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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Aug 07. 2023

손이 큰 신랑

신랑덕에 풍족한 우리 집


신랑은 손이 크다.

손 크기도 크지만, 씀씀이가 매우 크고 후하다.

한 가지 예로 우리 집에서 먹는 과일의 종류를 보여드리자면


천도복숭아, 자두, 귤, 체리, 블루베리, 참외를 적당히 꺼냈고, 다 못 먹을 것 같아 수박, 사과, 오렌지는 꺼내지 않았다.

어제 신랑의 휴일이라 오랜만에 다 같이 모여 과일을 먹고자 과일들을 준비해 봤는데 그 종류가 많아도 너무 많다.

과일을 좋아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마트에 갈 때마다 다양하게 많이 사 온다. 내가 절제시켜주지 않으면 정말 한도 끝도 없이 사 오는 신랑이다.

캐나다 시골에 살면서 저장하는 게 습관이 된 신랑은 뭐든 여러 개를 산다. 한국처럼 필요할 때 바로바로 살 수가 없으니 구할 수 있을 때 여러 개를 사놓고 두고두고 쓴다. 나도 여기서 살아보니 어느 정도 이해하고, 동의하는 바이지만 좀 과하다고요.



신혼 초에는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라며 여름 내내 수박을 일주일에 3통씩 사 왔다.

나는 늘 너무 많다고 조금만 사 오라고 말하지만 사 오는 족족 다 먹는 아내를 보며 안 사 올 수가 없었던 것일까. 신랑 앞에서는 뭐가 맛있다, 좋다는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쓰는 돈은 전혀 아까워하지 않고 뭐든지 다 해주려고 하기 때문에 내가 계속 '워~워~' 해주고 있다. 

한 번은 산불이 해마다 심하게 나는 통에 여름만 되면 공기가 너무 안 좋아서 공기청정기를 사려고 했다. 코스트코에 장 보러 갔던 신랑이 눈여겨봤던 공기청정기가 세일을 한다며 사 왔는데 8개를 사 온 것이다. 그중 2개는 근처에 사시는 시부모님댁, 형님댁에 한 개씩 드릴 거라고 하는데 그래도 6개가 남는다고 이 싸람아!!  꼭 필요한 3개만 쓰고, 3개는 반품하기로 했다. 이제는 내가 적당히 추려 매번 반품시키니 대량으로 물건을 사려고 할 때는 미리 내게 전화로 물어본다. 사야 할 양을 정해주고 있다.

내가 워낙 돈을 안 쓰기도 하고, 너무 많아 집안 어느 곳을 가든 수북한 물건들을 보며 정말 필요한 것들이 아니면 사지 않게 됐다. 집안식구 모두 정리정돈을 잘하는 편이 아닌데 물건까지 많으니 감당이 안 되는 지경이라 계속 비워내려고 한다.  큰 신랑덕에 잘 안되고 있지만 계속 절제시키며 노력 중이다.


가족들에게 그렇게 후한 신랑은 정작 본인한테는 그렇지가 않다. 가끔 사 먹는 테이크아웃 커피가 전부다. 그 가끔도 아깝고, 혼자 사 먹는 게 미안해 내가 함께 사 먹지 않는 날은 집에 와서 믹스커피를 타마시거나 캡슐커피, 아니면 내 것까지 사 와서 꼭 함께 마신다. 항상 날 생각해 주니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그래서 신랑은 내가 열심히 챙겨주고 있다.

십 년 넘게 사고 싶어 고민했던 작은 낚시보트를 샀고, 게임을 좋아해 플레이스테이션을 샀다.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 하는 게 많아 여러 공구들도 샀고, 허리가 안 좋아 운동기구와 거꾸리도 샀다.

신랑은 배우고, 해보고 싶은 게 참 많은 사람이다.

뭐 하나 꽂히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게 많을 텐데도 쉽게 사는 법이 없다.

꼭 나와 의논하고 내 허락을 구한다.

대신 나는 신랑이 사고 싶다고 하는 것이면 대부분 허용을 해준다. 그것을 사기 위해 스스로 한참을 고민했을 신랑이 정말 원하는 것일 테고 꼭 필요한 것일 테니 쉽게 반대하지 않는다. 가끔 내게는 쓸데없어 보여도 밤낮없이 열심히 일한 신랑에게 주는 보상이자 선물이다. 자기는 안 사도 괜찮다고 극구 사양하면서도 내가 사라고~사라고~ 계속 얘기해 주면 못 이기는척하며 내심 기뻐하는 모습이 귀엽다. 서로를 위하며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하니 오히려 받지 않으려 자제하게 되고 항상 행복한 싸움이 된다.



오늘도 신랑은 퇴근길에 체리 한 박스를 가져왔다.

고마워 신랑... 아직 과일이 많이 남았지만 잘 먹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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