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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Oct 16. 2024

만주와 간도가 물었다, 내가 가고 싶은 새로운 길을

3박 4일의 첫날은 '만주와 간도, 그리고 새로운 길'로 요약하겠다

1. 2024년 9월 27일 일정 요약


인천공항에서 9시 탑승수속, 중국 시각 10시 50분 연길 공항 도착. 보고 싶던 연변조선족자치구, 과연 중국 속 조선이었다. 병기된 한글 간판 때문에 낯설지 않았다. 33명 여행단은 버스로 이끄미 강주원 교수의 해설을 들으며 이동했다. 만주벌판은 과연 광활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옥수수밭이 인상적이었다. 1시 넘어 늦은 점심, 2시 6분 버스 출발, 두만강 공원 찍고 봉오동 전투지 일광산에서 두만강과 북녘 땅을 내려다본 후 용정으로. 송몽규 윤동주의 묘소에 오후 4시 반에 도착했다. 백두산 천지 해맞이 여행, 3박 4일의 첫날은 '만주와 간도, 그리고 새로운 길'로 요약하겠다.



2. 내가 가고 싶은 새로운 길


윤동주 묘소에서 <자화상>과 <별 헤는 밤>이 낭송됐고 내가 마지막으로 <새로운 길>을 낭송했다. 나는 계속 딴생각을 좀 했다. 윤동주와 송몽규 말고도 만주와 간도에서 활약한 여성 독립운동가 이름을 부르고 싶은 목마름이었다. 남자들만 다뤄지는 역사, 그건 새로운 길이 아니었다. 윤동주는 어떤 '새로운 길'을 꿈꾸었을까? 나는 왜 새로운 길을 노래하지? 윤동주는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평등한 세상, 남성만 아니라 여성도 중요하게 말해지는 세상을. 내가 간절히 보고 싶고 가고 싶은 새로운 길이었다. 


만주와 함께 기억해야 할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불러 본다. 영화 <암살>의 모델인 '여자 안중근'이라 불린 저격수 남자현, 만주 독립투사들의 의식주를 도운 허은, 독립운동가 이원일의 딸 이해동, 임시정부의 여성 핵심 인물 이화숙, 남편 따라 영사 부인으로 만주 가서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나혜석....  


새로운 길/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3. 강주원 교수의 안내 멘트 발췌


낮 12시 5분~ 

우리는 만주와 간도(북간도) 한복판을 1시간 넘게 왔다. 시간이 미뤄져서 봉오동 전투 현장 가려했는데 입구만 보게 됐다. 지금 만주벌판을 달리고 있다.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마지막 장면에 최민식이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있는데 이게 맞을까? 봉오동 전투는 6월이었다. 만주는 옥토였고 1920년 30년대 세계 식량 창고였다. 사람들 일송정 왜 안 가지? 한다. 선구자? 민족문제연구소가 제기한 바에 따르면 선구자는 원래 일본군가였다. 작사작곡자가 모두 친일파다. 박정희가 좋아했다. 리영희 장준하는 이 노래 안 불렀다. 


사람들은 명동촌 윤동주 생가를 많이 가더라. 우리는 묘에 간다. 한국 사회에서 윤동주 삶은 일본에 머물러있더라. 일본 감옥에서 죽었다. 


12시 27분~ 

《토지》에 묘사된 간도 땅을 달리고 있다. 윤동주, 송몽규, 서희와 길상, 김좌진, 안중근이 다닌 땅이다. 도문 쪽으로 가고 있다.


1시 05분~

도문에 들어왔다. 한국의 DMZ 안이라 보면 된다. 고속도로, 비닐하우스, 아파트 등등이 있다. 식당도 DMZ 안에 있다고 보면 된다. 북한과 중국의 일상이 있는 국경이다. 북한은 남양 중국은 도문. 30년간 언론이 왜곡 보도 많이 해서 중국과 북한이 민감하다. 송일국이 학생들 데리고 와서 '애국가' 불렀다. 보수 단체들이 수없이 그러니 제제가 생겼다. 광화문에서 일장기 흔들면 어떻겠나?


4시 19분~

송몽규 윤동주 묘가 용정에 있다는 걸 모르는 경우 많더라. 1945년 2월에 윤동주의 아버지는 용정을 떠나 길림- 선양을 거쳐 일본으로 갔다. 유골함을 가지고 배를 타고 부산으로 와서 경성을 거쳐 원산- 회령으로 25시간 기차 타고 왔다. 삼성봉역. 두만강 건너 용정 무덤에 안치했다. 두만강에서 50킬로 떨어져 있다. 용정은 1900년대 초 기독교의 메카였다. 선교사들 많이 있었다. 


4시 33분~ 버스 내려 한 시간 정도 송몽규 윤동주 묘소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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