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 작은 아들네로 가는 밀양엄마, 8월에 안산 딸네로 오는 영덕엄마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가 이틀이 지난 일요일 오후, 긴장이 풀리고 한 주간 쌓였던 피로감에 졸음이 막 몰려오는 시간이었다. 침대에 벌러덩 누워 잠시 꿀잠을 자고 나니 기분이 개운했다. 물 한잔 마시러 부엌으로 가는데 엄마 방에 엄마가 안 보인다. 봐주는 사람도 없이 “한국인의 밥상” 방송만 흘러나오고 있다. 화장실에도 없다. 3층 현관문이 열린 게 보인다.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 교회 건물 밖으로 나가보았다. 다행이다. 예상대로 엄마는 교회 주차장 한쪽에 놓인 화분들 앞에 쪼그리고 앉아 채소를 솎아내고 풀을 뽑고 있었다. 왜 말도 없이 혼자 나왔냐고 나는 화를 내며 잔소리한다. 엄마는 기분 좋게 웃으며 하던 일을 계속한다. 나는 그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몇 장 담아 우리 다섯 남매의 대화방에 올렸다. 다들 반가워하며 좋아했다. 엄마는 돌아와서 손을 씻고는 낮잠을 청했다.
두세 시간쯤 흘렀을까? 또 엄마가 혼자 사라졌다. 역시 밖으로 나가는 문이 열려 있었다. 내려가 보니 엄마는 교회 문밖에서 문을 열기 위해 번호키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엄마는 비번을 모를뿐더러 알더라도 조작이 어렵다. 말도 하지 않고 나간 엄마가 괘씸해서 잠시 그냥 몰래 지켜보았다. 엄마는 당황한 얼굴로 계속 번호키를 만지작거렸다. 전화기도 안 가지고 나갔으니 나를 부를 수도 없다. 문을 열어 주니 엄마는 환하게 기쁜 얼굴이 되었다.
“엄마, 왜 또 나왔어?”
“교회 건물 주변에 있는 잡초 뽑았지.”
“엄마, 걸음이 불편한데 혼자 계단 내려가다가 넘어지면 어떡하려고 그래?”
“괜찮다. 그 정도는 혼자 할 수 있다.”
“여긴 밀양 시골집이 아니라 서울이야. 교회 앞에 차도 지나다니고 혼자서는 위험해. 그러니 나가고 싶을 때는 나랑 같이 나가, 알았지?”
“그래, 알았어.”
집 앞에 나가는데 무슨 아들 허락을 받고 나가나 싶을 것이다. 걸음이 불편하지만 그 정도 자유는 누리고 싶을 것이다. 밀양 시골집처럼 마당이 있는 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배추, 무, 고추, 들깨 등 온갖 채소들을 가꾸며 익숙하고도 자기다운 여름을 보낼 수 있을 텐데.
그날 저녁 영덕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금방 받았다.
“여보세요. 어머니”
“응, 목사님이네.”
“병원에 계신다고 들었어요. 컨디션은 어떠세요?”
“서 있으면 어지러워서 넘어질 것 같아서 말이야. 요양보호사를 불러 병원에 입원 좀 시켜달라고 했지.”
“잘하셨어요.”
“사돈어른은 잘 계시는가?”
“예, 걸음이 불편한 것 말고는 다 좋아요. 정서적으로 편안하고 식사를 맛있게 잘하세요.”
“사돈은 복이 많아.”
“서울 생활이 불편한 것 많을 텐데 어린아이처럼 잘 지내요.”
“그게 복이지.”
“어머니 서울 오고 싶죠?”
“그렇고말고.”
“이제 한 달 남았어요. 7월 말에 밀양 엄마가 창원 동생 집으로 내려가면 어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올게요.”
“목사님, 그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예, 어머니, 한 달 훅 지나갈 거예요. 그때 만나요.”
영덕 엄마는 몸이 많이 약해진 최근 수시로 노인병원을 드나든다. 다행히 집 가까이에 노인전문병원이 있다. 심장과 신장의 지병 때문에 먼 길 여행은 무리라며 엄마는 영덕을 떠나지 못했다. 지난 3월 우리 집 큰아들 결혼식과 4월 처형 딸 결혼식에도 못 갔다. 오늘은 그래도 목소리만큼은 아픈 사람 같지 않다. 8월이면 안산 둘째 딸 사위네 갈 기대로 설레는 목소리였다. 최소한 일 년에 한 번은 서울로 아들 며느리 딸 사위와 손주들을 보러 나들이하던 엄마인데. 얼마나 오고 싶을까.
숙과 내가 엄마에게 권하길 잘했다. 용기를 내어 서울 여행해 보자고, 딸네 집에서 생활해 보자고. 이제 치료는 어렵고 관리만 하는 노환인데, 얼마나 될지 모를 시간을 무료하게 보낼 순 없지 않냐고. 즐겁게 지내면 몸이 더 좋아질 수도 있다며 말이다. 엄마는 처음에는 사양하는 듯했다. 장거리 여행 무리라면서. 그러나 질문하고 강권하자 당신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했다. 고맙다고, 우리가 제안하는 대로 하고 싶다고 말이다.
한 달 혹은 더 길게 영덕 엄마와 한집에서 지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가 본 적 없는 길이라 다 알순 없겠다. 결혼한 이후 나도 숙도 양가 시골집에 길게 머문 적이 없고 두 엄마도 우리 집에 다니러 오면 며칠이 전부였으니까. 그러나 벌써 2년을 석 달 교대로 밀양 엄마와 한 집에 살고 있다. 밀양 엄마 창원 내려가면 영덕 엄마를 모셔오려 한다. 낯선 길 새로운 재미가 있을 것이다. 두 분 성격이 다른 만큼 삶도 다를 것이다.
인생살이, 계산이 필요하지만 너무 많은 계산은 안 하는 게 좋다. 밀양 엄마와의 여름이 가면 영덕 엄마와의 여름이 올 것이다. 7월 말 작은 아들네로 가는 밀양엄마, 8월에 안산 딸네로 오는 영덕엄마. 영덕 엄마는 자식 집에 지낼 기대만으로 이미 행복해 보인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최고의 선물을 드린 셈이다. 주어진 현실에서 이게 두 엄마에게 최고의 여름 나기라 본다. 우리 부부에게도 그럴 것이다. / 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