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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Sep 28. 2023

브런치 회계사가 사는 하루

첫 메인 달성 후기

7수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되어다지만 그날의 감동은 그날 하루뿐이고, 시간이 지나자 이제나 저제나 메인에 내 글이 오를 날만 꿈꾸고 있습니다. 메인에 오른 다른 글들을 보면서 어떤 형식으로 해야 좋을지 살펴보고 실제로 메인에 오르거나 유명 작가가 된 분들이 적어놓은 팁이나 수기도 꼼꼼하게 읽어 봅니다.


-직접 찍은 사진이 많으면 좋고;

-직접 그린 그림이 있으면 더 좋고;

-내용이 따스한 글들이 많고;


대략 국, 영, 수 중심으로 내신관리 잘하면 의대 간다는 내용들입니다. 결국 다 아는 것들인데 내가 주로 쓰는 정신분석 관련 소재나 <날 사랑한> 시리즈랑은 거리가 좀 있습니다. 물론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닙니다. 글을 쓰면서 될 수 있으면 메인에 오를 수 있도록 사진도 다양하게 넣고 단어들도 순화합니다. 하지만 황홀경에 빠져서 글에 몰입하다 보면 또 잊어버리고 제 맘대로 쓰고 싶은 글을 쓰게 됩니다.




일요일 새벽부터 우리 고양이 프로이트가 물어온 호주 생쥐 사건으로 한바탕 난리를 치고 깬 김에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캣토피아> 덤덤하게 멍한 상태로 쓴 글입니다. Cat + 유토피아 = 캣토피아, 제목이 너무 얄팍한 것 같지만 딱히 더 좋은 것도 안 보이니 우선 이렇게 달아 놓고 나중에 바꿀 생각으로 글을 씁니다.


유도하다 반복되는 무릎 부상이 심해져서 mri 촬영을 했습니다. 결과는 십자인대 완전 파열.


어느 정도 걸을만했고 자전거 타거나 살살 유도도 할만하여 그냥 파스나 좀 바르고 말려니 후배 물리치료사가 큰일 난다고 수술을 권합니다.


결국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신마취하는 대수술을 예약합니다. 한인들이 많은 카페에 관련 정보를 찾아보니 의사 두 명이 나옵니다.


레오나드라는 중국계 전문의는 70대인데 무척 자상하고 실력이 좋다고 합니다. 마침 거리도 집에서 10분 거리입니다.


스즈키라는 다른 일본계 의사는 나랑 비슷한 40대인데 사무실이 멀리 있어서 레오나드 선생님에게 예약을 합니다. 그리고 삼 일 후에 비서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선생님이 교통사고가 나서 당분간 집도를 못하신다고. 미안하다고.


살면서 십자인대 복원 수술을 하는 일도 많지 않은데 하필이면 그 의사가 수술을 앞두고 교통사고가 나다니 참 일이 꼬이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다시 귀찮고 느려터진 호주 행정 절차를 밟아서 스즈키로 변경합니다. 수술 잘 마치면 이걸로 브런치 하나 꼭 써야지. 이런 서사가 있어야 글이 풍부해지니까 좋게 생각하기로 합니다.




저녁에 세컨잡으로 유도장을 운영합니다. 어차피 내가 좋아서 하는 운동이니 기왕이면 시드니에 한인이 만든 한국 유도장이 있으면 좋을 것도 같아서 후배 코치들하고 시작한 것이 2016년 일입니다. 제가 선수는 아니기에 수업을 관여하지는 않는 편이고 주로 행정, 광고, 도장 청소, 물품 관리 따위 허드렛일을 하고 있습니다.


수술 전에 커뮤니티에 광고하나 올리고 수술하자는 심경으로 올렸더니 몇 시간 후에 연락이 바로 옵니다. 유도랑 주짓수 경험이 있는 한국 학생인데 마침 마땅한 곳을 찾다가 한인이 많은 곳으로 보여서 오고 싶다는 내용입니다. 경험이 있는 친구이니 설명하기도 쉽고 알아서 잘 적응할 것 같아서 수술 전에 보고 싶어 도장에 하루 놀러 오라고 약속을 정합니다. 정식 가입도 하겠다 하여 단톡방에도 추가하고 거의 우리 유도 식구가 됩니다.


월요일 저녁 수업에 오고 싶다 하여 보통은 가지 않는 월요일 저녁 수업에 다른 약속을 모두 취소하고 갑니다. 훌륭한 회원 하나를 얻고 수술 들어간다니 맘이 뿌듯합니다. 여덜시 경에 보기로 했는데 아홉 시가 가까워도 연락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길을 못 찾아서 그런가 싶어 기다려 보다가 이제는 내가 집에 가야 할 상황이라 가기 전에 연락을 해봅니다.


"안녕하세요? 유도부인데요. 어디세요?"

"어디요? 유도.. 아.. 오늘 제가 바쁜데.."

"오늘 오신다고 해서 제가 지금 기다리고 있는데요."

"저 오늘 일이 있어서 못 갔는데요. 말씀드린 다는 것이 깜빡했네요. 죄송합니다. 담에 뵈죠."


내가 사정이 있어서 당분간 올 수 없으니 가입 서류 등은 이메일로 교환 전자서명하기로 하고 회비는 온라인 이체로 부탁했지만 현금으로 다음 주에 하자네요. 내가 사정이 있어 그러니 이번만 계좌이체하자고, 수술 마치고 오면 그때는 얼굴 볼 테니 현금으로 하자고 '에이씨, 현금이 편한데'하는 것을 살살 달래 봅니다. 역시 MZ세대들은 자기주장이 확실하구나. 이것도 장사이니 고객 하자는 대로 최대한 맞춰줍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이런 소상공인 고충도 브런치에 써볼 수 있으니 오히려 좋은 일이다!


도장에서 대충 일 마치고 4주 후에 보자며 관원들이랑 인사도 하고 집으로 오니 새내기 친구가 연락이 왔습니다. 저 바빠서 운동 못할 것 같습니다 가입원서 보내지 마세요. 그래요 일이 먼저지요, 알겠다고 했는데 기분이 지랄 같습니다. 자영업 10년 하면 뼈가 녹는다는데 무슨 말인지 살짝 알 것도 같습니다.


이런 것이 하루 이틀 일인가 싶고, 오전에 내가 먼저 연락해서 오늘 저녁 오신다고 했지요? 확인 못한 내 죄도 크다 생각하면서 브런치를 켭니다. 라이킷 눌러 주신 사랑스런 우리 작가님들 독자님들 보면 분이 삭힐 듯해서입니다.



접속해 보니 못 보던 알림이 왔습니다. 조회 수가 30 언저리이던 제 평소 글 중에 하나가 갑자기 천을 돌파했다는 문자입니다. 이거 뭐지? <캣토피아>가 메인에 걸렸습니다.


"여보, 나 메인 떴어!!!!"

"뭐? 브런치 메인?"


맨날 밥상머리에서 브런치 메인 언제 뜨냐고 궁시렁 거린지 한 달이니 아내도 척하면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 신기하고 행복한 순간을 함께 마주합니다. 프로이트가 쥐를 잡아온 덕이니 프로이트도 강제 시청시킵니다.


"프로이트, 이거 봐, 아빠 메인 떴어!"


브런치를 별로 안 좋아하는 우리 프로이트, 2023


와우, 이렇게 기쁠 수가! 브런치 작가 7주 만에 메인에 떴다니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스크린 샷을 보냅니다. 올림픽 금메달이 부럽지 않고 이상 문학상 당선자 기분이 이럴까 싶습니다. 브런치가 뭔지도 모르는 분들에게도 강제로 설명하면서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감동을 강요합니다. 대부분은 크게 관심이 없지만 상관없습니다.


일상에도 변화가 옵니다. 밥상에 반찬이 달라집니다. 아내가 가장 기뻐하고, 메인에 오른 이후에는 슬며시 저를 작가로 인정하는 듯한 눈빛이 느껴집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내가 이런 사람이야 어깨에 뽕이 쫙 들어갑니다.


알아보니 한 번 메인에 오르면 일주일은 간다고 합니다. 그럼 그 일주일을 최대한 즐기기로 합니다. 수많은 상상을 합니다. 내 글을 보고 온 사람 중에 거대 출판사 직원이 있어서 바로 책으로 만들자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하나? 한국 출판 계약서 양식을 구글로 찾아봅니다. 미리 준비를 해둬야 불리한 조건에 당하지 않겠지. 한문투가 많아서 무슨 말인지 당최 읽어도 모르겠으나 계약서 그림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날 사랑한> 시리즈이니 그것이 메인에 오른다면 우리 사회에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 생각도 해봅니다. 내가 볼 때 이건 책보다는 넷플릭스에서 여덟 편짜리 드라마로 만드는 게 좋겠다고 결정 내립니다. 


그리고 광고 회사 다니는 친구 문감독에게 내 글을 시나리오로 바꾸는 작업에 대해서 진지하게 물어봅니다. 예전 같으면 그 친구도 대충 귓등으로 듣겠지만 메인에 오른 작가 부탁이니 답변에 진정성이 느껴지고 자기 회사를 꼭 제작사로 선정해 달라는 확인까지 합니다. 제 글이 1인칭 주인공이니 유도 선출 '조타'군이 주연으로 좋겠다 낙점해 둡니다. 문감독도 알겠다고 하네요.




제 주변에는 사실 브런치 작가가 두 명 더 있습니다. 둘 다 여자 후배로 제가 브런치 작가인 것은 아직 이야기하지 않아서 모르는데 좀 더 유명해진 후에 말하려고 참던 상황입니다. 그러다 다른 일로 한 명에게 연락을 합니다.


"은피디, 잘 지내지?"

"형부 오랜만이에요!"


쓸데없는 이야기 좀 하다가 내 글이 메인에 올랐다는 말을 언제 할까 기회만 보고 있습니다.


"아, 맞다. 브런치 글은 요즘 쓰고 있나?"

"저, 얼마 전에 첫째가 태어나서 정신이 없네요. 브런치 손 놓은 지 좀 되었어요."


아이가 없는 저로서는 그 친구가 신이나서 이야기하는 아이 키우는 고충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지 모르기에 더 이상 무어라 말을 이어가지 못합니다. 마치 브런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브런치 강제로 설명하는 듯한 시간이 이렇겠구나 생각하며 아기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렇구나. 아기 귀엽겠다. 건강하게 잘 키우렴! 


그렇게 대화는 끝이 납니다.




여러분들 응원 덕에 수술을 잘 마쳤습니다. 옆에서 챙기는 아내가 가장 고생했고 장모님은 수술 직전에 전화로 위로도 해주시고 다들 저 때문에 걱정이 많으십니다. 엄마나 우리 가족에겐 일부러 말씀 안 드렸는데 빨리 쾌차하면 되니 굳이 연락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수술하는 과정도 브런치로 쓸 만한 작은 서사들이 몇 개 있습니다. 수술은 잘 되었지만 대기실에서 오래 기다려야 했던 것들, 우연히 만난 한국 마취과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님들 이야기 그리고 아주 불친절했던 호주 피지오 아줌마 짜증은 브런치 소재로 딱입니다. <호주에서 십자인대 수술해 보기> 이런 발랄한 제목으로 글을 쓰면서 은근히 그 호주 아줌마 뒷담화 좀 할까하다 메인에 오른 작가이니 배포 크게 넘기기로 합니다.


수술 후에 두 번째 브런치 작가라는 후배를 아내랑 같이 만납니다. 커피 마시는데 이번에도 먼저 그쪽에서 브런치 이야기를 꺼내 줘야 내가 덜 모양 빠지게 메인에 오른 이야기를 꺼낼텐데 했지만 대화는 영 브런치 쪽으로 갈 생각을 안 합니다.


이걸 눈치챈 아내가 먼저 슬쩍 브런치 요즘 쓰세요? 물어보니 브런치요? 하면서 뭐 그런 시답지 않은 것을 묻냐는 투로 답합니다. 하긴 메인에 오르지 못해 본 사람은 브런치에 나같은 감동이나 집착이 없겠지. 딱 봐도 귀여운 무명작가님 이시구나 싶어, 어떤 조언을 좀 드릴까 속으로 준비를 합니다.


"제가 요즘 바쁘기도 했고, 예전에 쓰던 글이 매번 메인에 오르고 제 코너가 생기는 덕에 평균 조횟수를 30만씩 찍었거든요. 그래서 Daum에서 책 발간을 하자고 연락이 왔는데 계속 그쪽에서 원하는 글을 맞춰서 쓰기가 부담스러워서 조금 논의하다가 접었어요. 그리고 이젠 안 해요."




<캣토피아>는 결국 제목을 바꾸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메인에서 내려옵니다. 메인에 걸리는 호사를 누렸으나 조회수 6천도 찍지 못하고 마무리되었네요. Daum에서 준 기회를 이렇게 살리지 못했으니 이것으로 저는 끝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하루 종일 제 글을 더 읽습니다. 제 글에 가장 큰 팬은 저거든요. 제가 보고 싶어서 올리는 글이니까요. 그렇다 보니 요즘은 다른 작가님들 글을 잘 읽지 못합니다. 제 글에 오탈자를 찾거나 예쁘게 문단 수정하는 것 말고는 브런치 활동을 못하는 상황이라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하루에 꼭 한 편 이상은 다른 작가님들, 방문해 주시는 분들, 라이킷 눌러주시는 분들 글을 읽으려 노력합니다.


김소민 작가님 글을 어제 보고 댓글도 하나 드렸습니다. 매 순간 너무 고통스럽지만 독한 약을 끊은 이야기를 보면서 얄팍한 내 인생, 내 글들이 떠올랐네요. 작가님, 힘내세요. 멀리서 응원합니다.


글이 갑자기 이상하게 마무리되려는데 그냥 그렇게 하기로 합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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