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기 Aug 09. 2022

호주, 가든 클럽 '꽃 품평회'에 갔더니

작은 들풀도 즐기고 감사하는 여유

호주 시골 스킵튼이란 작은 마을엔 동네 여인들과 할머니들이 주로 모이는 '가든 클럽'이 있다. 이들이 연례 '장미 페스티벌'을 마을회관에서 개최한다고 해서 가 보았다. 자기 집 정원에서 잘 키운 장미와 아이리스를 가져와 품종에 따라 평가도 하고, 주제에 맞게 꽃꽂이 경쟁을 하거나 다양한 분야로 나눠 시상도 했다.   

수준이나 규모가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꽃을 하나씩 꽂아놓고 품평하는 것이 신선했고 동네 할머니 몇몇이 이 행사를 모두 기획하고 진행한다는 게 놀라웠다. 백발에 검버섯 가득한 할머니 예닐곱 명이 힘을 모아 홍보도 하고 가구도 직접 나르고 전시할 작품도 모아 출품하느라 무지 바쁘셨을 듯했다. 

일 년 내내 강풍이 몰아치거나 뙤약볕이 쏟아져도 정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때맞춰 물 주고 잡초 뽑고 꽃을 키운 건 또 어떤가. '이번엔 새로운 장미 품종을 키워봤는데 이런저런 것이 어떻게 다르더라' '품평 날에 맞춰 꽃을 피우기 위해 햇볕도 가려보고 수분도 조절하며 여러 가지 기술을 시도해 봤다'는 둥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들의 원예 지식과 경험 열정이 실로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올해는 가뭄이 심해 이 정도 키우기도 너무 힘들었다며 좀 더 풍성하게 가꾸어 내놓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젊구나' 생각도 들었다.


이 작은 마을로 그 꽃들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연령이나 성별이 다양해서 또 놀랐다. 그들은 한송이 한송이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세상 시름을 잠깐씩 잊는 듯했다. 한 송이 꽃을 피워 낸 자연의 이치와 노인의 노고를 헤아리려는 건지 한 잎 한 잎 뜯어보며 발걸음을 도대체 떼지 못하는 모습이 새로웠다. 

사실 이 꽃들은 내가 본 최상의 꽃들은 아니었다. 온실의 꽃이 아닌지라 탐스럽게 활짝 피었음에도 잎 하나가 살짝 시들거나 한쪽 끝에 벌레 먹은 작은 상처가 있곤 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작은 흠을 들추기보다는 이 꽃의 생애 최고의 날에 함께 하게 된 것을 감격해하며, '원더풀' '뷰티풀' '러블리' 같은 감탄과 찬사를 연이어 쏟아내고 그 아름다움에 빠져 드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토록 꽃을 즐기고 감동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한쪽에선 클럽 멤버의 남편인 어느 할아버지께서 돋보기안경 쓰고 어렵게 악보를 읽으며 전자올갠을 연주했다. '에델바이스'등 꽃과 관련된 달콤한 추억의 노래들이 꽃들과 어울려 듣기 좋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열정, 삶을 즐기는 태도, 작은 것에 감사하고 감동하는 자세, 비난이나 험담보다 감탄과 찬사를 늘어놓는 진정한 마음 혹은 이런 모든 것들을 할 만한 정신적 시간적 물리적 여건이 허락되는 이들의 삶이 참 여유가 있구나 느꼈다.   

주변의 작은 들풀도 그냥 지나치지 말자! 잠깐이라도 멈춰 서서 바라보고 즐기자! 그런 작은 여유가 바쁘고 메마르고 찌든 내 가슴에도 생겨나기를 소망해 봤다. (2010/1/3씀)


가든 클럽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https://brunch.co.kr/@dreamdangee/90

https://brunch.co.kr/@dreamdangee/138

https://brunch.co.kr/@dreamdangee/79


이전 02화 호주, 역사연구회와 공동묘지에 간 이유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