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호텔 스위트룸 탐방기
성품서점(Eslite Bookstore, 誠品書店)
CNN 선정 ‘The World’s Coolest Bookstores’, 타임지 선정 ‘Asia’s Best Bookstores’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대만의 문화 아이콘 ‘성품서점(誠品書店)’은 1989년 타이페이 중심 다안취(大安區)에 그 역사적인 문을 열었다. 서점이라고는 동네 책방이 전부였던 시절, 성품서점은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아직 낯선 콘셉트 아래 전에 없던 도심 속 공간을 대중에게 선보였다.
대만 남부의 작은 어촌마을에서 태어난 창립자 Robert Wu는 대만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가 중 한 명이다. 자수성가형 부자로 책 읽기의 중요성을 일찍이 체감했던 그는 30대 젊은 나이에 생사를 오가는 심장마비를 겪고 평소 간직만 했던 일생의 꿈을 실현하기로 결심한다. 사람들이 모여 예술, 문학, 그리고 음악을 함께 이야기하고 구매와 상관없이 몇 시간이고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 지금 우리 세대에겐 익숙한 모습일지라도 당시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성품서점의 비즈니스 모델이 그렇게 탄생하였다.
타이페이 시민들의 영혼의 쉼터를 만들겠다는 큰 포부를 품고 시작한 성품서점의 비즈니스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989년 창사이래 15년 동안 회사는 늘 적자를 기록하며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렸지만, 창립자 Robert Wu는 굴하지 않고 1999년, 둔화난루(敦化南路)에 위치한 성품서점 플래그쉽 스토어를 세계 최초로 주 7일, 24시간 ‘잠들지 않는 서점’으로 운영할 것을 선언하였다. 낮과 밤의 구분 없이 언제나 환한 불을 밝힌 이곳은 곧 타이페이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로 자리 잡았으며 성품서점은 점차 로컬들에게 단순히 책을 파는 기업을 넘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자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상징적인 의미가 컸던 둔화난루 지점은 아쉽게도 2020년 문을 닫았으며 현재 신이취(信義區)의 플래그쉽 스토어가 24시간 제로 운영되고 있다.)
2010년 이후 주요 서점들이 점차 오프라인 매장을 줄이고 온라인 이커머스(e-commerce)에 눈길을 돌릴 때 성품서점은 더욱더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며 해외 진출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미 대만에서의 성공으로 중화권에서 탄탄한 인지도를 쌓은 성품은 2012년 홍콩의 혼잡한 코즈웨이베이에 첫 해외 지점을 열었다. 홍콩에서 가장 큰 서점이라는 타이틀 아래 그 수익성에 대한 외부의 우려도 있었지만, 성품서점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와 방대한 양의 중문, 영문책 셀렉션, 친절한 고객 맞춤 서비스 등을 통해 비즈니스는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현재는 홍콩의 주요 상권들은 물론, 중국 본토, 그리고 말레이시아 등지에서도 성품서점을 만날 수 있다.
성품호텔(Eslite Hotel, 誠品行旅)
대만 사회 곳곳에 세련되고 진보적인 문화 공간을 만들어온 성품그룹의 비즈니스는 건설, 소매, 레스토랑, 와인, 그리고 호텔까지 그 지평을 점진적으로 넓혀왔다. 특히 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호텔업의 특성상 2015년 문을 연 성품호텔(誠品行旅)은 Mr.Wu의 경영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의 유명 건축가 이토 토요(Ito Toyo)가 설계를 맡은 성품호텔은 타이페이에서 가장 번화한 신이취(信義區)의 빌딩숲에서 십여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호텔 앞에는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생태연못(Ecology Pond)이 조성되어 있어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하나의 작은 도서관을 연상시키는 성품호텔과 그 여유로움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룬다. 호텔 옆에는 성품서점의 Songyan지점이 단독 건물로 크게 위치하고 있어 방대한 규모의 서점은 물론, 아트 갤러리, 독립 영화관, 찻집, 레스토랑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포진해 있다.
호텔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로비 라운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5천여 권의 예술, 인문학 서적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디저트가 진열되어 있는 코너의 작은 부스를 제외하면 로비의 전부가 책, 책상, 소파 및 1인 의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구조적 단순함 때문인지 성품호텔의 로비에 들어서면 자연스레 책 한 권을 골라 들고 자리를 찾아 앉고 싶어 진다. 또한 마치 서점처럼, 라운지에 비치된 책 중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호텔 스태프가 언제든 새책으로 구매를 도와준다. 벽면에는 대만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이 걸려있어 살아생전 예술애호가였던 Mr.Wu의 취향도 살짝 엿볼 수 있다.
로비에 앉아 여유롭게 웰컴 드링크와 다과를 즐긴 후,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객실로 입실한다. 이번에 묵었던 이그제큐티브 스위트는 거실과 침실이 분리되어 있는 약 20평의 널찍한 구조인데, 차분한 우드톤의 인테리어가 마치 어느 가정집에 들어와 있는 듯 편안한 느낌을 준다. 성품호텔의 가장 큰 차별점 중 하나는 객실과 로비 곳곳에 Minotti, Cassina, Flos 등 명품 가구와 조명들이 비치되어 있다는 점인데, 사실 아무리 타이페이 최고급 호텔인 만다린오리엔탈(Mandarin Oriental)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 브랜드의 가구나 조명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기에 꽤나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하나하나 작품과 같은 가구들을 즐기는 재미는 타이페이 다른 어떤 호텔에서도 찾지 못하는 성품호텔만의 특전이다.
부대시설에 수영장이 없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이 주변에는 특히나 즐길거리가 알차게 들어서 있다. 앞서 언급한 성품서점 Sonyan지점은 물론, 생태 연못에는 온갖 식물 및 개구리, 곤충 등이 서식해 아이들의 천연놀이터가 되어준다. 연못 옆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대만 최초의 담배공장을 개조해 만든 송산문창원구(Songshan Cultural and Creative Park, 松山文創園區)가 위치하는데, 이곳은 주말 벼룩시장을 비롯해 평소 다양한 아티스트 및 브랜드의 전시회가 열리는 타이페이 시민들의 문화공간이다. 그중 ‘Not Just Library(不只是圖書館)’는 83년 된 대중목욕탕을 재해석해 만든 실험적인 콘셉트의 공간으로, 이름 그대로 도서관 그 이상의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주니 꼭 들러보도록 하자.
글, 사진 ⓒ dream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