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넘고 마흔 중반이 지나며, 나는 늘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디자이너라는 직종이 생명이 길지도 않을뿐더러 어딘가 모르게 본능적으로 불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남들보다 빠르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디자이너로 일했고,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하고, 늦은 밤에 집에 오며 거의 집과 회사만 바라보고 살았다.
그렇게 20년 넘는 시간을 남성 액세서리를 디자인하며 보냈다. 넥타이, 양말, 손수건, 머플러, 벨트… 어쩌면 평생을 그 작은 세상 안에 갇혀 살았는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일’이 곧 ‘내’가 되었고, 쉬는 시간에도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조급함 속에서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보니 몸이 먼저 아프기 시작했고, 마음도 따라 무너졌다.
아무도 보지 않는 화장실 칸에서 몇 번이고 화와 눈물을 삼켰고, 지하철에서 멍하니 앉아있다 역을 지나치는 일이 자주 생겼다.
나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처음에는 소속이라는 것이 없어지니 불안이 커졌다.
회사라는 소속 속에서도 큰 불안과 긴장이 있었기에 회사를 그만둔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사실보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갑자기 붕 뜬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우리 가정의 소속이었다.
소속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제일 중요한 소속을 잊고있었다.
그동안 나를 돌보지 못한 시간을 돌아보며, 처음으로 ‘나’를 위한 시간을 갖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딸아이를 위한 시간도 갖으면서
사실 나는 몇 년 전부터 회사에 다니면서 틈틈이 학점은행제로 사회복지학 공부를 해오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언젠가 다른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가능성을 대비하는 마음이었는데,
어느 날 문득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게 되었다.
디자인도 결국 사람의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기 위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회복지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나는 내가 겪은 상처와 아픔을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힘으로 바꾸고 싶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들고, 또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번 봄, 나는 아동복지센터에서 실습을 시작했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막상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과의 시간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장난기 많은 눈빛, 소소한 농담, 조용히 손을 내밀던 작은 손… 그 모든 순간이 내게는 선물 같았다.
아이들에게서 나는 많은 힘을 얻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작은 선물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사회복지사 2급 자격을 위한 마지막 단계인 실습과목까지 마무리하면서, 나는 조금씩 회복 중이다.
아직 몸도, 마음도 완전히 나은 건 아니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다.
예전엔 결과만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과정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걸 배워가는 중이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묻는다.
"디자이너에서 사회복지사로? 너무 극단적인 변화 아니야?"
맞다. 어쩌면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나다운 삶'을 찾아가고 있다.
멀리 돌아왔지만, 그 길 끝에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이 길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천천히, 한 걸음씩 걸어가려 한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처럼 아프고 지친 마음으로 길을 잃은 누군가에게, "나도 그랬어. 같이 가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