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즐겁게 읽은 단편소설

체호프의 단편선을 읽고

by 꿈꾸는 담쟁이

이 책을 읽고 이제 ‘체호프’라는 글자만 보아도 입가에 미소가 짓고 즐겁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3달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체호프라는 이름을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처음 들었는데 알고 보니 5년 전에 읽은 책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라는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의 체호프였다. 그때도 그 책 읽으면서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리나’와 비슷한 내용의 짧은 소설이라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 단편 선에는 10개의 단편소설이 나오는데 1번 읽고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설이다. 체호프 도대체 어떤 작가길래 이렇게 애매모호하게 글을 썼는지 참 나를 힘들게 한다. 읽고 나면 와~하면서 감탄사가 나오지만 책을 덮으면 뭘 써야하지 하는 막막함이 다가온다. 특히 6장에 불과한 맨 처음 나오는 관리의 죽음은 처음 읽고 이게 소설이야?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와 비슷한 구성에 황당하였다. 오페라를 구경하다 나온 기침이 앞자리의 상사에게 튄 별일도 아닌 이 일에 사과하기 위해서 며칠 동안 안절부절 못하다가 소파에서 죽는다. 그래서 제목이 관리의 죽음이다. 이 황당한 소설을 읽으면서 도대체 체호프는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짧은 소설을 쓴 거지? 하며 여러 번 읽으며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일에 집착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경고인지? 아니면 이렇게 소통이 부재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인지? 의문만 계속 늘어나고 소설을 계속 읽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관리자의 죽음을 통해서 소통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뒤에 나오는 드라마 또한 마찬가지이다. 관리자도 용서해달라고만 떼를 쓸 뿐 용서를 구하는 태도가 글러먹었다. 그리고 용서를 해주는 이도 사소한 일에 집착하는 사람을 보며 치를 떤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정작 우리의 삶의 주인공은 나인데 다른 것에 눈이 가고, 내 인생이 아닌 타인의 인생을 모방하거나 동경하면서 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이모습은 또 다른 단편인 ‘미녀’와 결이 같다. 아름다운 미녀를 보면서 자신의 보잘것없음에 슬퍼하는 남자들을 보면서 동경하는 무언가를 보면서 우리가 그렇게 성장하기를 바라지만 너무 높은 산에 있는 그 모습에 지금의 나를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


이와 비슷한 단편이 ‘드라마’였다. 뚱뚱한 여자가 어느 작가를 찾아가 자신의 극본을 봐달라고 5번이나 찾아간다. 어쩌다 마지못해 그 청을 받아주지만 내용이 재미가 없어서 듣고만 있는 작가는 흘러들으며 괴로워한다. 이제 1막이 끝나고 끝이나 나보다 하는데 5막까지 있다는 청천병력 같은 이야기에 충격을 받고 듣다듣다 못 참고 문진으로 그 여자를 죽인다. 그 남자를 배심원은 무죄를 선고한다. 짧은 단편이지만 많은 공감이 가는 글이었다. 처음 한 번 읽을 때는 이 여자가 뚱뚱한 여자가 아닌 쭉쭉빵빵의 예쁜 미녀였다면 문진으로 내려쳤을까? 그 극복을 엄청 자세히 경청하며 들어주었을 것 같은 작가였다.

하지만 그녀가 뚱뚱하고 보잘것없기에 그녀가 하는 멋진 극본들이 따분하고 지루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그 극본을 꼭 그 작가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건 남편을 살리려고 의사를 찾아가는 여인과 닮았다. 의사가 장티푸스에 걸렸어도 자신의 남편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무조건 자신의 집으로 들이고 그 의사가 의식을 잃자 다른 의사를 데려와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한 여인, 그 여인이 그렇게 엉뚱한 곳에 집중하는 동안 자신의 남편은 죽음에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또 하나의 장티푸스이야기는 한 장교가 기차에서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그는 어디서 장티푸스가 걸렸는지 모르지만 집에 도착하여 쓰러진다. 며칠 동안 의식이 왔다 갔다 하며 사경을 헤매다가 깨어나 숙모에게 대화를 하는데 눈물을 흘리는 숙모를 보며 안 좋은 예감을 가진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자신의 여동생이 자기에게 장티푸스가 옮아서 며칠 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순간 현진건의 ‘운수좋은날’이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체호프의 작품에는 모두 죽는다. 체호프 자신도 실제로 죽었을 때 “Ich ster-be” 해석하면 “죽을 것 같아” 라는 말만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죽음이 어떤 것이기에 이렇게 다양한 단편소설들이 나타날 수 있는지 체호프의 다른 작품들을 읽으며 알아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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