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 수풍댐 아래서부터 단둥까지 유람선 타고 흘러갔다
백두산 천지 해맞이 여행 3일 차, 9월 29일 이른 아침에 길림성 집안시 호텔을 나서서 버스로 5시간을 달렸다. 광활한 만주를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린 셈이다. 점심을 먹고 다시 버스로 수풍댐 아래까지 가서 배를 타고 단둥까지 압록강을 따라 서쪽으로 흘러갔다. 우리를 내려준 버스는 단둥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압록강물은 홍수로 황토색이었다. 강가엔 큰 물에 쓸린 흔적이 아직 그대로 있었다. 그 강물 위를 배로 흐르며 건너편 북한 땅을 바라보는 기분은 낯설었다. 한 민족이란 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오갈 수도 없고 제3 국에서 건너다보는 땅. 쌍안경으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 역시 낯설고 불편했다. 분단으로 우리 민족은 도대체 무슨 영화를 보고 싶은 걸까?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1907년 일본과 청나라 간에 맺은 간도협약(間島協約)으로 두만강과 압록강이 지금의 국경이 되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경계란 이처럼 인위적인 것이었다. 그 이전엔 조선 사람들이 두만강 이북으로 많이 오가며 살았다는 말이다. 국경이 되었다는 말은 간도와 만주 땅에 대한 청나라의 영토권을 인정했다는 말이고, 특히 간도에 많이 사는 대한제국 사람들이 '조선족'이 되었다는 말이다.
압록강을 따라 단둥에 가까워올수록 북한 쪽 땅이 도시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신의주는 고층빌딩이 나날이 늘고 있단다. 공사 중인 건물들도 많이 보였다. 강물은 중국과 북조선을 나눌 수 없음에 틀림없었다. 남북한을 나누는 경계가 압록강에서는 무슨 의미란 말인가. 배에서 중국 사람이 파는 북한산 담배를 다섯 갑 샀다. 경계를 허무는 맛으로. 단둥에서 내려 압록강변을 거닐고 압록강 물에 발을 담가 보았다.
민족, 나라, 이념, 국경...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경계선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