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공부를 시작한다고요?”
누군가의 질문이기도 하지만, 내 안의 의심이 먼저였다.
마흔다섯.
생각보다 무거운 나이였다.
해온 일도 많고, 지나온 시간도 만만치 않은데,
왠지 이제는 새로운 걸 시작해도 될까 하는 걱정.
익숙한 것들은 손에서 놓아야 했고, 낯선 것 앞에서는 늘 주저하게 됐다.
그렇게 나는, 나이라는 벽 앞에 멈춰 서 있었다.
몸이 먼저 지쳐버렸고, 마음은 그 뒤를 따랐다.
오랜 시간 디자인 일을 하며 살아온 삶은 화려했지만 그만큼 고단했다.
기획, 회의, 수정, 론칭…
돌고 도는 계절 속에서 나는 나를 잊어가고 있었다.
쉼이 필요했다.
퇴사라는 단어는 두려움보다 평온에 가까웠다.
마치 오랫동안 나를 꽉 쥐고 있던 끈을 놓아버린 듯한 느낌.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내 안에 서서히 스며든 감정은
'이제 뭐 하지?'
라는 막막함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처럼 ‘사회복지사’라는 단어를 다시 마주했다.
사실 그 이름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 사회복지사 2급 공부는 틈틈이 하고 있었고
실습 과목만 마무리하면 되었다.
어릴 적부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 바람은 늘 현실의 무게에 눌려 흐릿해졌고,
그저 좋은 사람으로만 남기엔 세상은 복잡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삶의 무게가 실렸다.
실패와 무력감을 겪어 본 나니까, 조금 더 조심스러운 손을 내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다시 용기를 냈다.
처음처럼. 아니, 처음보다 더 진심으로.
그래서 실습부터 마무리했다.
쉽지는 않았다.
지금은 사회복지사 1급에 도전 중이다.
오래 쉬었던 뇌는 예전만큼 유연하지 않고,
외우고 잊는 속도 차이에 실망하는 날도 많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나조차도 안아줄 수 있다.
예전의 나는 늘 조급했고, 자책이 빠르며, 완벽하려 애썼다.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다.
느려도 괜찮고, 오늘 못 하면 내일 하면 된다고 말해줄 수 있다.
내가 마흔다섯이어서 가능한 공부.
나이 들었기에 할 수 있는 배움이 있다.
딸아이와 나란히 앉아 문제를 풀기도 하고,
책상 앞에 앉아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도 한다.
이제는 누구를 이기려는 공부가 아니라,
나를 더 알고, 이해하고,
마침내는 타인을 돕기 위한 공부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의 길을 걷고 있다.
사회의 틈에서, 삶의 균열 속에서,
누군가에게 조금은 따뜻한 존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공부란 나이에 갇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나이를 통과한 사람만이
더 깊고, 더 단단하게 배워갈 수 있는 것.
나는 이제 안다.
중요한 건 나이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나를 가르치고 있고 나를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