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설 aka꿈꾸는 알 May 25. 2024

핫한 예능프로의 공식: 울릉도를 거쳐라

연예인 만나려면 서울 성수동? 아니, 울릉도!

업무가 너무 많아 평소보다 일찍 출근한 나는

회사 골목에 차를 주차한 뒤 칫솔을 챙겨 내렸다.


양치도 화장도 하지 못할 정도로 일찍 출근했기 때문에

비어있을 회사의 화장실로 직행 할 생각이었다.


울릉도 도동은 골목이 정말 좁기 때문에

차 한대가 지나갈 때는 벽에 바짝 붙어있어야 하는데

아니나다를까 저 멀리서 마침  큰 차 한대가 오고있었다.


'오늘도 역시나 바짝 붙어야 할 구운 쥐포 운명이네.'


나는 오도가도 이도저도 못한채

내리자마자 내 차에 납작하게 붙어섰다.


그런데 차에 적힌 글자 MBC가 서서히 보이더니

가까이 올수록 프로그램 글자가 또렷해졌다.

<선을 넘는 녀석들>


우와! 전한길 선생님의 영향으로 한국사를 좋아하던 내가

유일하게 보는 몇 안되는 예능프로그램들 중 하나였다.


'우와. 뭐지뭐지. 뭐야뭐야. 어머어머. 저기 연예인 탔어.'


옴짝달싹도 못하고 차에 딱 붙어 경직된 내 몸과는 달리

눈동자는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며 차를 살피고 있었고

속으로 나는 백만가지 호들갑을 떨었다.


골목이 정말 좁았기 때문에, 차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지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다가오던 차의 창문과 내 얼굴이 마주한 그 순간

진한 썬팅 창문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루엣으로 알 수 있었다.

MC 전현무와 김종민이다!


차 안에 탄 연예인과 스텝분들이

눌러붙은 쥐포가 된 나를 일제히 바라보는게 느껴졌고

그 짧은 순간에도 쌩얼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진 나는

작고 소중한 내 차키로 내 큰 얼굴을 조금이라도 가려보았다.

(사실 차키 면적으로는 어림도 없었다는)

그렇게 부끄러운 내 몰골을 뒤로한 채 차는 쌩 지나갔다.


회사로 들어왔는데도 나의 내적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연예인과 스쳤다는게 엄청 설렜다.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역사 프로그램이었으니.


직원들이 출근하면 빨리 이 사실을 말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는중에도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은 말하고 싶은 내 욕망을 참지 못해

온라인이 되어있지도 않은 직원들 메신저 방에

나 홀로 먼저 다다다 메시지를 치고 있는데.


마침 나와 친한 달, 별 선배님이 일찍 출근하시는게 아닌가.

나는 얼른 비상이라고 소리치며 그 멤버들을 불렀다.


"선배님들! 제가 방금 쥐포였는데요! 전현무가...$*^#@!"


들뜬 마음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다 생략되어 버렸고.


"뭐? 알쌤이 쥐포를 샀는데, 전현무가 그걸 팔았다고?"


"네네!! (?) 아,아니요! 그게 아니라..."

숨을 고르고 처음부터 천천히 다시 말하자

사건의 전말을 다 들은 달, 별 선배님도 엄청 신기해했다.


"우와. 그 프로그램 나도 좋아해. 어디로 가던데요?"


"저~기. (최대한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언덕을 가리키며)

저 위쪽으로 올라갔어요!"


"아. 그 쪽이면 독도박물관 있는 곳인데."


"그럼 저희 근무시간 전인데, 잠깐 보고 오면 안될까요?"


나의 제안으로 든든한 달과 별 선배님이 동행하여

우리 셋은 이른 아침 이슬을 맞으며 박물관으로 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이번에는 실루엣이 아닌 또렷한

전현무님과 김종민님의 실물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촬영에 방해가 되지않기 위해

벽을 잡고 얼굴만 빼꼼히 내밀어 구경했지만

그것조차 너무 신기했다. 이 멀리 울릉까지 촬영을 온 것이.

출처 방송국 유튜브 채널


그런데 울릉도에 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결코 신기한 일이 아닌

수 많은 일들 중 하나일 뿐이었단 사실을.

바로, 울릉도는 핫한 예능프로그램과 셀럽 방문의 성지로

점점 급부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보면 직원들이 나를 툭툭치며


"지금 울릉군청에 박수홍님 오셨대요.

 울릉 홍보대사 위촉식 중이라네요."


카페를 갔는데 사람들이


"얼마 전에 여기 그 유명한 여배우 왔었잖아요.

이 옆 1박에 천만원하는 그 숙소에 머무르셨대요."


걸어가다 경찰아저씨를 만났는데


"여기 시골경찰들 우리랑 같이 근무했던 거 알죠?

 얼굴 넣어서 사진 찍고가요."


그 당시 울릉도는 대한민국의 핫플 중에 핫플인 곳이었다.

유명한 프로그램과 유명한 셀럽이 되려면

울릉도를 거쳐야 한다는

비공식적인 공식까지 생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심지어 며칠뒤에는 선착장에서 육지행 배를 기다리는데

사람들이 왁자지껄 뛰어다니며 어수선해지더니.


"알쌤, 지금 막 일박이일 멤버들 배에서 내렸대.

알쌤이 애정하는 김선호님 저기 있잖아."


이제 나는 연예인이 신기하지 않을 만큼

울릉도에서 이미 다양한 연예인 사례를 들었었기 때문에

더이상 아마추어처럼 달려가서 구경하지 않았다.

나는 팔짱을 끼며 느긋하게 일박이일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음. 오늘 날씨도 좋은데. 촬영하기 괜찮겠네.

(고개를 끄덕이며) 잘 잡았네. 날짜."


이제는 촬영 조건까지 신경써주는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요즘도 TV를 틀면 울릉도가 자주 등장한다.

과거 <미운우리새끼>에서 나왔던 울릉도의 물회 식당은

여름엔 예약안하면 먹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급부상했으며


최근에 <나 혼자 산다>에서 또다시 울릉도를 방문하여

김대호님이 갔던 로또집과 가게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울릉의 나는, 서울특별시 친구보다 더 많은 촬영을 보았다.

출처 방송국 유튜브 채널


내가 사는 이 곳은 4면을 둘러보면

아득한 바다와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도서벽지 중에서도 도서벽지인 울릉도였다.


태풍과 폭설로 울릉도가 고립될 것이 예상되는 날에는

미리 식량들을 사서 저장해놓기도 했고

같은 한국에 있는 가족을 몇달간 만나러 나가지 못해

마치 해외에 파견나가 있는 것 마냥 영상통화를 하며 살았다.



출처 방송국 유튜브 채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립된 섬을

'한국의 갈라파고스' 라 칭하며

<정글의 법칙>에서 생존하러 온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울릉도의 천혜절경이

실은 갈라파고스보다도 더 멋진 곳이란 것을

시청자들에게 주고 싶었기때문이 아닐까?


높고 빽빽한 아파트들이 즐비한 한국 사회에서

아직 울릉도는 고층건물 하나없는 동네이기 때문에

진짜 자연환경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울릉도가 내 고향도 아니고

내 생에 울릉도에 산다는 건 꿈도 꾸지 않았던

어느 날 갑자기 직장발령으로 울릉군민이 된 30대였다.

처음에는 그렇게 입도하기 싫어 울고불었고

출근하고부터는 일이 너무 어려워 울고불었던 신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울릉도에서 살고 왔다 말하면

오히려 부럽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나는 인생에서의 소중한 추억과 인맥을 얻었다.

섬에서도 살아봤기에 이제 나는

어디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까지 생겼다.

(*단 '도시라도 벌레 많은 곳은 여전히 자신없음' 주의)


산속 고시원부터 대학병원 입원실까지 거치며

힘들고 아팠던 6년의 취업준비 결과인 울릉 관공서 발령을

그 당시에는 '관운없는 내 팔자의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몇년 지난 지금은 '가지고 싶어도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선물'

을 받았던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즉 울릉도로 이사 할 당시 짐을 꾸릴땐

나는 참 불행하고 운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은 불운이 아닌

그냥 내가 직면한 상황이 잠시 불편해진 것 뿐이었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불운은

실은 불운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이 불행하고 불운한 것 같을 땐

이렇게 생각해 보면 좋겠다.

내가 운이 없어 잠시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지만

이 불편을 일찍 겪은만큼 꼭 보상이 되어 선물로 돌아온다고.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며칠 전 지인이 보내준 카톡 메시지가 생각난다.


얼마나 행복해지려고

지금 이렇게 힘드세요, 알님.

힘든만큼 나중에 더 좋아지더라구요.


※지금 이 문장을 읽고 계시는 모든 독자님들께 이 메시지의 기운을 전파합니다.





◇오늘의 울릉도 정보◇

✔️울릉도 휴가 중 어떤 장소들을 방문할지 고민이 되시는 분들께서는, 위의 방송 프로그램들을 유튜브의 짧은 동영상으로 다시 보시는 것도 좋아요. 방송 프로그램이다보니 가볼만 한 울릉도 관광지와 맛집에서 촬영을 했으므로 도움이 많이 된답니다.

제 글 8, 9, 10화에도 울릉도 관광지와 먹거리를 소개해놓았으니 참고해주셔도 좋겠습니다.



이전 11화 공무원 합격 후, 나라에서 부모님께 보낸 편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