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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설 aka꿈꾸는 알 May 31. 2024

13화) 첫 공직생활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공무원으로 일해보니 행정법, 행정학이 전부가 아니었다

공무원에 합격한 후 정식 임용을 기다리는 몇 달 동안 행정법과 행정학을 공부하고 가야 할지 또는 컴퓨터 자격증을 취득하면 좋을지 궁금해하는 합격생분들이 많다. 나 또한 8월에 합격 통지를 받은 후, 그다음 해 1월 발령까지 약 4개월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입사해서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궁금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기간에 행정법 책을 다시 한번 펼쳐보았으며, 컴퓨터 학원을 1달 정도 다녔다. 이것들이 임용 후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31살에 처음 공무원증을 목에 걸고 일하면서 겪은 예상치 못한 사례들을 소개하며 말씀드리고자 한다.



1. 공직사회에서는 무조건 말끝에 '다나까'?


입사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선배님들이 하시는 걸 눈치껏 따라 하고 있던 어느 날,  남자 선배님 분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말이 있다고 하셨다.


"알쌤, 아까 보니 직원들한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던데 그러면 안 돼요. 더군다나 신입인데 누가 말 끝에 '요'라고 끝냅니까? 이제부터 다나까로 끝나게 인사하세요."


헉. 나는 업무로 혼이 나는 건가 했는데, 예상지도 못한 곳에서 한 소리를 들었다. 직원들이 출근할 때  다 같이 인사를 하는데 그 틈에 나도 같이 인사를 한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선배들을 보며 따라서 인사를 했는데, 그 인사가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신입이니 '-요'라는 말투를 쓰면 안 된다고 당부하셨다.


회사 한 구석에서 그 꾸지람을 들은 이후부터, 나는 말할 때마다 무조건 한 번씩은 멈칫하게 되었다. 그 말투가 그동안의 내 삶에서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나까를 문장에 녹아들게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계장님, 오늘 출장 몇 시에 출발하면 될까요? 아! 아니 아니요! 몇 시에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선배님, 오늘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 아! 아니 아니요! 맛있게 드셨습니까?"


나도 모르게 -요로 말했다가, 얼른 -다로 바꾸는 일이 많아졌고 혹시 그 선배님이 또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해 주위를 자주 둘러보기도 해싸. 나는 점점 삐그덕거리는 고장 난 다나까 로봇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계장님께서 나에게


"알쌤, 말투 편하게 해. 그래야지 우리도 편한데~ 왜 이렇게 군기가 들어있어."


그 남자 선배님보다 계장님의 직급이 더 높았기에 ^^; 나는 계장님의 말씀을 따라 '다나까'와 '요'를 적절히 섞어 쓰며 바로 자연스러운 말투를 되찾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ENFP의 밝은 내 성격대로 직원들과도 점점 이야기 나누게 되었다. 그날도 점심시간 직전에 직원들과 웃음꽃을 피우다가, 요로 말을 끝내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 남자 선배님과 눈이 마주쳤다.


'헉. 나 방금 또 '요'라고 끝냈는데... 어쩌지, 또 혼나는 거 아니야...ㅠㅠ.'


갑자기 두려움이 먹구름 밀려오듯 내 마음을 뒤덮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남자 선배님이 아주 크게 껄껄껄 웃으시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아, 정말~ 내가 요즘 알쌤 덕분에 웃어요. 알쌤이 밝은 말투로 직장 분위기를 참 즐겁게 만들어준다니깐."


???????

(뭐지. 이제 요를 써도 된다는 암묵적인 긍정이 신 건가요?)


공직생활을 하면서 나는 아직도 정답이 뭔지 혼란스럽지만 나름 결론을 내렸다. 일단 보편적인 상황에서는, 바르게 말씀드리는 자세이기만 하다면 다나까와 요를 적절히 섞어 말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제조건인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 대상이 직원이든 민원인이든, 누구에게나.


하지만 그 남자 선배님의 말씀이 꼭 꼰대였던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공식적인 자리 나, 윗분들에게는 다나까로 말씀드리는 것이 더 존중드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써도 적절하다. 그러므로 대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다나까와 요를 섞어 쓰며 예의만 갖추면 된다. 만약 모든 상황에서 초기 알로보트처럼 다나까 말투만 쓴다면, 점점 본인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지 말입니다? (*여전히 다나까는 어렵네요)




2. 법과 규정을 지키다 보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계속되는 야근으로 인해 아침마다 어깨 위의 곰 두 마리와 동반 출근을 하던 나에게, 어느 날 부서로부터 인원이 모자라니  줄 수 있냐는 자리 이동 제안을 받았다. 나는 억 단위의 회계를 다루는 지금의 업무 긴장감에서 당장이라도 해방되고 싶었기에,  잠시 고민을 하다가(*정정: 고민하는 척하다) 바로 짐보따리를 싸 부서로 옮겨버렸다.


그런데 이 이동은, 나는 인복도 많은 만큼 일복도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옮기자마자, 전임자가 마무리하고 가지 못한 행정처분을 내가 급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점검을 나갔던 업체에서 규정을 어긴 것이 있어, 어쩔 수 없이 그 업체에게 며칠간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오 마이 갓. 영업을 며칠 못한다는 것은 생계와도 직결되는 일이라 그걸 좋아할 만한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업체를 처음 마주하자마자 나는 행정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입사하자마자 연말정산을 담당해야 했던 몇 달 전 격을 나는 다시 받았다.


업체에서는 당연히 반발이 일어났다. 새로운 담당자가 오자마자 이게 뭐냐며. 조사는 전임자가 했지만 모든 화살과 원망은 나에게로 돌아왔다. 내가 이 부서로 오기 전부터 있었던 절차를 다 설명드렸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신규 한 명이 오자마자 겉멋에 들어 처분을 막 때리는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그 업체에서 아예 나를 직접 찾아오셨다.


나는 일단 그분들을 민원인 휴게실로 안내드린 뒤에, 차를 한잔씩 타 드렸다. 커피 잔을 스푼으로 젓는 30초 동안 침착하게 생각했다. 과거에 내가 민원인으로 관공서에 갔을 때, 담당 공무원이 짜증을 내며 내 말을 막고 일방적으로 말해서 기분이 안 좋았던 적이 있었다. 혹시 내가 공무원이 된다면 최대한 사람들에게 공감해 가며 설명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공부했었다. 선배님들께도 이번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갈지 조언을 구하며 공부해왔지 않은가. 그래 오늘이 바로 그날이야, 일단 경청한 뒤에 공감하며 설명드리자!


차를 내려놓자마자 바로 업체분들의 하소연이 시작되었고, 나는 일단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드렸다. 우리 집에도 사업을 하는 친척들이 많기에, 업체의 입장이 이해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더구나 섬에서 영업 중인데 정지를 당하면 육지보다 더 힘들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업체의 상황에 우선 공감해 드리며 나도 이 처분을 내리는 데에 마음이 좋지 않다는 점도 말씀드렸다. 하지만 모든 업체가 법과 규정을 준수하며 운영을 하기 때문에, 한 업체만 봐줄 수 없이 다 공정하게 해야 한다는 점도 최대한 잘 받아들이실 수 있게 말씀드렸다.


신규인 내가 진땀을 흘리며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자, 업체에서도 어느샌가 이해를 해주시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우려와 달리 그날의 대면은 나름 무사히 잘 끝났고, 그렇게 몇 주간의 행정처분 절차가 진행되며 결국은 잘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이런 절차를 진행해야 할 때면 마음 한편은 불편하고 찜찜했다.




위의 두 가지 사례는 내가 겪었던 수천 가지 사례 중 2개이다. 예상치도 못하는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 우리 신입직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가 취업 면접 준비로 그렇게 외웠던 모범답안인  <상황에 맞는 유연한 대처능력>, 그리고 <경청과 공감능력>이 아닐까.


1번에서 다나까 남자선배님께 혼이 난 이후로 입을 꾹 닫게 되었거나 아니면 반대로 대들었다면 아무래도 지금처럼 친한 직원들이 생기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단 배워나가야 할 신입이었기 때문에 선배님과 계장님의 조언을 받아들이며 상황에 맞게 말투와 스킬을 익혀나갔다. 2번에서도 갑작스러운 행정처분 인수인계로 심히 당황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나, 민원인께 공감을 해드리며 상황에 맞게 규정을 준수해 나갔다. 여기서 경청 없이 내가 배웠던 행정법 절차로만 설명했다면, 분위기가 경직되었을 것 같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행정법과 행정학은 당연히 알면 도움이 되지만, 우리는 일하면서도 수시로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드나들며 내용을 확인하기 때문에, 입사 전까지 반드시 다 공부해오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컴퓨터도 전산직이 아니라면 문서 작성에 필요한 적당히 빠른 타이핑, 단축키, 엑셀 수식 정도만 외워와도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며, 승진할 때 이외에는 자격증이 잘 쓰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발령 대기 기간 동안 세세한 공부보다는, 책을 많이 읽어 세상에 대한 안목을 키우고, 사람들과 융화하는 다양한 모임을 많이 가져보고, 이런 것들이 지금 나에게는 더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공무원 사회에 들어오면 시야가 좁아진다. 공무원을 그만두면 뭐 먹고살지 하는 걱정까지 생길 정도로 시야가 공직에 한정되어 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공무원을 그만두고 자신의 또 다른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정말 용기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런 좁은 공직생활 우물에 대비하기 위해, 최대한 큰 안목을 가져보고 입사하셨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일하는 이 공직사회가

생각과 판단의  중심이 되어버려

이 울타리 밖의 삶이 얼마나 다양한지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가치관에도 눈을 돌려보니

세상은 참으로 다채로웠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사례들이 존재한다.


이것이 학문공부보다는

인생공부가 필요한 이유 같다.




◇오늘의 울릉도 정보◇

위의 제가 울릉도의 관공서에서 근무했던 것처럼, 섬에도 다양한 공공기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관광 중에 위험한 일이 발생했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울릉군청, 울릉경찰서, 울릉119안전센터, 울릉보건의료원 등을 언제든지 이용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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