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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Jul 26. 2021

호주, '심야 동물원' 이색 풍경과 사색.

어떤 동물이 더 중요할까?

중앙 호주 앨리스 스프링스를 여행하던 중 가게 된 심야 동물원. 전날 낮에 이 동물원을 갔다가, 밤에 가이드와 함께 야생동물을 돌아보는 스폿 라이팅 (Spot Lighting) 프로그램이 있단 안내를 보고 호기심에 덥석 예약을 하였었다.

호주 시골에서 사냥을 하는 사냥꾼들을 따라 혹은 국립공원에서 야생동물을 관리하는 동물학자들을 따라 혹은 싱가폴 야간 사파리에서  밤에만 활동하는 동물들을 한밤중에 구경해 본 적이 있는데, 매우 색다르고 환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캠프장에서 저녁을 해 먹고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가 밤 8시쯤 인적 없는 동물원 입구로 찾아갔더니 대략 20여 명이 가이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약자가 많아 두 팀으로 나누기로 했다며 두 명의 가이드가 나왔는데, 전 날 새쇼와 다른 설명회를 통해 낯이 익은 가이드들이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붉은빛이 나는 특수 랜턴을 머리에 쓰고 으슥한 동물원을 걷기 시작했다. 야간 동물들은 붉은색에 색맹이라 이 불을 비추어도 놀라서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까만 길에 붉은색 전등을 비추면 숲 속이며 나무 밑, 바위 밑에서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 무언가가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이런 존재들.. 이름은 일일이 생각 안 나는데, 주로 들쥐나 두더지류 몇 가지의 새 종류를 보았다. 이 동물원도 역시 울타리는 없었고 운이 좋으면 많이 만나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이들은 한가하게 달밤의 산책을 즐기기도 하고, 먹거리를 챙기느라 바쁘기도 하고, 그렇게 세상이 잠든 시간에 눈 비비고 일어나 일상을 사는 것이었다. 그들은 무대 위의 배우들이 객석의 관객들을 의식하지 않은 채 태연히 연기하듯, 우리들의 시선과 소음을 무시한 채 천연덕스럽게 도도하게 움직였다.

이들이 야생스럽게 사는 건 맞지만 그래도 동물원 안이라 이미 길들여져 있다는 것. 그래서 붉은 조명은 그렇다 치고 인간의 발자국 소리며 말소리를 듣고도 굳이 혼란스러워하지 않은 채, 하던 일을 마저 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날의 하이 라이트는 밴디 콧.(Bandicoot) 덩치가 비슷한 두 마리가 딱 달라붙어 있었는데, 가이드에 따르면 5개월 된 아들에게 수유를 하는 중이라나... 아들은 더 이상 작지도 않은데, 엄마 품을 파고들며 떨어질 줄 모르고, 엄마는 떡 버티고 서서 품을 내주며 당당하다. "여러분, 내 아들 좀 보소" 하는 듯하다.ㅎㅎ


이 대목에서 '라따뚜이'가 생각났다. 프랑스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인데 주인공인 쥐가 최고 요리사가 되는 과정을 매우 기발하고 흥미롭게 그린 감동 영화이다. 그 쥐가 생가 났다. 든든한 하체와 뒷다리로 버티고 서서 짧은 앞다리를 인간의 팔처럼 움직이며, 말도 하고 요리도 하고 꿈도 꾸고 절망도 하던... 그 자태며 움직임이 애니메이션 속의 그것들과 동일했다.

사실 쥐를 먼저 알고 그 애니메이션에 감탄을 해야 맞는 건데, 어째 순서가 좀...

이건 마치 생 오렌지를 먹으며, 오렌지 사탕 먹을 때 낫던 맛이야 하는 것 같다. 아버지를 보고, '당신은 아들과 많이 닮았군요' 하는 것 같고.ㅋㅋ

어쨌든 그 그림을 그린 작가는 얼마나 달라붙어 쥐를 바라보고 연구를 했을까. 그 캐릭터를 만들어 내기까지 얼마나 외롭고 힘들고 즐겁고 행복했을까에 대한 가늠과 짐작들을 했다.

둥근 보름달이 훤한 밤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이 추석이었다.ㅎㅎ

그렇게 달밤을 한 시간여 거닐며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들짐승 밤 짐승을 쫒으며 야간의 야생의 삶을 살짝 맛봤다. 캠핑 중엔 해만 떨어지면 자러 들어갔는데, 간만에 나도 그들처럼 밤에 깨어 활동을 한 것이다. 그냥  세상이 다 잠든 이런 밤늦은 시간에 달빛을 따라 동물원에 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흥분이 되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2012/11/25 씀)

*지난 글들을 다시 읽다가 내가 여행 중 동물원을 많이 다니고 그에 대한 글을 여럿 썼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어린 아들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을 테고, 호주인들이 자연과 동물을 워낙 애호하다 보니 영향을 받은 것도 같고, 또 막상 다녀보니 나도 몰랐던 세계에 눈을 뜬다는 즐거움이 크기도 했으리라.. 

그래도 기껏해야 들쥐나 두더지 따위를 보자고 야밤에 또 동물원을 찾았는가 싶기도 한데 또 다른 생각도 들었다. 사자나 기린 북극곰처럼 동물원에도 주목을 끄는 스타 동물들이 있기 마련인데, 이리도 보잘것없는 동물들에게까지 관심을 유도하여 생태계를 이해시키는 프로그램의 철학과 성숙함에 새삼 감탄했다. 생태계란 이런 동물들이 적절히 제자리에 있어줘야 순환이 되는 것이다.

'최하층이 있어야 최상층이 있다'(C.S. Cewis)는 말도 떠올랐다. 인간 세계도 마찬가지다. 잘나고 뛰어난 최상층만 무대와 조명을 독점하고 그 특권을 당연시하며 누리는 사회의 미래는 안전하지 않다. 무대 뒤에서 밑바닥에서 누가 나를 바둥대며 바쳐주고 있는지 인지하고 그들에게 시선과 박수를 나누어야 사회는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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