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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Mar 19. 2024

아티스트 웨이, 나는 예술가

창조성은 신의 선물이자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바쁘신 중에도 대단하신 정열이십니다. ^^ 문학강좌도 짬 내서 들으시는 걸 보니 이 책을 한 번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은근 도움이 되더라고요. 《아티스트웨이》, 영화감독 마틴스콜세지의 전 부인이 쓴 책이죠… 일반인, 비전공자에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책장사 아닙니다. ㅎㅎㅎ”

“우와 '책장사 아닌' 먼지깡통님 반갑습니다. 오늘 도서관 가는 날이에요. 책 추천 고맙고 말고요. 꿀벌이 꼭꼭 보겠습니다!!”     


줄리아 캐머런의 책 《아티스트웨이》가 내 블로그 댓글로 올라온 건 2011년 7월이었다. (당시 나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자 오마이블로거로 글을 썼다. 오마이블로그는 2018년 말 서비스가 중단됐다.) 나온 후 8년에 9쇄를 찍은 베스트셀러였다. 바로 대출해 읽고 사서 밑줄 치며 또 읽었다. 그건 책이 말한 ‘동시성의 경험’― 사건들이 우연히 맞물려 일어나는 경험―이었다. 내게 필요한 용기, 듣고 싶은 말, 내 고민과 통찰들을 책에서 그대로 만날 수 있었다.

      

줄리아 캐머런은 소설가, 시인, 영화감독, 작곡가, 저널리스트 등 다방면의 예술가요 30년 넘게 ‘아티스트 웨이’(The Artist’s Way Course) 창조성 워크숍 강연자다.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이지와 결혼해 <뉴욕 뉴욕>, <택시 드라이버>의 각본을 공동 집필한 후 이혼했다.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아티스트’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아티스트 웨이≫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변화의 여왕’이라 불리고 있다. 영화 <신의 뜻 God’s Will>으로 감독상도 수상했다. <황금의 맥 The Vein of Gold> <글을 쓸 권리 The Right to Write> <어두운 방 Dark Room> 등 수많은 픽션과 논픽션을 썼다.   


             

나는 예술가다     


“당신의 작품이나 자신을 쉽게 재단하지 마라.”

“예술을 만들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창조주의 손과 만나게 된다.”

“창조성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나는 예술가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응원하는 목소리였다. 창조성과 창조주, 그리고 예술가는 하프타임에 내게 필요한 새 언어 꾸러미였다. 내 안에 있는 어린 아티스트와 만날 수 있었다. 여리고 상처받기 쉽고 무시당하기 쉬운 예술성. 응석 부릴 기회도 갖지 못한 어린 예술가를 어떻게 지지할 것인가. 예술은 그래서 영적인 행위였다. 인간의 이성과 지성이 닿을 수 없는 거기서 창조주와 만나는 거룩한 행위로 나는 예술가 정체성과 만났다. 크리스천, 목자, 사모, 사회복지사, 엄마 등 이전의 어떤 정체성보다 예술가 정체성이 나는 좋았다.

 

나는 더 용감하게 나를 예술가로 여기게 됐다. 내가 잘나서 예술가란 말이 아니라 내 속에 이미 있는 창조주의 창조성이 그렇게 이끌 것을 믿어서였다. 어린 예술가를 살리고 창조성을 발휘하게 하는 힘은 창조주를 믿는 믿음과 닿아 있었다. 나는 자신을 열어 내 안의 어린 예술가가 맘껏 뛰노는 걸 지켜보기로 했다. 그건 나 같은 어린 아티스트들을 응원하는 연대요 기도이기도 했다.      


≪아티스트 웨이≫ 덕분에 나는 고단한 일상 속에서 나만의 예술 행위를 계속할 수 있었다. 나는 예술가니까. 나는 ‘모닝페이지’로 글을 썼고 나만의 ‘아티스트 데이트’를 사랑하게 되었다. 아티스트 웨이는 물론 개고생의 길이기도 했지만, 나를 더 넓고 깊은 영적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꿈을 좇으면 거룩함에 다가간다     


‘모닝페이지’란 매일 아침 의식의 흐름대로 3쪽 정도로 글을 쓰는 행위였다. 잘 쓰고 못 쓰고 상관없이 페이지에서 페이지로 써내려 가며 움직이는 손동작을 뜻한다. 어떤 내용이라도, 아주 사소하거나, 바보 같고 엉뚱한 내용, 멋있는 내용, 밝은 내용, 과격한 내용 어떤 것이든 쓰는 것. 나와 창조성 사이에 있는 글쓰기였다.    

 

모닝페이지를 쓰는 이유는 ‘다른 한쪽 면에 이르기 위해서’라 했다. 글을 쓰며 나는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안에 있는 두려움과 부정적인 사고를 넘어 다른 통찰에 가 닿을 수 있었다. 일단 쓰면 나를 공격하는 비판적 목소리를 이길 수 있었다. 내 속의 아티스트는 아직 어린아이였기에 잘 키우고 돌보아야 했다. 나를 들여다보는 글쓰기가 어린 아티스트를 자유롭게 뛰놀게 했다.

     

내 안의 어린 아티스트와 ‘아티스트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다. 나만의 시간, 내 안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나만의 통찰력과 영감을 소중하게 여기게 됐다. 매주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을 나의 창조적인 의식과 내 내면의 아티스트에게 할애하려 노력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나의 창조성이라는 어린아이와 놀았다. 산책, 운동, 미술관, 영화관 등, 이 아이하고 단 둘이 지내는 게 즐거웠다.

     

내가 예술가라 여기니 내 안의 어린 예술가를 사랑할 수 있었다. 무엇이든지 직접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보고, 건드려 보는 걸 즐기게 됐다. 마법을 생각하고 판타지도 좋아졌다. 의무적으로 하는 일 보단 재미로 호기심으로 끌리는 대로 가게 나를 놓아주었다. 어린 아티스트니까.   

 

창조성의 10가지 원칙 중 5번과 10번이 내게 특히 인상적이었다.

“창조성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창조성을 사용하는 것이 신에 대한 답례이다.”

“창조적인 꿈과 열망은 성스러운 원천에서 나온다. 꿈을 좇으면 거룩함에 다가갈 수 있다.”

놀랍지 않은가. 자유로운 예술가의 길은 하나님과 더 깊이 연결되는 길이었다. 야호~





작가의 길, 개고생의 길     


“나는 왜 이렇게 사서 개고생을 할까?”     


세 번째 소설수업을 하고 분당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생각했다. 막차 타려면 10시 10분 전에는 자리를 떠야 하는데 합평은 끝날 줄 몰랐다. 혼자 부시럭대며 나와 달리자니 아이들 말로 ‘개고생’이었다. 내가 쓴 글이 그렇게 형편없다니, 몸과 맘이 더 피곤했다. 간신히 10시 10분 안산행 버스에 앉을 수 있었다.     


“엄마, 수인이랑 인명이 우리 집에서 같이 자도 되지?”      

중2 막내가 보낸 문자였다. 보낸 시각이 9시 59분. 짜식 진작진작 해야지 지금 이러면 어쩌란 말이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안돼. 왜 미리 말 안 했어. 지금 가서 너네들 챙기고 아침 준비하기엔 엄마가 피곤하고 너무 늦단 말이야. 맨날 보는 친구들이니 다시 날 잡아. 알았지?…”

미안하다면서도 유쾌하게 우기는 녀석 목소리엔 곁에서 거드는 두 친구들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나는 단호한 엄마, 양보할 수 없었다. 녀석은 풀 죽은 목소리가 되는가 싶더니 막판 반전을 노렸다.     


“그럼 어젯밤에 친구 데려온 형아는 뭐야 엄마?”

“형아도 아니긴 했지만 그럴만하기도 했어. 어젠 엄마가 정상 퇴근했잖아. 지금 가면 엄마 너무 늦잖아. 오늘은 안돼. 아빠 있는 날 다시 잡아 봐.”

“아빠 없는 날이니까 하는데? 재밌잖아. 그냥 우리가 알아서 할게 엄만 신경 안 써도 돼.”

“야, 말이 되냐. 엄마가 아들 친구들 아침도 안 주고 어떻게 출근하냐. 애들 돌려보내.”     

가뜩이나 아빠까지 3박 4일 출타 중이라 내가 더 피곤한 걸 모르는 아이였다. 아무도 없는 집에 막내를 방치한 게 괴로운 엄마 맘을 자식이 알 턱이 없지. 엄마는 오케이 할 줄 알았나 보다. 동네 친구들인데, 매몰차게 거절한 게 내 맘에 걸렸다. 에잇, 다른 날 잡으면 잘해 주지, 나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상록수란 소리에 벌떡 깼다. “엄마 친구들이 아침은 안 먹어도 된대. 아침에 엄마 출근하고 나면 우리가 알아서 할게.” 내가 잠든 사이에 문자가 또 와 있었다. 질긴 놈들! 엄마 의견 무시하고 지들 뜻대로 결국 밀고 나간다 이거지? 내가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다시 우기기엔 너무 늦은 밤이었다. 약한 게 엄마 마음. 갑자기 손님 대접할 모드로 기분을 빨리 전환해야 했다.    

 

집 앞 가게에 들러 애들 좋아하는 것들 사들고 낑낑대며 집에 왔다. 이건 뭐지? 친구들은 보이지 않고 막내는 자고 있었다. 고3 누나가 10시 반에 왔을 때도 자더란다. 오호, 알겠다. 녀석들 미련이 남아 다시 문자를 보냈고 엄마한테서 답은 안 오고. 에고… 엄마는 버스에서 곯아떨어진 거였다. 녀석 삐진 게 틀림없다.


식탁 위엔 찐 감자가 말라비틀어지고 있고 싱크대엔 냄비며 그릇들이 뒹굴고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녀석들 먹으라고 만들어 놓고 간 음식들이 그냥 있었다. 난장판 방에 녀석이 자고 있었다.

“야! 라면 끓여 먹었으면 설거지도 했어야지~”

잠든 놈을 향해 목소리를 좀 앙칼지게 뱉어 보건만, 힘없는 허공의 메아리였다.     


나는 씻지도 않고 바로 노트북을 열었다. 밤 11시 40분. 숨을 고르며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도대체 나는 왜, 도대체 왜 이런 개고생을 사서 하고 다닐까?”

중국 속담이 생각났다. “호랑이에 관한 책 100권 읽은 사람보다 호랑이한테 한 번 물린 사람이 호랑이를 더 잘 안다.” 첫 단편 과제를 쓰고 합평했을 때 기분이 딱 호랑이한테 물린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호랑이는 모르겠던걸? 나는 정말로 글을 쓰고 싶은 걸까?…     


“오 엄마 아직 안 잤네? 오늘 글쓰기 어땠어?”

대학생 큰 놈이 들어오며 물었다. 아들의 관심에 나는 급 기분이 좋아졌다.

“응. 니들 말로 개깨졌지.”

“왜 엄마? 뭐랬길래?”

“응, 그니까… 뭘 얘기하고 싶은지 핵심을 모르겠다. 사실을 쓴다고 소설이 되는 게 아니다. 사실을 가져와서 주제를 중심으로 편집해야 한다. 많이 썼지만 주제의 구체성이 없다. 독자가 이 인물을 이해하겠냐 등등. 한마디로 엄마 글이 개쓰레기라는 소리였어.”

“우와 대단했네.”

“그렇지? 그래서 개빡치고 개유익했어.”  

   

아~ 그래. 개깨지고 개유익했으니 이제 개편히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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