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작품 중 최고의 강추 작품은 <딸에 대하여>라 말하고 싶다
매년 1월 첫 주는 지난 해와 새해가 겹쳐 돌아가는 시간이 아닌가 한다. 해는 바뀌었지만 아무래도 다이어리를 살피며 지난 시간을 정리하는 때 같다. 기록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이어리에 엉성하고 구멍이 너무 많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매년 같은 아쉬움을 느끼고 비슷한 결심을 하며 살고 있다.
작년 한 해 읽은 책과 본 영화를 제때 정리하지 않은 게 가장 큰 아쉬움이다. '이프'와 '백합과 장미' 그리고 '별을 품은 사람들'에서 토론한 작품은 1년 목록들이 있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혼자 읽은 책, 기분 따라 개봉관에서 본 영화, 얻어걸린 작품 등은 기록이 없는 게 많았다. 아쉽지만 이제라도 정리하는 거다.
2024년에 본 영화를 24편만 추려 보았다. 편의 상 딸과 함께 보고 토론한 영화, 나 혼자 또는 누군가와 함께 본 영화, 그리고 2024년 개봉작은 아니지만 작년에 본 작품들로 정리했다.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난 해구나 싶다. 부디 딸이 이번 시험에 합격해 수험생활 끝내길, 모녀 영화 볼 시간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작년 영화 중 최고의 하나를 고른다면? <딸에 대하여>로 하겠다. 새해 토론 모임 목록에도 넣었다. 여성 영화로야 <위시>, <추락의 해부> 그리고 <가여운 것들>도 환상적이었다. 조금 다른 각도로 정치적이며 아름다운 영화로 <돌들이 말할 때까지>, <존 오브 인터레스트> 그리고 <앵그리 애니>를 추천하고 싶다. 24라는 숫자 속에 육여 넣어 보느라 안타깝게 빠진 작품이 많았다는 건 사족, 제목과 달리 실은 25편이란 건 비밀.
새해엔 매월 아니면 분기로 정리 좀 해 볼래? 영화 <딸에 대하여>에 대해선 후에 자세히 쓰기로 한다.
1. 2024년에 모녀유랑단이 함께 보고 토론한 영화 9
2. 2024년에 나 혼자 또는 누군가와 함께 본 영화 11.
3. 개봉작은 아니지만 2024년에 본 인상적인 영화 4
엄마!
이 많은 영화 중에 엄마랑 같이 본 게 하나도 없네? 이 현실이 영화라면 얼마나 좋을까? 플레시 백으로 건강한 엄마와 내가 만나 함께 영화도 보고 토론도 하는 환상을 집어넣을 수 있잖아. 특히 <딸에 대하여>를 엄마하고 같이 볼 수 있다면, 엄마 맘 그랬어? 내 맘은 이랬어, 이야기할 수 없어 아쉬워. 엄마랑 내가 모녀로서 잘 못 논 거 슬프지만, 엄마 딸은 지 딸하고 조금 낫게 지내니 보기 좋지?
이름 앞에 '고故'가 붙고 "화장중"이라 뜨는 걸 보던 장례 공원에서의 장면이 종종 떠올라. 벌써 두 달 전 일이야. 참 이상하지? 이런 기분일 땐 엄마한테 전화해서 수다를 떨고 싶은데, 전화할 수 없는 게 속상해. 지난 일요일 헌법재판소를 지날 때도 엄마하고 막 수다떨고 싶어 전화기를 만지작 거린 거 알지? 인생의 맑은 진리를 똑바로 보는 순간이었거든. 아버지 살아 계셨다면, 이 시국을 어떻게 견디실지 모르겠어. 사람이 반드시 죽는다는 게, 점점 참 잘 된 일이라 생각하고 있어 엄마.
엄마보다 내가 먼저 가지 않고 마침내 내가 엄마를 배웅할 수 있었다는 것도 감사했어. 10년 전 내가 암수술할 때, 일찌기 큰아들 앞세운 엄마한테 또 자식 앞세우는 아픔을 줄까봐 정말 괴로웠어. 내 아픈 것보다 엄마를 어떻게 봐야 하나, 수술실 들어갈 때까지 생각했거든. 아, 드디어 엄마가 먼저 갔어. 드디어 엄마가 해방됐구나, 엄마는 훨훨 날아가는구나, 존엄을 지키며 참 좋은 때 간 엄마가 고마워서 눈물이 났어.
사랑하는 엄마!
내가 엄마집에 갈 때마다 확인해 둔 덕에 그 수의 입혀서 엄마 보낼 수 있었어. 엄마 수의 입을 때 눈물이 가장 많이 났어. 편안하고 고요히 눈감고 누운 엄마가 어찌나 고운지 비현실 같아서 말이야. 열아홉 살에 시집와서 죽어라 일하고 5남매 낳고 시어머니에 시누이들, 친정아버지에 친정동생, 머슴들 건사하며 손발이 다 닳도록 일한 엄마. 죽어서야 저리 고운 옷을 입는구나, 우라질 세상이더라. 먼저간 사랑하는 큰아들, 울오빠도 만나고, 많이도 싸우던 울아버지도 만나겠네?
엄마, 속바지에 저고리에 치마에 두루마기, 꽃신까지 곱게 차려입고 갔으니, 거기선 무수리로 일만 하진 않을 거야. 우라질 인생, 살아 생전 곱게 차려입은 엄마랑 같이 훠이훠이 놀러 다닌 기억이 없다는 게 말이 돼? 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그래서 내내 고운 옷입은 모습 보여준 거 같지? 죽음 이야기인데, 죽는 사람인데, 화면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색이 잊혀지지 않아. 그러게 말이야. 이렇게 볼 게 많은데, 모녀 영화 토론 한 번 못해 봤잖아, 엄마. 미안해. 인생 이게 뭐냐고!
중년이 돼서야 엄마 인생을 조금 알 것 같고, 드디어 친구같은 모녀가 돼 가는 중이었는데, 엄마는 더 안 기다려주고 떠났네? 미안해 엄마, 그래도 충분했어.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 김성교, 내게 최고의 엄마, 고마웠어. 나를 낳고 젖먹이고 기르고 이날까지 사랑하며 함께 해 줘서 고마워. 엄마 딸은 엄마 손녀딸이랑 더 멋진 모녀로 나이 먹어 갈 거야. 엄마가 물려준 총기, 깊이, 예술성, 열정, 용기, 돌파력, 직관, 이런 거 잘 발휘해서 살 거야. 엄마하고 못한 여행, 많이 싸돌아다니며 세상 구경하며 잘 살다 갈게.
엄마 사랑해. 엄마, 엄마 딸 알지?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절망도 혼란도 글로 돌파하는 숙이잖아. 엄마랑 이렇게 글로 수다떨며, 3060모녀 유랑기 쓰는 거야. 엄마, 계속 글로 만나서 놀자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