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에 올린 감자가 부드럽게 하얀 분내며 포슬포슬거린다. 평소 10개에서 20개 사이, 삼천 원에서 오천 원하는 감자 한 봉지 또는 한 바구니를 사는 편이다. 밥솥으로 약밥, 카스텔라 등을 만드는 홈베이킹을 한참 하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만능찜 기능으로 편리하게 감자와 고구마, 옥수수 등을 쪄서 먹고 있다. 타박 감자가 점점 소울푸드가 되어가고 있다.
타박 감자를 먹으며 타박조차도 며느리의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사는 어머니들을 생각한다. 그분들의 신념은 너무나 고귀하다. 어떠한 이유나 논리가 없는 그저 당연함이다.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 제사, 명절이기에 무조건 전통을 따른다. 남자들은 절만 할 뿐 그 외 모든 것은 전적으로 여자들의 몫이다. 여전히 주방에 남자들을 못 들어오게 하는 집안도 있다.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부모의 희생을 바라는 자식은 없다.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로 강요에 가까운 마음의 부담을 안겨준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했을 뿐, 그렇게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마치 보험이라도 들듯이 자식에게 온 힘을 다한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키운 자식은 일하느라 바빠서 며느리에게 대신 효도를 받으려 한다. 며느리는 남의 집 귀한 자식이 아닌 자기 집 일꾼이라고 생각한다. 시집의 가풍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시집 울타리 귀신이 되어야 한다'라는 속담을 몸소 실천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시집에서 끝까지 살아가는 정신, 그것이 부족한 것인가? 단순한 세대차이인가? 초고령사회, 백세 시대에 맞게 변하는 과도기인가? 나의 친정어머니는 마흔이 되기도 전에 시부모님이 다 돌아가셨다. 시집살이는 끝이 났고, 부부중심의 결혼생활을 하셨다. 내가 겪은 어려움에서 바라보면 친정어머니는 간섭하며 타박하는 시부모님이 안 계셨다. 물론 20대에 결혼하셨기에 시부모님과 보낸 세월은 십 년이 넘는다.
오래오래 사시면서 서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성격과 의식의 문제라면 바뀔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저 시부모님이 하시는 대로 따라야 한다. 찾아뵙지 않자니 그 또한 한두 번이다. 나는 며느리 사표를 내는 것으로 해결했고, 나의 원가족은 그동안 고생 많았다는 반응이었다. 그 과정에서 원가족이 도울 수 있는 것은 없었고, 모든 결정과 행동은 나의 몫이었다. 나는 이제 결혼생활에 회의적인 사람이 되었고, 더 나아가 주고받는 인간관계 자체에 지친 상태이다. 나의 노후 간병과 돌봄을 당연하게 바라지 않는다. 나를 다독이며 나와 잘 지내며 살고 싶다. 욕심을 다스리며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내 집에서 살아간다.
합리적인 소비와 절약으로 최소한의 삶을 살아가도 내쉬고 들이마시는 숨이 편안하다. 7월식비는 165,559원을 썼다.치즈돈가스, 샌드위치, 복숭아 등 먹고 싶은 것도 사 먹으며 주로 집밥을 해 먹었다.동생과 콜라 한 잔 하며 쏘마치 치킨도 먹을 수 있었다.
가족모임 등에 87,000원을썼는데 엄마가 나의 영양제와 화장품을 사주셨다. 할인특가여서 온라인보다 싸게 사서 기분이 좋았다. 엄마도 내가 잘 골라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부모님 단골 갈빗집에서 갈비와 냉면도 먹었다. 7월은 추가적으로 재산세를 더 냈다. (보험, 연금, 관리비, 가스, 전기, 통신비 + 재산세) 그 대신에7월은 애드센스 수익이 추가적으로 생겼다. 3.6달러 정도의 송금수수료를 제하고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