않을 수 다. 내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올 초 복지관 청소하던 분이 퇴사할 때도 그랬다. 몇 달 월급이 밀리고서야 업체의 부도사실을 알게 된 경우였다. 돈을 어떻게 받을지 고민하며 나를 돌아보던 그 눈동자….

  

노인취업지원이라지만 업체의 이윤추구를 돕는 마름 노릇 같다면, 너무 심한가?       


          

공동작업 부업하는 노년여성들    


여기는 할머니 회장님과 할머니 회원들남은 안산의 한 경로당이다. 부업을 하고 싶다는 어르신들의 요청에 따라 내가 일감을 대준 후 한 주만에  경과를 보러 왔다. 경로당 공동작업은 장소 선정도 일감 선택도 간단하지 않다. 회원들이 함께 하는 공동작업 관리도 그렇다. 다행히 이곳에선 연착륙이었다.

   

이곳에서는 ‘플라스틱 부품 조립’이 한창이다. 스프레이에서 물이 칙칙 나오는 구멍 쪽에 쓰이는 작은 부품들을 조립하는 일이다. 약간 뾰족한 부품을 동글납작한 부품에 끼워 넣으면 끝이다. 한 개 끼우면 2원. 할머니들도 금방 손에 익어 돋보기 없이도 하니 단순한 작업이다. 끼우기 전 뾰족한 부품 끝에다 윤활유 묻히는 것만 안 잊으면 된다.    

 

“처음 배우는 게 어렵지 손에 익으믄 다 해. 시간 잘 가고 좋아.”

한 분이 일하는 모양을 자랑하듯 내게 보여 준다. 나는 양쪽 손을 반듯하게 하고 두 모서리 잘 맞게 하시는지 살핀다. 두 놈이 마주 보니 잘 맞는 거라고 칭찬해 준다.

“나이 먹으믄 손이 짝짝 안 맞는다니께. 그래도 요건 하겄구먼. 재미있어야.”

나도 잘 하신다며 추임새를 넣는다. 할머니들은 서로 확인하며 보여주며 서두르는 법이 다.


파란색 부품 세 개로 구성된 건 하나에 3원이다. 파란 마개 끝 쏙 들어간 부분에 하얀색 동글납작한 부품을 끼우고 뒤집어서 하얀색 길쭉한 걸 하나 더 끼우면 끝이다. 역시 윤활유를 잊으면 안 된다. 빨간색보다 살짝 어려워 역할을 분담하기도 한다. 파란색에 ‘ON’ ‘Off’ 글자가 있는데 색깔 구별이 안 될 수 있다. 연세 많고 눈이나 동작이 어려운 분은 하얀 거 하나만 계속 끼워 넘긴다.     

 

“많이 하려들 말고 불량 안 나오게 찬찬이 혀들.”

“이건 일도 아녀. 나는 요거 간단한 것만 하면 되지야?”

“아이구 형님, 고걸 뒤집었응께 안 들어가제. 요렇게 하는 거라니께.”     

“잘하는구먼. 그렇지, 그렇지.”

“젊을 때 나도 부업 참 징하게 했구먼. 이젠 힘들다야.”

   

     

여그 여그 수놈들 좀 많이 보내 봐.     


“여그 여그 수놈들 좀 많이 보내 봐. 없어야.”

한 분이 팔이 안 닿아 부품을 좀 건네달라고 소리치자 온 방 어르신들이 왁자하게 웃는다.

“아따 수놈이라 혔어?”

“맞어, 야들 수놈 암놈이라 부르는 겨. 요렇게 뾰족하게 생겼으니 수놈이고 요건 납작하게 생겼으니 암놈이제. 안 그려?”

“어메~ 우리 경로당에는 사람도 수놈이 없는디 요것들도 수놈이 모지래야? 하하하.”

“그렇제. 수놈이 늘 문제여. 영~~ 모지래. 이짝으로 좀 많이 밀어줘 봐.”

“그렇구먼. 요것들 만져 봐, 딱딱헌 거이 찌르구먼. 만져 보랑께?”

"그라이 수놈이지. 그게 힘이 없이모 어따 쓴다노 마!"     


개그 배틀이고 웃음 난장판이다. 내겐 해학의 인생 학교요 글쓰기 교실이다.

“그러니께 여 봐라. 지름을 요렇게 발라야 수놈이 암놈 속으로 쏙 잘 들어가제.”

 접시에 담긴 윤활유를 찍으며 또 한 분이 소리치니 기다렸다는 듯 다들 웃는다.

“그렇제잉. 나이 먹으믄 지름을 좀 발라 줘야 잘 되제.”

“젊은 선생님 계신데 할망구들이 별소리를 다 허제?”

“아이구 김 선생님도 다 알아들으시는데 먼 소리하고 있디야.”    

 

와하하 웃는 할머니들 사이에서 나도 맞장구를 치며 거든다.

“맞아요 어머니. 다 알아들었고 말고요. 잘 새겨들어야 저도 나중에 써먹죠.”

“그려그려 나도 옛날에 들은 거 갖고 시방 써먹고 살어. 내친김에 옛날얘기 하나 더 허까? 들어봐잉. 어느 집에 며느리가 봉께 부엌에 둔 지름병이 자고 나면 줄고 자고 나면 줄고 하더랴. 고거 참 희안허다 허고 어느날 밤에 작정하고 지름병을 지켜봤다잖어. 그랬더니 글씨, 시아버지가 밤에 살금살금 와설랑 지름을 덜어 가더라는 거 아녀. 워따 썼을까?”     


어르신들 또 박수를 치며 자지러지게 웃으신다.

“그거 뿐이간디? 휘발유 얘기는 왜 안 혀?”

“고마 그거는 담에 하라카이.” 또 깔깔깔 웃음보따리가 터진다.

“아따 됐응께 여그 여그 수놈이고 암놈이고 좀 많이 보내 주라니께~ 다 줄었어야.”

그리고 결국 휘발유 얘기도 하셨는데… 차마 글로 못옮기겠다. 내가 나이를 조금 더 먹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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