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취중독서의 재미에 푹 빠져있다. 바야흐로 이 취미가 생긴 건 일주일 전이다. 하루키의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게 되었다. 그 책에서 ‘나’와 ‘쥐’는 이런 대사를 주고받는다. "왜 맥주 같은 걸 마시는 건데?" 쥐는 그것에 대해서 한참 생각하더니 5분쯤 뒤에 입을 열었다. "맥주의 좋은 점은 말이야, 전부 오줌으로 변해서 나와 버린다는 거지. 원 아웃, 1루, 더블 플레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거야."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맥주가 너무 마시고 싶어졌다.
당장 마트에 들려 블랑 맥주 4캔을 사왔다. 그리고는 냉동실에 1시간가량 맥주 캔과 맥주를 따를 유리잔을 얼려 놓고 책을 읽어 나갔다. 하루키의 책을 읽으면 항상 주인공들이 맥주를 마신다. 아마 그는 맥주를 사랑하는 것 같다. 그의 베스트셀러인 <노르웨이의 숲>에도 "나는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꺼내 테이블 의자에 앉아서 마셨다. 맥주는 한 반 년쯤 그 속에 들어있었지 않나 싶을 정도로 냉장이 잘 되어 있었다." 이런 문장이 있다. 이 문장이 갑자기 떠올라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싶었나보다. 이 차가운 맥주를 들이키며 책을 읽으니 책이 술술 읽히기 시작한다. 책 속의 ‘나’에게 나를 투영해 보기도 하고 방학 때 고향을 간 ‘나’와 ‘쥐’를 보면서 나는 지금 방학 같은 이 때 무얼 하는가?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님 특별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고민도 해보며 소설을 읽으며 나에게 질문하기도 하고, 주인공에 질문하기도 하며 정말 다채롭게 읽었다.
평소에 책을 읽을 때는 아침에 책을 읽노라면 밑줄을 열심히 그어가면서 저자는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하며 진지하게 책을 읽고, 저녁에 책을 읽으면 차분해진 내 머릿속에서 좋은 문장을 찾기 위해 열을 내며 읽었다. 맥주 한 캔이 책을 더 재미있게 해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 매력에 빠져버려서 일주일째 저녁에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그 덕에 뱃살만 훅훅 나오고 있다. 뱃살도 늘어나지만 책 읽고 나서 기분이 좋아져서인지 책이 내손에 있는 시간도 더 늘어났다. 학교 다닐 때 벼락치기로 소주 한 병 마시고 밤새 공부하고 시험을 보면 점수는 잘나왔지만 시험공부 한 내용은 머릿속에서 사라졌는데 취중독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 여운이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무른다. 취기가 없어지지 않아서이진 않겠지?
요즘 나의 하루의 끝은 시원한 맥주 한 캔과 책 하나를 머리맡에 두고 웃으면서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이제 미쳐 가는 건가?”하는 생각이 드는 나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