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다락방과 세상> 외 13편으로 「문학과 비평」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용포 소설. 1998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당선작 <성자 가로등>을 개작한 작품이다.
아무런 특징도 없이 넙데데하게 생긴 너브대 마을. 그 안에는 공터가 있고 공터 안에는 '자살 나무'라는 별명을 가진 느티나무가 있다. 어느 날 갓등 하나를 매달아 가로등이 된 느티는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며 모두를 바라보고, 그 곁을 노숙자 '가로등지기'가 지킨다.
공터 앞에는 자수성가한 공팔봉 씨 집이 있고, 그 집에 순호네가 세 들어 산다. 순호는 너브대의 모든 것을 지긋지긋해하며 늘 공상에 빠지고, 그러던 어느 날 순호 아빠는 노름판에 전셋돈 모두를 날리고, 순호네는 길에 나앉게 된다. 새벽마다 신문배달을 하는 등 열심이었던 순호는 이런 아빠에게 실망을 하고, 가로등에 돌을 던져 공터를 칠흑 같은 어둠에 빠지게 한 뒤, 가출을 결심하는데….[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책 안에서------
오늘 아침, 느티는 아프다. 마음이, 마음이 아프다.
안개보다 굵고 이슬비보다 가는 는개가 너브대 마을 위에 뭉개고 앉아 있었다. 그렇잖아도 넙데데할 뿐, 아무런 특징도 없는 마을이 아예 땅속으로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도로 너머 저편 고층 아파트들은 신기루처럼 허공에 둥둥 뜬 채 오히려 또렷했다. 원래는 그곳도 너브대처럼 넙데데했다. 몇 년 전부터 아파트가 쿨룩쿨룩, 마구 들어서면서 넙데데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처럼 변한 것이다. 는개 때문인지 아파트 단지는 삐죽삐죽 뿔이 솟아 있는 괴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주 조금씩 야금야금 넙데데한 풍경을 집어삼키는 욕심꾸러기 괴물 말이다.
는개를 뚫고 자전거 한 대가 아파트 쪽에서 너브대로 넘어오고 있었다. 괴물을 피해 달아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할멈은 공팔봉 씨의 팔순 노모이다. 작은 체구 어디에서 그런 괴성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할멈의 고함 소리가 얼마나 크고 날카로웠으면, 꺼질 듯 말 듯 연신 가물거리던 가로등이 화들짝 밝아졌을까.
“개가 뜯어 묵어도 시원찮을 종내기드으을……!”
끔찍한 욕설이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철천지원수가 졌고, 얼마나 큰 잘못을 했으며, 그 어떤 용서받지 못한 짓을 했기에, 개가 뜯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마음이 여린 사람들은 아예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이용포
청소년과 아동 문학에 있어 작가는 소외된 사람들,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을 주목하고 있는데,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관심을 갖기 어려운 인물들과 환경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문학과 비평사(1990년 여름호)」에 '시간의 사용' 외 12편을 발표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해, 1998년 농민신문사 신춘문예 중편 부문에 '성자 가로등'이 당선되었으며, '5월 문학상', '제1회 올해의작가상' 등을 수상했고, 쓴 책으로는 청소년 소설 『느티는 아프다』, 『뚜깐뎐』, 창작동화 『내 방귀 실컷 먹어라 뿡야』, 『태진아 팬클럽 회장님』 등이 있다.
[예스24 제공]
오롯이 천년의 나무가 되어 보는 시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심한 관찰력으로 깊이 있고 따뜻하게 그려 내는 작가 이혜란의 새 그림책 《나무의 시간》이 출간되었다. 도시에서 강원도 산골로 이주한 이혜란의 작품 세계는 자연과 생명까지 품는 넉넉한 세계로 확장되었다.
《나무의 시간》은 천년을 살아가는 나무의 시간을 온전히 담은 그림책으로, 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느티나무의 역동적인 성장을 그리고 있다. 땅과 물과 산과 바람과 작렬하는 태양과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무, 그 과정에서 변화하는 계절을 느끼고, 그 옆에서 나고 살고 죽는 온갖 생명들과의 교감을 담아냈다.
시적인 텍스트와 물끄러미 들여다보게 하는 그림들로 독자들에게 잠시 나무가 되는 꿈을 선사하고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그림책 [나무의 시간]을 읽으며, 느티는 아프다 이용포 작가의 책이 떠올랐다. 이야기가 재미있으면서도, 문장이 정말 좋아서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다. 나무의 시간에 등장하는 나무는 느티나무이다. 천 년을 산다는 밀레니엄 나무로 지정된 느티.
늦게 싹이 난다고 해서 느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느티나무의 어린 묘목, 성목, 고목, 나목의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책에는 꽃도 열매도 없는 나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꽃도 있고, 열매도 있다. 다만 꽃이 아주 작고 연둣빛이 돌아서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고사리와 같은 민꽃식물 외에 풀과 나무는 모두 꽃을 갖고 있다.
이혜란 작가는 [우리 가족입니다], [뒷집 준범이]를 쓴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