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가 “그때”라는 어법이 높은 스타일을 처음 도입하여 신곡에 쓰면서 극적인 전환을 유도하였다는 말에 어릴때 부터 읽던 동화CD에서 성우가 “그때”하면서 무서운 음악을 들려주며 긴장감을 높여주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단어가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단언컨대”라는 단어이다. 2013년 이병헌이 출연하는 팬틱의 베가 아이언 광고에서 "메탈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물불을 두려워않고 뛰어드는 용기와 어떤 시련에도 상처받지 않는 강인함, 차갑지만 약한 자를 감싸안는 따뜻함을 가졌을 것입니다. 단언컨대, 메탈은 가장 완벽한 물질입니다.”라는 광고문구로 많은 개그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단언컨대”를 유행어처럼 쓰던 때가 있었다. 그당시 ‘단언컨대 신드롬’이라는 말이 떠돌아다닐 정도였다. 서점에서는 책을 홍보할때 ‘단언컨대’를 마구잡이로 사용하면서 책들을 광고하던 카피문구들을 많이 보았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쓰는 이 단어는 사전에는 나와있지 않다. ‘단언하다’를 단언하건대로 부사로 바꾸어 사용하던 단어를 이 카피라이터는 “단언컨대”라는 말로 재탄생시키면서 하나의 언어를 창조한다.
이처럼 단테의 <신곡>을 읽은 사람들은 일상생활의 언어 속에서도 ‘그때’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반전효과를 가지면서 이야기를 하였겠지. 단테의 <신곡>이 이탈리아 언어로 쓰여지면서 단순하고 격이 낮은 문체가 숭고해지는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에 교양있는 책들은 라틴어로 쓰여있었고 이탈리아어는 하층민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분류하여 쓰였다. 그러나 단테는 이탈리아언어에 품격을 불어넣어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단테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이탈리아언어가 아름답게 변화되었다고 한다. “점잖은 말씨의 토스카나 사람이여”라는 문구를 보면 아마 단테가 쓴 이탈리아어도 토스카나의 자방방언을 쓴것이 아닐까 추측을 해본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언어로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을까?
문어체와 구어체라고 우리가 단절하여 언어를 사용하다보니 이런 결과들이 나오는것이 아닐까? 아이들과 책으로 수업을 할때 아이들의 생각을 말로 표현할때 보면 어느 시인 저리가라 할 정도로 말을 잘한다. “선생님 책에 나오는 나비가 천사처럼 날라다녀요. 우리에게는 왜 날개가 없지요?”하면서 천사같은 미소와 함께 책을 읽고 난 생각들을 열심히 이야기한다. 하지만 읽은 책을 토대로 글을 써볼까 하면 아이들이 시무룩해지면서 글 한 줄 적는데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옅보인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한것을 그대로 써보자고 하면서 같이 이야기한 것들을 상기하여서 대화한 그대로 글을 쓰게 하기도 한다.
이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 또한 그렇다. 독서토론때는 생각을 말로 전달할때 완벽한 언어로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말하며 대화를 한다. 서로의 생각에 귀 기울이고 나의 생각을 말하면서 그 책을 샅샅이 알려고 노력하면서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러다보면 토론시간은 훌쩍 지나가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토론 이후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켜면 깜깜한 마음에 한 글자 적기가 망설여진다. 몇글자 쓰지 않았는데 시간은 저멀리 가있다. 아마 문어체를 사용하여서 글을 써아한다는 압박감이 큰듯하다. 문장구조에 맞게 글을 완벽하게 마무리해야한다고 글을 쓰기 전에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메시스>에서 말하듯이 “마치 일상적 대화의 한순간을 나타내듯한 이러한 말은 양식화되지 않은 자연언어의 강한 효과를 갖는다.”처럼 일상적으로 대화하듯이 언어를 변화시키지 않고 글을 쓴다면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말하듯이 글을 써라고 지도하지만 막상 내글을 쓸때는 그러하지 못한다. 그걸 반성하고 매일 글을 쓸때 내가 말한것을 상기시키면서 글을 쓰는 연습을 하였다. 글을 완성하고나면 찝찝한 마음은 가시지 않지만 글이 완성되는것에 만족하였다. 그러나 여기에도 단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바로 말을 할때 글을 쓰듯이 완벽하게 하고 싶어서 입을 닫아버리는 경향이 생겼다. 이는 구어체와 문어체가 연결되는 과정이라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이 두가지를 혼합하려 애쓰고 있다. ‘나도 언젠가 숭고하고 격이 없는 문체로 쓰는 날이 오겠지’하며 힘들지만 매일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