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벗들과 함께 순식물식 집밥 먹으며 수다잔치 3시간
"허은아답게. 엄마 리더십 누나 리더십 했으면 밥이나 잘 사주면 되는 것이지."
이게 뭔 소리지? 개혁신당의 이준석이 자기가 무슨 '40대 기수'라도 되는 양 나대는 걸 지켜볼 수가 없다. 이준석에게도 개혁신당에게도 정말 1도 관심 없고 기대도 없지만 뉴스가 자꾸 내 귀를 건드렸다. 이준석이 당대표인 허은아 의원을 무시하고 몰아내려는가 보다. 과연 내 귀를 의심하게 하는 소리를 확인할 수었다.
'착한' 여성 허은아답게 폭탄을 안고 그냥 사망하라는 말이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건 여성 의원을 '엄마 리더십 누나 리더십'이라 하는 말이었다. 현역 당대표 허은아의 리더십이 "밥이나 잘 사주면 되는 거"라고? 선출된 여성 당대표가 남성 정치인들로부터 바지사장 취급당하는 현실이 보였다. "그동안 제가 얼마나 바보 같아 보였으면 저 앞에서 그런 말을 할까."라는 허은아 의원의 목소리가 내 귀를 떠나지 않고 맴돈다.
착한 이미지의 여성 정치인이 그런 대우를 받고 있었다. 엄마 또는 누나 말곤 기대할 게 없다고? 자기 목소리 내지 말고 밥이나 잘 사라고? 여성 국회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되면 뭐 하나. 밥 잘 사주는 엄마 누나 리더십이면 일 다 한 건가? 전혀 지지하지 않는 당의 여성 정치인이 여성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어 가슴이 아프다.
엊저녁에 우리 집 밥으로 벗들을 먹여서 허은아 의원의 "밥"이 자꾸 걸리는지도 모르겠다.
이프 토론 친구 한나가 호주 유학 1년 마치고 돌아온 기념 번개였다. 4살 반 쌍둥이 아들 둘 데리고 모일 장소 찾기가 어디 쉬운가. 우리 집에 부르기로 했다. 아이 둘까지 10명이 내가 준비한 자연식채식 집밥을 먹으며 3시간 회포를 풀었다. 육식하던 사람들이 고기 한 점 없는 채식 밥상을 맛있게 먹었다. 누구나 부담 없도록 향기도 조리법도 '보통식'으로 하느라 나름 애써야 했다.
밥을 하고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게 얼마나 신성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나는 어제 '엄마 리더십 누나 리더십'이었을까? 어제 온 벗들 중 내게 엄마 또는 누나를 기대하는 이는 없지 싶다. 서로 평어 쓰며 책 읽고 토론하고 글 쓰는 벗들이니까. 각자 먹을 거든 뭐든 하나씩 챙겨 와서 함께 했다. 고기 안 넣은 잡채를 해 온 성혜가 엄마 리더십이었을까? 50대 박사님 원석이 나를 누나로 볼 리도 없지. 은 허기진 밥상? 자연식물식 뷔페잔치상인데도?
젠더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우리들에게 "밥"은 결코 여성만의 일이 아니다. 우정과 연대로 모이자니 밥을 할 수도 나눌 수도 있는 자유로움이 고맙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밥"으로 소환되는 걸 내가 얼마나 싫어했던가. 여성은 결코 "밥"이 아니니까.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밥" 걱정하는 존재일순 없다고 무던히도 '난동'을 부렸댔지. '밥'으로 소환되는 엄마 누나 말고 사람 김화숙으로 살았을까? 분명 즐거운 밥이었다
사정이 생겨 함께하지 못한 벗들이 왜 없겠는가. 다리를 다쳐 깁스로 누운 써니는 이 모임을 위해 와인을 한 병 보내주었다. 덕분에 와인 한 잔씩 나눠 마시니 잔치 분위기였다. 식사 장면을 찍어 단톡방에 공유했지만 오지 못한 벗에겐 그림의 떡 아니겠나. 오늘 아침 아쉬운 마음 가득한 톡을 또 주고받았다.
나: 엊저녁 와인 고마웠어. 우리가 먹은 화숙표 자연식물식단 뷔페식 구경만 해. 각자 접시에 덜어서 긴 밥상에 둘러앉아서 먹었어. 써니랑 여노 사무실 벗들 한 번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밥 먹을 수 있는 자리 만들어야지 늘 생각했더랬는데 또 기회가 멀어가는가 싶다. 다리가 그래서 봄이 된들 4층까지 올라오겠냐고~~ ㅠㅠㅠㅠ
덕이가 그랬어. 11년 전 수술 후부턴 밥하고 손대접하는 일 그만한다고 선언했던 화숙이 이 정도 규모 친구들 초대해 밥먹이긴 처음인 거 같다고. 이제 10년간은 또 쉬라고.ㅋㅋㅋㅋㅋㅋ 내가 뭐라 답했개? 내가 즐거워서 자원하는 거랑 내 뜻과 상관없이 해야 하는 거랑 다른 거야!~~~
써니:ㅎㅎ화숙 글과 사진만 봐도 따뜻해져. 3월이면 깁스 풀 거니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항상 고마워 화숙.
나: 봄날을 기대해 본다...
채식은 허기진 밥상이라고? 그럴리가! 소박하지만 영양 가득한 자연식물식 뷔페 잔치상 구경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