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모처에서 모녀가 한 주간 합숙하고 있다. 어느새 반환점을 도는 4일 차, 수험생 딸에게 도시락 싸 주고 밥해주며 뒷바라지하는 엄마로 지내고 있다. 주말에만 보던 모녀가 한 공간에서 함께 먹고 자고 수다떨며 지내는 한 주라니. 종일 시험으로 긴장과 스트레스 겪는 건 딸의 몫이고 나는 무릉도원을 거닌다.
시험 둘째 날인 오늘도 딸은 어제처럼 아침 8시 도시락을 들고 나갔다. 저녁 7시 넘어 시험장을 나올 때까지 딸은 도시락에 귤 2개 초콜릿 2조각 그리고 묽은 생강꿀차로 버틴다. 내겐 저녁 준비 전까지 시국 뉴스 틀어놓고 글을 쓰는 하루다. 내란수괴 윤석열이 체포된 날이라 시사 프로를 도저히 끌 수가 없다.
수험생 딸을 위해 내가 준비해 준 비건도시락 구성 좀 볼까?
녹두당근잣현미죽: 녹두, 당근, 토마토 그리고 잣을 푹 끓이고 찹쌀 섞은 현미밥으로 끓인 죽이다.
채식카레: 애호박, 양배추, 달래, 목이버섯, 두부 넣고 된장 조금에 한살림 채식가루와 강황가루 섞어 끓였다.
무채나물: 무를 채 썰어 소금 살짝 뿌려두었다가 물기 그대로 끓여서 들깻가루로 비볐다.
데친 브로콜리에 초고추장 살짝, 그리고 배추김치.
소화영양맛 세 마리 토끼를 잡아라! 이게 내 컨셉이었다. 소화에 부담 안 되면서 영양균형 맞추되 맛은 좋게. 수험생 비건도시락으로 최고겠다. 고단백 고지방 필요없다. 긴장 상태로 시험 보다가 피곤한 몸과 맘으로 먹는 도시락. 균형잡힌 채식으로 심신에 쉼을 주고 원기를 회복하게 하는 보온도시락이다.
점심을 먹으며 내란수괴 윤석열이 체포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자꾸 몸에 힘이 들어갔다. 저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진심으로 꼭꼭 씹어주고 싶었다. 새벽에 시작한 체포 영장 집행에 6시간이 걸렸다. 윤석열 내란 사태 43일 만에 드디어 내란 종식 서막이 울린 셈이었다. 수갑도 포승줄도 없이 양복 입고 뻔뻔한 꼬락서니로 공수처로 걸어 들어가는 꼴을 보며 무나물이나마 꼭꼭 씹어 줬다.
아차, 오피스텔 이야기 좀 더 하자. 넓은 창으로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오피스텔은 에어비엔비를 통해 6박 7일에 70만 원으로 빌렸다. 수험생 딸 응원하려 엄마가 큰돈 썼다. 덕분에 18층 최신 고층 오피스텔을 경험하는 중년이다. 평생 신식 아파트에 살아본 적 없는 몸이라 낯선 디지털 조작에 버벅대기 딱이다. 하지만 딸과 함께라 잘 배우고 익혀 살고 있으니 얼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