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를 읽고
눈으로 보는 것과 진리를 아는 것의 차이
왜 오이디푸스는 마지막에 자신의 눈을 아내이자 어머니였던 이오카스테의 황금 브릿지로 자신의 눈을 찔렀을까? 이 질문으로 세컨드 리딩을 하였다. 오이디푸스는 말한다. “그대 비록 눈으로는 보지 못하지만, 어떤 역병이 이 나라를 덮쳤는지 알 것이오” 장님인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을 신뢰하는 오이디푸스의 행동을 보면서 어떤 면을 보고 이렇게 물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 오이디푸스와는 달리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의 미래를 예견하고 그 사실을 안타까워 한다. “지혜가 아무 쓸모 없는 곳에서 지혜롭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자신의 예언이 안타까운 결말을 가져올 것을 알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런 오이디푸스는 계속해서 질문을 하여 사실을 알고자하고 예언자인 테이레시아스는 회피를 하려한다.
이러한 예언에 오이디푸스는 노여움을 느끼고 테이레시아스에게 화를 내고 불안해한다. 이와 반대로 테이레시아스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한다. “그대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오. 그대가 어떤 불행에 빠졌는지, 어디서 사는지, 누구와 사는지 말이오.” 눈이 보이지 않는 삶이 불안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테이레시아스는 불안을 느끼지 않고 오이디푸스는 불안을 느낀다. 그리고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찌르고 나서 자신의 자식들을 걱정 할뿐 자신의 인생을 불안해하지 않는다. 보인다는 것이 불안을 만들어내는 것 중 하나일 수도 있을 거다. 보인다는 것과 진리를 안다는 것의 차이를 좀 생각하면서 토론에 참여하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