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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새집으로 이사

이제 우리 다섯

by 베리바니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고도 짐을 옮기는 데는 한 달이나 걸렸다.


낯선 도시의 공기가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서울의 아침은 분주했고, 어딘가 끝이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가득했다.




오피스텔에서 보낸 거의 십 년의 시간.

그곳에는 우리의 숨결이 스며 있었다.


출근 전 커피를 내리던 자리,

창가에 앉아 루피가 하품하던 모습,

바니가 장난감을 질질 끌며 만든 바닥의 작은 흠집,

심바가 숨어 지내던 책상 밑 그림자까지.


박스를 싸는 내내 마음이 자꾸 걸렸다.

물건 때문이 아니라,

그 공간에 함께한 시간들이 층층이 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니와 처음 이곳에 들어왔던 날,

루피가 내 무릎 위에서 처음 잠이 들던 밤,

그리고 심바를 데려온 그날의 긴장된 공기까지.


인덕션 불이 붙어 119를 불렀던 날,

놀라서 서로를 껴안았던 그 순간도 떠올랐다.


창문을 열면 바로 보이던 지하철역,

겨울이면 그 위로 하얀 눈이 내려

마치 일본의 기차역처럼 보이던 풍경.


그 모든 장면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기억의 조각들이 쓰나미처럼 가슴을 덮쳐

발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바니는 내 마음도 모르고 뭐가 그리 신나는지

포장된 상자 주변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놀기 바빴다.

루피는 창틀 위에서 얌전히 나를 바라봤고,

심바는 박스 틈 사이로 조용히 숨어들었다.


“이사 갈 거야. 우리 새집으로.”

아쉬운 마음 내뱉은 말에 바니가 삑삑이를 물고 와 내 앞에 앉았다.


알아듣기는 한 건지 모르지만 그땐 그 단순한 행동이

‘좋아, 어디든 같이 갈게.’

라는 대답처럼 들렸다.


심바는 꽤나 아쉬웠던 모양인지,

분명 박스 틈 사이에 누워있었는데, 어느새 우물천장 위로 몸을 숨겼다.


시간이 흘러도 내려오지 않았다.

급해진 내 마음이 전해진 걸까.

눈만 마주쳐도 더 깊이 숨었다.


“괜찮아, 결국 나올 거야.”

신랑의 말에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열 시간 가까운 대치 끝에

마지막 남은 옷가지 사이에서

심바의 호박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조심스레 담요를 덮는 순간,

팔에 따가운 통증이 스쳤다.

심바의 날카로운 발톱이 기어이 내 손목을 긁고 말았다.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지만

상처가 아픈 느낌보다는 안도의 마음이 더 커

심장이 세게 뛰었다.


“됐어. 이제 다 같이 가자.”


그리고 문득 뒤돌아본 빈방 안에는

여전히 우리의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남아 있는 듯했다. 그곳에서의 시간들이 천천히 내 등을 밀었다.




차 안에서는 심바의 울음이 BGM이 되었다.

40분을 넘게 달리는 동안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가 반복 재생되는 기분이었다.


새집에 도착하자 바니가 제일 먼저 뛰어다녔다.

루피는 조심스럽게 방을 살폈고,

심바는 한참 동안 켄넬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냄새를 맡으며 소파 밑으로 들어갔다.







나는 박스 더미 사이 바닥에 앉아

세 친구를 바라봤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낯선 공간인데,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신랑과 나, 그리고 바니, 루피, 심바


아직 박스도 풀지 못한 새집인데, 어쩐지 마음이 꽉 차 있었다.

우리 다섯이 함께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했다.


오피스텔에 두고 온 추억들이 여전히 아리게 마음을 스쳤지만, 아주 조금은 부드러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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