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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왔다, 늙은 호박이.

친구 범수가 준 노란 늙은 호박으로 해 먹은 음식 자랑

by 꿀벌 김화숙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왔다."

참 재미있는 속담이다. 생각할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표현이다.


호박을 좋아하는 내게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이란 곧 굴러온 복이요 뜻밖의 선물보따리를 뜻한다. 시골에서 자란 촌년이라 호박이 줄줄이 달린 넝쿨이 절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푸른 호박잎이 너풀너풀 자라고 그 사이사이 노란 꽃이 피고 지며 호박이 조롱조롱 열리고. 잎은 따서 쌈으로 쪄먹고 꽃과 순으로는 된장찌개 끓여 먹는다. 애둥이 호박 따고 또 따도 남은 호박은 둥그런 늙은 호박이 된다.


시골집에 덩이덩이 누렇게 쌓여있는 늙은 호박을 그려본다. 호박은 씨까지 맛있다. 겨울과 봄 구황작물이 되고 맛있는 게 나오는 늙은호박. 호박국, 호박전, 호박죽, 호박고지, 호박떡, 호박범벅, 호박엿, 호박조청....


이렇게나 기분 좋고 맛 좋은 늙은 호박이 내게로 굴러왔다. 몇 주 전 일이었다. 시골집에 다녀온 친구 범수가 선물이라며 중간 크기 호박 3덩이를 내게 안겨 주었다. 그 무거운 걸 끙끙대며 가져온 정성도 고맙지만 맛 좋고 영양 좋은 늙은 호박이 반가워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받았다. 바로 넝쿨째 굴러온 호박이었다.


늙은 호박을 한 주 한 덩이씩 '클리어'하며 요리해 먹는 즐거움을 자랑하려 한다. 가장 작은 1번 호박부터. 작으니 한 번에 호박조림으로 밥과 함께 먹었다. 껍질을 제거하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소금 간을 살짝 해 수분을 좀 빠져나오게 뒀다. 그 호박물 그대로 감자조림하듯 과육이 뭉개지지 않을 만큼만 익혔다. 내가 좋아하는 바질 가루를 뿌려 먹기도 하고 나중엔 김가루로 비벼 호박김으로 먹었다.


2번 호박. 1번보다 더 잘 익어서 맛도 향도 색도 다 진했다. 절반으론 깍둑썰기 해서 양파와 건두부를 섞어 토마토소스로 익혔다. 딸이 한 주간 도시락 싸다니며 잘 먹었다. 남은 절반은 호박과육잔치로 먹었다. 평소 내가 잘하던 호박범벅 말고 호박과육 식감이 살아있게 빡빡하게 먹는 방식이다. 과육 덩이를 다 풀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팥밥 조금 넣어 되직하게 끓였다. 호박의 과육 식감이 살아있는 자연식이랄까.


3번 호박으론 떡볶이, 호박죽 그리고 호박수프레트를 만들었다. 늙은 호박을 주재료로 현미가래떡과 양배추를 넣고 끓이다가 고추장과 된장을 넣은 달큼한 늙은 호박떡볶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 호박죽은 녹두와 함께 끓여보았다. 익은 녹두와 호박과육에 밥을 넣고 저어주며 끓였다. 늙은 호박 마지막 작품은 빵에 발라 먹을 스프레드. 물은 조금만 넣고 호박과육이 풀어지게 끓이다가 유자청과 노루궁둥이버섯환 그리고 허브를 섞어 졸이며 올리브기름을 섞었다. 병에 담아두고 통밀빵에 발라 먹었다.


늙은 호박의 대표 영양소는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A, C라 하겠다. 혈전 생성을 막아주는 항산화물질인데 단호박보다 늙은 호박에 더 많다. 배변에 좋고 노폐물과 부기를 빼주니 피부미용이며 당뇨 그리고 감기와 피로해소에도 좋다. 이렇게나 좋은 늙은 호박을 왜 "호박 같다"라는 부정적인 비유로 쓸까. "호박꽃도 꽃"이란 건 더 이해할 수 없다. 호박꽃이 얼마나 예쁜데. "호박씨 깐다"라니 정말 왜 그러나 모르겠다.


그리고 하나 더, 늙은 호박이란 이름도 그래. 늙은, 이게 이 좋은 호박에 어울리는 수식어인가? 노화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 없이 늙음을 호명하는 경우가 있던가?차라리 완숙호박, 영근호박 아니면 황금호박이라 부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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