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공부하고 싶었는데 억지로 참았다.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학교생활이 괴로워졌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공교육은 나의 학습권을 짓밟고 공부하는 기쁨까지 빼앗아갔다.
나는 흔히 말하는 고지능자다. 초등학교 6년 내내 실과나 체육 같은 과목을 빼면 학교 수업에서 모르는 내용이 나왔던 날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다. 수업을 들으려고 앉아 있으면 뻔히 알고 있는 내용을 강제로 끊임없이 반복해야 했다. 정도는 덜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서도 이런 일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당해도 당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고통이었다.
예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공부가 어려워서 고생했다는 말은 납득하기 쉽지만, 공부가 쉬워서 고생했다는 말을 듣고 바로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성년자였을 때 학교 수업 수준이 지나치게 낮으니 내 수준에 맞는 내용을 배우고 싶다고 계속 항의해봤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애들이 아는 게 다 거기서 거긴데 무슨 헛소리냐?"
"너 그렇게 방심하다가 큰코다친다"
“그렇게 잘났으면 네가 직접 수업할래?”
아무리 항의해도 돌아오는 건 조롱과 비아냥 뿐이었다. 학교는 내가 반복학습을 거부하면 공부를 열심히 할 생각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는 내용을 반복하는 대신 모르는 내용을 배우고 싶었는데. 학교 수업이 지루하다고 말하면 내가 방만하게 군다고 생각했다. 너무 쉽다는 말은 투정이 아니라 사실이었는데. '정상'을 벗어난 지능을 가진 학생의 상황을 고려할 생각조차 없는 태도가 학교 관계자들의 반응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복습하는 기분으로 편하게 수업을 들으면 되지 않냐는 말도 자주 들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헛소리다. 복습도 모르는 부분이 있어야 도움이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한글을 다시 배워야 하니 교과서 내용을 10번씩 바둑 공책에 베껴오라고 하면 어떤 느낌일까? 복습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수행할 수 있는 과제일까?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면 독해력에는 문제가 없을 텐데, 깜지처럼 한글 쓰기를 반복하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게 되지 않을까? 나에게 공교육은 이런 상황의 연속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집단 따돌림도 많이 당했다. 특히 초등학교 때 심한 피해를 봤다. 방과 후 수업에서 다른 학생들이 자신들의 IQ를 말하길래 나도 내 IQ를 말했다 (148이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사람의 IQ가 100을 넘을 수 없다"면서 딴지를 걸었다 (헛소리다). 폭언이 이어졌지만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아무 논리도 없는 폭언 때문에 당황해서 어영부영하던 사이 상황이 끝나버렸다. 지금이라면 논리로 반박해서 해결될 상황이 아니라고 금방 파악했겠지만, 그때는 이런 상황에 대응하는 요령을 전혀 몰랐다. 이 학생은 그 뒤로도 내가 하는 일마다 트집을 잡아서 괴롭히기 시작했다. 신문을 보고 있으니까 "똑똑한 척한다"라고 꼬투리를 잡았다. 모둠 활동을 해야 하는데 "아이큐 어쩌고 저쩌고 하는 애가 오니까 무시하자"면서 다른 학생들까지 동원해서 집단 따돌림을 주도했다. 좋아하던 방과 후 활동이었지만 수업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괴롭힘을 당해서 결국 그만둬야 했다.
학교폭력을 한창 심하게 당했을 때는 같은 반 학생들이 나를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어쩌다 나하고 부딪힌 학생은 병이라도 옮을 것처럼 질색했다. 다른 학생 필통을 잘못 집었는데 필통 주인이 내 손이 닿았다는 이유로 자기 필통을 창밖으로 던지려고 한 적도 있다.
교사에게 상황을 알려도 나아지는 점은 없었다. 학생 한 명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다가 그 학생에게 본 피해를 종이에 적어서 담임을 찾아간 적 있다. 담임은 가해학생을 불러 위로하면서 내가 잘못한 것들을 종이에 적으라고 했다. 가해학생과 분리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오히려 가해학생 옆자리에 나를 계속 앉혔다. 그 뒤로는 교실을 청소할 때 나에게만 일을 많이 주는 식으로 티나지 않게 괴롭혔다. 내가 항의해도 "다른 애들은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너만 유난"이라면서 가스라이팅했다.
원래 나는 호기심도 많고 스스로 공부하려는 의욕도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공교육을 거치면서 소름 끼칠 정도로 망가졌다. 내가 가진 장점이란 장점은 죄다 깎아버려야 할 모난 구석으로 몰아세우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차라리 지능이 평범한 수준으로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해봤다. 생각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아는 내용이 줄어들면 학습권을 침해당해도 덜 고통스럽고, 다른 학생들도 나를 배척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다. 황당한 발상이지만 당시에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질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이렇게 시달리다 보니 공부해보고 싶은 내용이 있어도 참는 버릇이 들었다. 잘하는 것도 못하는 척, 아는 것도 모르는 척,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없는 척하고 살았다. 수업에서 다루는 내용을 이미 잘 알고 있어도 "나는 제대로 모르니까 다시 배워야 한다"라고 스스로를 세뇌했다.
공교육에서 벗어난 뒤에도 피해는 끝나지 않았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부당한 줄 몰라서 저항하지 못하고 가해자에게 끌려다닐 때가 많았다. 나를 혐오하던 공교육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들어도 합리화하면서 숙이고 들어가던 버릇이 발목을 잡았다. 대학교 여름방학 때 폭력적인 하우스메이트가 소리를 지르면서 위협하는데도 부당한 일을 당한다고 인식하지 못해서 대응하지 못하고 쩔쩔맸던 적도 있다. 학부연구생으로 일할 때는 나를 괴롭히던 교수에게 인격을 모독하는 이메일을 받았는데 "나는 폭력으로 머리가 망가져 멍청해졌으니 일을 못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었을 것"이라는 황당한 생각에 빠져 내 권리를 주장하지 못했다. 이렇게 보면 나는 아직도 공교육이 강요한 틀 속에 갇혀 있다. 참담하다.
헌법 제3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공교육은 오히려 내 능력에 맞는 교육을 받을 기회를 빼앗아가고, 괴롭힘을 당할 때도 방치했다. 학습권 침해다. 틀에 맞지 않는 지능을 가지고 태어난 죄 아닌 죄로 어려서 학대당한 것도 모자라 내 권리를 지키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상태로 20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