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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음표 Aug 26. 2024

죽고 싶었는데
대학은 잘 가고 싶었어

자폐인 고3의 대학입시

죽고 싶었는데, 대학은 잘 가고 싶었다.

가정폭력을 벗어날 살길이었으니까.


내가 대입 자소서를 쓸 때

친모가 나를 붙잡고 한 줄 한 줄 내용에 참견했다


네 글은 어두워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해 보인다

(장애가)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무조건 떨어진다

무조건 내가 시키는 대로 고쳐라


합격하고 싶어서. 떨어지면 완전히 미쳐버릴 것 같아서

시키는 대로 비장애인의 가면을 연기했다.

장애인 전형은 꿈도 못 꿨다.


원하지 않았던 가면을 억지로 쓰고

결국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장애를 숨기고 들어간 대학은

간절히 바랐던 기회를 주기도 했지만

장애를 증명할 수단이 없는 장애학생에게

말로 다 할 수 없이 잔인했다.

민주주의는 학교 문턱에서 멈춘다고들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학습권을

공교육은 매일 짓밟고 뭉갰다.


생각하는 속도를 억지로 늦추고

알아도 모르는 척 잘해도 못하는 척

헛소리를 들어도 수긍하는 척

사람 취급 못 받아도 받아들이는 척

내 날개를 스스로 꺾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매년 학교폭력을 당했지만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보다 가해자를 더 위했다.

오죽 내가 혐오스러웠으면 그렇게까지 나왔을까.


지식으로 따지면 학년 여러 개를 건너뛸 수 있었겠지만

실력대로 건너뛸 수 있었으면 조금이라도 덜 고통받았겠지만

우리 학교는 월반 안 시킨단다.

얘는 사회성부터 길러야 한단다.


학습권을 빼앗기고 매일 학대당하는 생활이

사회성을 기르는 데 어떤 도움이 된다는 건지

10년 넘게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는데

원래 폭력에는 논리가 없더라.


 나는 스스로 공부하고 몰입하고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지만

공교육에게 학습권을 짓밟힌 시간들이 나의 날개를 꺾어놓았다.


단순히 머리가 좋아 튀어보이는 것으로 퉁치기는

말이 안 될 만큼 잔인한 학대였고

피해도 컸지만 ‘정상인’의 언어로는 잡히지 않았다.


장애인 차별이 개입했다는 의심이라도 해볼 기회는

어른이 될 때까지 찾아오지 않았다.

재능이 장애를 가렸고 장애가 재능을 가렸으니까.


내가 잘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나에게 장애가 있다거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한다.


너는 정말 뛰어난 재능을 가졌는데 뾰족한 부분만 좀 깎아내면 완벽해

(그 뾰족한 부분이 내 본모습인데)


세상은 생각보다 안전하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마

(장애인에게는 안전하지 않은데 몰라서 편하겠다)


왜 또 시험에서 실수했냐, 네 머리가 아깝다,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공교육이 내 머리를 학대에 절였는데 실력만큼 성적이 나왔을 리가)


너는 나하고 대화할 수 있으니까 자폐가 아니야

(당신, 의사 면허는 어떻게 땄어?)


대학입시를 마치고 완전히 무너졌다.

사람이 견디면 안 되는 것들을 억지로 받아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치매라도 걸린 것처럼 고통스럽다고 애원해도

‘정상인’들은 괜찮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너무 잘하고 있는데 뭘 그러냐

기준을 낮추면 다 해결된다

가벼운 우울과 불안이다


상태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기 전까지 도움은커녕

문제가 있다는 내 말을 믿는 사람조차 없었다.


차별이 무서운 점은

장점이 될 수도 있었던 모습을 

원망하고 억누르게 만든다는 점이다.


비장애인에게 날개를 달아줬을 재능이

나에게 와서는 족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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