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쓰기 1

무의식을 다루는 것도 이제는 AI에게..

by DreamHunter
KakaoTalk_20260129_115640278.png 아무도 보지 않는 내 책 - 경남정보대학 전자책 도서관


마치 오래전 헤어진 연인처럼 책장 한편에 놓여 있는 제 책이 살면서 드문 드문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출간 제의를 받아서 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잊지 못할 감사한 추억이나 그냥 그것으로 이제는 끝나고 말았으니까요.


평소 내 글이 좋다고 책만 발간되면 회사에 이야기해서 바로 영상 작업으로 갈 듯이 뻠뿌질하던 친구도 소식이 없고 출간 작업으로 자주 연락하던 출판사 이 부장님도 이제는 연락드리기 멋쩍은 사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책도 책장 구석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지요.


하지만 제 환상은 멈추지 않아서 가끔은 누군가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맘에 들어 연작극으로 만들겠다는 제안을 그려봅니다. 그럼 평어체인 글을 시나리오로 변환해야 하는데 그 작업도 제가 해보는 상상 말입니다.


시나리오를 써본 적은 없으니 제가 좋아했던 시나리오들을 많이 구해서 읽고 있습니다. 장면들은 이제 눈에 선하기에 그것이 어떻게 글로 먼저 만들어졌는지 reverse engineering 하고 있는 셈이죠. 물론 이런저런 핑계로 열심히 하지는 못하니, 아무리 작가라고 해도, 시나리오 쓰는 기술이 생기려면 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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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로도 유명한 웹툰 <미생> 윤태호 작가 그린 원작 <파인>은 대한민국 10대 만화에 꼽힐 명작으로도 유명한데요. 범죄도시 1편이랑 바로 전에 디즈니에서 <카지노>를 연출했던 강윤성 감독이 다시 디즈니랑 손을 잡고 만들어 2025년 디즈니 플러스에서 가장 사랑받은 드라마라고 해서 찾아보았습니다.


모든 캐릭터가 특별하고 인물마다 지역이 달라 사투리마저 각양각색이니 각 인물이 가진 차별점을 두기에도 좋았습니다. 각각은 사업가, 경찰, 자영업자, 선장, 정치인, 건달, 잠수부, 경리, 다방 레지 등 업무상으로도 명확한 기표를 달고 있기에 50년 전 지방에서 도굴을 한다는 아주 특이한 상황이라도 보는 내내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내가 저 틈에 끼어 있다한들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요.


등장하는 대부분은 범죄자 아니면 양아치라서 이들을 정신분석 입장에서 다루는 글을 쓰려고 AI를 동원해서 분석 준비를 했는데요. 혹자는 AI랑 심심풀이로 대화도 주고받는다는 말이 떠올라 등장인물을 먼저 인터뷰하는 설정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기본 몇 가지 상황을 주고 AI에게 극 중 인물을 연기하는 역할극을 시켜 보았습니다. 결국 제가 좋아했던 등장인물을 인터뷰하는 장면을 AI를 통해서 만들어 보았지요.


image.png 나대식 - 배우 이상진

먼저 충청도 방언을 쓰고 술이랑 고기를 너무 좋아해 밥값으로 큰 빚을 졌을 정도라는 '나대식'이라는 캐릭터랑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배우 이상진이랑 인물 나대식을 합성하여 AI는 답변을 합니다. 극 중 나대식은 1977년을 사는 30대 청년이기에 2025년에 OTT 드라마로 내가 당신을 봤다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배우 이상진은 진짜 나대식은 아니기에 나대식 연기를 따로 부탁하지 않는 이상 극 중에서 나대식이 말한 대사가 이상진 씨 의견은 아닙니다. 그러니, 꿈에서나 나올 법한 복합 캐릭터를 (이상진하고 나대식을 섞어 놓은) AI는 만들어 대화를 진행한 형국입니다. 아래 그중 일부를 발최하였으니, 생각 없이 보면 자연스럽지만, 아주 기괴한 장면입니다.


KakaoTalk_20260129_120059505.png Copilot


나대식 군이 홧김에 쓴 말이 요즘 유명해졌어요. '충청도 주먹맛 좀 볼텨?' 이건데 충청도 주먹이라면 어떤 스타일을 말하는 건가요?


“아, 그 말… 그게 왜 유명해졌대요. 내가 괜히 한 말인데.”


대식이가 머쓱하게 웃다가도, 질문이 ‘주먹 스타일’로 넘어가자 갑자기 어깨를 으쓱함. “충청도 주먹이요? 그게 뭐… 딱히 기술 이름처럼 있는 건 아니고요.”


잠깐 뜸 들이다가, 괜히 허세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임. “근데 충청도 사람들 알죠? 말은 느릿하게 하는데, 한 번 마음 먹으면 끝까지 가는 스타일. 주먹도 그래요. 괜히 허세 부리는 게 아니라… 묵직하게, 꾸준하게, 한 방씩 들어가는 거.”


손으로 허공에 천천히 잽을 그리며 설명. “서울 사람들처럼 화려하게 휘두르는 건 없어요. 그냥… ‘어이, 한 대 맞아봐유’ 하고 툭— 들어가는데, 그게 또 은근히 아파요. 느려 보이는데 무게가 실린다고 해야 하나.”


조금 더 작게 덧붙임. “그리고… 충청도 사람들은 화 잘 안 내요. 근데 한 번 나면… 그때는 진짜 조심해야죠. 그래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거고.”


다시 허세 모드로 돌아감. “아무튼, 충청도 주먹은 화려하진 않아도… 믿고 쓰는 주먹이랄까. 왜요, 혹시… 배워보고 싶은 거예요?”




놀라운 것은 AI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시나리오 형식으로 저에게 나대식을 그려냅니다. 마치 배우에게 directing을 주듯이 작은 손동작까지도 만들어내면서 제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함으로써 이 대화는 시나리오 형식이 되어 버립니다. 이대로 이상진 배우가 다시 연기를 한다고 하면 또 극이 만들어질 완성도로요.


이렇게 되면 제가 시나리오를 공부해서 제 글을 다시 쓰는 것보다. 제 글을 AI에게 주고 시나리오로 변환시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일입니다. 저는 그 글을 받아서 일부 제 스타일에 맞게 튜닝만 해주면 100시간 걸릴 일이 열 시간으로 줄어듭니다.


문제는 저작권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를 떠나서 저는 시나리오를 쓰는 내공이 나아가지 못하고 전체 그림은 제가 만든 것이 아닌 일부 편집만 거든 시나리오이기에 그 안에 제 무의식은 담아내지 못합니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은 저에게 무의식을 마주하고 꺼내어 다듬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이 무의식을 다루는 학문이며 분석 임상은 분석가 도움으로 내 무의식을 마주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저같이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남들 앞에서 글을 쓰는 것도 일종에 자기 분석 내지 정신분석 공부 다른 형태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AI에게 그것도 일부 하청을 주어버리면 저는 제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것도 AI라는 편집된 틀을 통해서 마주하게 되니 의미 없는 짓거리가 되어 버리네요.


AI로 글쓰기가 쉽고 빨라지는 반면 글에 애착이나 깊이는 떨어져 갑니다.


KakaoTalk_20260129_133059050.png 리지일기 - 블로그



이 글을 쓰려고 오랜만에 제 책을 검색해 보니 어떤 분이 블로그에 쓰신 서평을 찾았습니다. 제가 부탁하거나 지인이 아닌 제삼자가 쓴 첫 서평으로 너무 감사했어요. 작가로서 모르는 사람이 쓴 내 글에 대한 감상문을 읽는 기분이란 정말 행복하여 읽는 내내 웃음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서평 더 길었으면 읽는 이 행복한 시간이 길어 더 행복했을 텐데 우연히 스쳐가는 짧은 인연처럼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는 글이 아쉬울 따름이었죠.


https://m.blog.naver.com/h_h_h/223588759190



"아마도 이 글을 지은 작가 드림헌터는 배우 이은미 (이은주 오타)의 팬이었던 것 같다. 그의 마지막 에피소드 내가 사랑한 여배우 에피소드에서 그가 (쓴) 편지가 등장한다. 그러면서 끝으로 이 책에 그녀의 추모사를 담는 모습이 한 배우의 팬으로서 기억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이 너무 멋있었다." - 리지일기



리지 님 고마워요!

시드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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