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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알 May 16. 2024

공무원 합격 후, 나라에서 부모님께 보낸 편지

고난과 역경은 삶의 꽃으로 다시 피어나

"까톡왔숑"


치열한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숨을 고르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편지? 나는 부모님이 같이 보낸 사진을 확대했다.



우와! 합격을 한 신규직원들의 집으로

아니, 부모님의 댁으로

윗선에서 일일이 편지를 보내주신 것이었다.


한 통의 정갈한 편지 글을 읽고 있자니

6년 동안의 취준생 시절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6년의 기간 중, 몇 개월은 무역회사에서 잠시 일했다.

오래 일할 직장이라 생각하며 입사한 곳이었는데

해외영업으로 실적을 내야 하는 압박감이

나에게는 좀 컸던 것 같다.


외국인들과의 대화로 영어는 정말 많이 늘었지만

평생직장은 아닌 것 같은 걱정에 그만두었고,


그곳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절에서 운영하는 산골짜기 고시원에 들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나는 모임을 좋아하는 극강의 E였기 때문에

노는 게 제일 좋은 나의 뽀로로 본능자제하려면

산속 밖에 답이 없었다.


첩첩산중 고시원이라 사람 친구들은 없었지만

대신 '멧돼지, 고라니, 꿩, 다람쥐, 형광나방,

그리고 대장인 급식소 옆 한 덩치고양이'의 동물 친구들을 얻었다.

(*군필 동생 말로는 짬타이거'0')


살면서 형광나방을 이때 처음 봤는데

연둣빛이 참 영롱해 정말 팅커벨인 줄 알고 만질뻔했다.

이 또한 군대에서 자주 출몰한다고 함.



▪️6년의 기간 중, 여러 시험과 직장에 합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운과 맞지 않았는지

좋게 이어지진 못했다.



▪️또한 6년의 기간 , 1/3은 치료와 재활로 보냈다.

평생 건강하게 살아왔던 나였는데

살면서 처음으로 큰 질병이 생겨

20대 중반에는 통증으로 일상생활 자체를 못했다.


집에서 기어 다니며

계절이 가을-겨울-봄으로 바뀌는 걸

방 창문으로 알 수 있었다.


아픔을 참아가며 억지로 집안일을 해야 했고

앉아서 필기하는 게 통증으로 힘들어서

누워서 오디오로 강의를 들으며 머릿속에 필기했다.


그래도 벽 곳곳마다 외워야 할 것들을 붙여놓으며

아픈 사람들 중에서는

나름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고 말할 수 있다.


남들보다 오래 걸리고 더 힘든 과정이었지만

결국은 최종적으로 시험에 붙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만큼 더 값진 합격이었는데

이렇게 나라에서 부모님께 편지까지 보내주시니

그동안의 시련이 어느 정도는 보상되는 느낌이었다.


이 편지 한 통이 뭐라고.

힘들었던 오전 근무를 싹 다 잊게 해 주네. 



고난들이 보상받는 것 같았던 순간은

한번 더 있었다.

바로 전한길 선생님께 받은 감사패!

출처: 네이버 프로필


최근 TV예능까지 진출하신

명강의 & 공시생취준생 대상 동기부여 조언

으로 유명하신 스타강사 전한길 선생님.


출처: 유튜브 짠당포


전한길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한국사라는 과목이

내가 가장 좋아했던 영어를 앞서기도 했다.


그만큼 선생님의 국사 강의는

재밌도 으면서 인생 자체 큰 도움이 되었다.


주변 수험생들은 나중에 취직하면

해외여행을 꼭 갈 것이라는 꿈을 품었지만


나는 그런 여유가 생긴다면

무조건 한국사에 나오는

'국가유산, 궁궐 탐방'을 하겠노라 계획했다.

(*참고로 24.5.17.부터 문화재 대신 국가유산 입니다)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면서 힘들 때마다

전한길 선생님 강의를 돌려 듣고

카페에 매일이 슬픈 내 심정을 적으

몸과 마음이 아픈 날들을 버텼다.


(*전한길 선생님께서 내 글에 답을 달아주시기도 했는데

이제는 너무 유명해지셔 이 글을 읽으실 수 있을까.

꼭 읽어주셨으면.)



그렇게 결국 나는, 건강이 회복된 동시에

30대에 '늦깎이 직장인행' 배에 탑승하며

'울릉도행' 배에도 탑승하게 되어버렸다.






그동안의 글에서도 적었듯 

울릉도로 발령이 나자마자

다들 기피하는 회계급여 업무를 맡게 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로서

일한 지 며칠 만에 몇천만 원을 돈으로 메꾸어야 

곤경에 처한 적도 있었다.


'그냥 이번 달 직원들 급여를 못준다고 공지해야 하나?

내일이라도 당장 대출을 받아서 일단 해결을 할까?

아니면...

정말 내가 죽어야 끝나는 걸까...?'


낡은 사택의 창문으로 스며드는 새벽 달빛 아래에서

나는 수없이 안 좋은 생각을 했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입사하자마자 힘든 업무를 떠 넘겨받아

도와주는 사수 없이 혼자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다

결국 죽음을 택하고야 마는

나 같은 신규들을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바로 그 상황을 똑같이 겪었으니까.

위로받을 가족친구하나 없는 망망대해 섬 위에서.


그런데 내가 왜 죽지 못했냐고.


그건 바로 직업을 갖기 위해서

수년동안 노력했던 내 인생아까웠기 때문이다.


남들 놀 때 제대로 놀지도 못했고,

돈이 없어 먹고 싶은 거 사 먹지도 못했다.

고시원에서 국수가 나오는 토요일 점심만 기다렸다.

그게 오로지 나에게는 특식이었다.

 후 병이 생긴 시점부터는

제일 예쁜 시절을, 침상에서 보냈다.


이렇게 힘들었었던 내 청춘을

제대로 보상받고 누리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죽는 게 억울했다.


그래서 각종 면박을 받으면서도

다른 관공서의 담당자들에게 전화를 드려가며

이리 묻고 저리 물어 어찌어찌 해결해 나갔다.


 

내가 힘들든 말든 본인 업무가 아니기에

신경 쓰지 않는 직원들도 많았지만

그것상호보완으로

집에서 아기가 언제 오냐고 울면서 전화 올 때까지

내 옆에 밤늦게까지 남아 같이 머리 맞대고 고민해 준

천사 선배님도 계셨기에

그 도움에 감사해하는 마음으로 버텼다.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나도 합격 축하패를 받고 부모님도 합격 축하 편지를

받는 좋은 날이 왔다.





나는 매일이 슬펐다.

희뿌연 안개가 늘 드리워있던

20대의 대부분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


20대가 한 폭의 천이라면

가위로 절반 이상을 잘라내고 싶다.


나같이 살기도 어렵겠다 싶을 정도로

모든 고난을 다 겪으며 30대에 직장에 들어간 나는

이제 남들보다 엄청 뒤처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아니다. 전혀 아니다.

몇 년 늦는다고 해서 내 인생은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몇 년의 힘들었던 시간 덕분에

그 어떤 극강시련이 와도

'예전보다는 버틸만하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 

(그 당시 결국 나아서, 30대를 건강하게 잘 살다가)

무리한 직장 업무로 인해 작년에 질병이 재발하여

잠시 일을 쉬고 있다.


그렇기에 현재도 통증으로 힘든 사실이다.


그래도 처음 이 질병이 걸렸을 때처럼

내 인생을 비관하며 죽고 싶다는 생각은

적어도 지금은 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경험이든 어떤 시련이든

결국 생에 다 도움이 되었다.


그 해 겨울, 고난과 역경이 시들었고

다음 해 봄,

추위를 이겨낸 삶의 꽃으로 피어났다.


통증으로 집에서는 기어 다니지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 아픈 날엔  이렇게 글을 쓰며

내 존재가 이 세상에서 쓸모없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우울한 생각을 떨쳐버리려 한다.


다시 병이 재발하지 않았다면

이 글들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에도 반드시 극복하고 싶다.


이렇게 마음이 단단해질 수 있게 된 이유는

다 예전의 힘들었던 경험들 덕분.


그러니 우리 인생의 그 어떤 경험 하나, 

버릴 것 없다.





오늘의 울릉도 정보

✔️오늘 편지 이야기가 나오니 울릉도의 우편택배 상황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울릉도에서 편지(택배)를 보내거나 받는다면, 육지보다 2~3일은 더 걸린다고 넉넉하게 생각해 주세요.


울릉도에서 호박엿 같은 기념품택배로 보내고 싶으실 땐, 가게에 말씀하시면 사장님께서 배가 뜨는 날에 맞춰 최대한 빨리 육지로 보내주신답니다.

현지분기에 배 운행 상황을 하게 잘 알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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