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만큼 벌면서 건강을 챙기자.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시간은 늘 빠르게 흘러간다. 성공한 사람은 시간 관리를 잘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시간을 낭비만 안 해도 다행일 것 같다. 하루가 너무 잘 간다. 책만 읽어도 하루가 금방이다.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도서관 한번 갔다 오고 산책 한번 하고 오면 벌써 잠잘 시간이 되어 있다.
나는 그만큼 시간 쓰기의 달인이다. 사람들을 만나야지 에너지를 얻는 E 성향이 아니어서 그런지 혼자 있어도 외로울 겨를이 없다.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오십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지만 조기 은퇴자의 생활을 하고 있다. 먹고 살만큼 벌면 된다고 생각한다. 무리할 필요 있겠는가? 어차피 큰 부자가 되기에는 늦었다. 하지만 경제 공부는 해야 한다.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고 이제 돈을 버는 일만큼이나 내 몸도 돌봐야 한다. 건강이 곧 자산이다. 그것은 병원비가 말해줄 것이다.
10대는 안정적인 가정환경에서 사 남매와 성장했다. 20대는 캠퍼스 커플이자 고시생 커플로 지내다가 취업을 하고 결혼을 했다. 30대는 아이들 키우는데 전념했지만 시집은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일손이 필요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기에는 부모님 말씀을 너무나도 잘 듣는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40대는 입주한 아파트의 기쁨은 잠시였고 가부장제 시집문화와 병간호까지 더해져서 탈진했다. 시부모님께 일보다는 건강을 챙기셨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끝도 없는 일의 지옥, 일을 많이 안 한다고 굶고 사시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일만 하시는지. 그렇다고 당장 한 푼이라도 보태주시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나는 무료봉사를 해야 했다. 시부모님의 식사를 챙기는 요즘 며느리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고 애들 키우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하시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벅찬 일이었다.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저출산이라는 사회현상만 봐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아이의 사춘기와 나의 우울이 충돌하면서 즐거운 우리 집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무리하고 싶지 않은데 무리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결혼생활의 모습은 다양한 삶 중 하나일 뿐이다. 각자의 상황에서 바라보아야지 남과의 비교는 불가이다. 가부장제 문화는 아직도 존재한다. 부모님 세대보다 나아졌다고 해도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겠는가. 여자만이 시댁의 제사를 모시고 명절 음식을 하고 차례상을 차린다. 남자가 친정의 제사를 챙기거나 명절 차례에 참석하지는 않는다. 여자의 직장일 또한 남자만큼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기에 육아와 살림도 여자몫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하기에 비혼주의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임신과 출산으로 경력단절 되어봐야 여자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점점 여자 혼자서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 키우기 여간 힘든 것이 아니더라. 자식들에게 너무 기대하면 안 된다. 자식도 타인이라는 말이 있다. 가족은 인간의 불안한 심리, 혼자라는 적막함에서 벗어나게 해 줄지는 모른다. 그래서 결혼을 했지만 나는 다시 혼자가 되고 싶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한다. 나는 엄마, 며느리, 아내, 딸 등의 역할을 다 못해내는 사람이다. 어쩌다 보니 직장과 결혼생활 모두 실패의 연속이 되어버렸지만, 그때마다 나는 항상 나와 함께했다. 이제 나와 잘 사는 일만큼은 실패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너무 잘해보겠다고 무리하지도 않을 것이다. 서서히 나의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내가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도 변함이 없다. 지금껏 내가 살아온 흔적이기도 하다. 내 삶의 증명처럼 두 아이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