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빠는 진짜 모른다.
"애들 다 한단 말이야. 메타버스 해보기나 했어?"
아이들은 이제 컸다고 곧잘 반항한다. 가끔은 가슴을 스치는 아린 말들도 내뱉는다. 아이들의 말은 감정적이지만 그 말 들은 얼핏 논리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물론 아이 앞에서는 티 낼 수 없다. 그중에서 애들이 다 한다는 말은 확신에 찬 부모님의 교육에 어김없이 금을 긋는 말이다. 진짜 애들은 다 하는데 우리 애만 하지 않아서 왕따를 당하는 것은 아닌지, 혹시나 아이가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은근슬쩍 모르는 척 넘어가 주고 싶은 마음이 그득해진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모진 소리를 내뱉는다.
"말이 왜 이렇게 많아? 얼른 공부나 해!"
아이들에게 가정에서 일어날 법한 저 위의 상황을 이야기해주면 아이들은 자지러진다. "와, 선생님 우리 집 와봤어요?" "우리 엄마랑 똑같아." 감탄을 내뱉으며 깔깔거리다 이내 진지해진다.
"근데 진짜 엄마가 한 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닌데."
아이가 하지 않았으면 하는 행동을 함께 해보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대부분 아이가 하지 않았으면 하는 행동을 규정하는 것은 부모님의 느낌이거나 그동안 부모님의 경험이다. 아이가 게임을 하는 것이 싫은 것은 내가 게임을 했을 때 공부를 못한 것이 후회되는 경우 거나 또는 내가 게임 자체를 싫어하는 경우다. 직접 아이가 하는 게임을 함께 해보고 싫은 점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부모님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아이를 통제 범위에 넣어야 하기 때문에 자꾸 아이를 통제하게 된다.
내가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안타까운 점은 바로 부모님들이 아이를 너무 크게 보면서 동시에 너무 어리게 본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기대하는 바는 어른처럼 자율적으로 스스로 하는 것이고, 그러면서도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통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 상반되는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과 자꾸 충돌이 생긴다. 특히 사춘기의 아이들은 자신에 대한 생각도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의 이런 시각에 더욱 거부감을 느낀다. 자신도 스스로 하고 싶지만,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균형 잡고 싶어 한다.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어른들도 혼란스러운 상황에 균형을 잡고 싶어 한다. 취미생활을 갖고 싶어 하고, 마음을 둘 곳을 찾는다. 어른들은 자전거도 타고, 골프도 치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배우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시간과 돈이 한정적이다. 그렇다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균형점은 게임이다. 그중에서도 자신이 무엇인가 주도적으로 하는 메타버스 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메타버스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만들고 싶은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이 만든 공간을 보며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마냥 말린다고 부모의 말을 들을 수 있겠는가?
아래는 아이들이 직접 구현한 컴퓨터실이다. 이 안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 있게 아이들이 직접 설계한 것이다. 퀴즈도 넣어서 다른 학생들이 검색을 해서 퀴즈를 풀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이처럼 어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아이디어를 게더타운에서 구현까지 하는 아이들이다. 마냥 말릴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을 오신 부모님들께 아래 사항들을 말씀드린다. 이 사항들이 해결될수록 아이들의 학교에서 표정이 밝아진다. 그리고 싱긋 웃으며 묻는다. "선생님, 우리 엄마한테 무슨 말했어요?" 그럼 그냥 싱긋 웃고 "그냥 너 학교에서 너무 잘한다고 했는데."라고 이야기해준다. 그럼 또 배시시 웃으며 자리로 가서 해야 할 일들을 해낸다. 부모님의 어떤 행동이 아이를 변화시키게 될까?
첫 번째, 아이가 몰입하고 있는 메타버스에 함께 들어가 봐야 한다. 부모님들께서 걱정하실 때 마냥 걱정하시지 말고, 일단 한번 들어가 보시라고 한다. 게임 자체에 접속하시기 전에 수업 중 활용 중인 메타버스를 상담시간에 직접 보여드리고 설명을 한다. 물론 가정통신문이나 다양한 매개체로 안내가 되었지만 교사가 직접 보여주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럼 생각과는 다른 모습에 살짝 갸웃하신다. 그러면서 아이가 하고 있는 게임에도 한 번 들어가 보시기를 권유한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그날 바로 아이가 하는 게임에 들어가 보신다. 들어가 보시지는 않으시더라도 옆에서 지켜보기라도 하신다.
이때 아이들의 반응은 우리 엄마가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이것저것 설명을 한다. 아이들이 신나게 설명하는 걸 보는 부모님은 기가 막히다. 공부를 이렇게 신나게 하지. 그래도 신나서 이야기하는 아이의 말을 들어본다.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다. 그럼 일단 첫 번째 관문은 통과다.
두 번째로 아이에게 메타버스에서 시간을 어느 정도 보내는 게 현실과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냐고 묻는다. 여기서 핵심은 첫 번째 메타버스에서 함께 하기로 충분히 아이의 심정을 공감해 주는 것이다. 이때 아이들은 엄마가 내 말을 들어주는 것 같다는 사실에 기뻐 비현실적으로 시간을 정한다. 하루에 2시간씩 하던 걸 갑자기 일주일에 2시간 한다고 한다던가, 30분을 한다고 한다던가 부모님이 보기에 비현실적인 답변을 내놓을 확률이 크다. 그건 너무 당연하다. 아이이기 때문에 아이는 아직 시간을 컨트롤하고 가늠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 부모님의 반응이 중요하다. 실제 현실적으로 지킬 수 있는지 다시 되묻고, 아이가 OK 한다면 일단 일주일의 적응기간을 갖는다. 이 기간 동안 아이는 현실적으로 지킬 수 있는지, 실제로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다. 그 후 다시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보다 현실적인 답이 나오게 된다.
세 번째로 아이에게 메타버스에서 활용하는 기술들을 다른 곳에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다. 부모님이 도대체 애가 뭐가 될까 걱정하지 말고 아이에게 그 질문을 돌리라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자율적인 행동을 갈망한다. 물론 동시에 의존적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아이들의 자율적 동기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긍정적으로 돌릴 수 있도록 질문을 던져 줄 필요가 있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기술들을 실제 사회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그것과 관련된 직업들은 무엇이 있을까? 와 같이 아이가 메타버스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활동들과 연관되어 자라날 수 있게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도 충분히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부모님이 어떤 말을 해주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아이들은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메타버스 세계에서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교실에서도 항상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된다. 아이들이 게더타운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메타버스를 구축할 때, 삶과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독려해야 한다. 그리고 교과와 어떤 연계성이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렇게 옆에서 보조를 맞추어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어른들 이상의 성숙한 생각을 해 나간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싶어 하고,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어 한다.
특히 메타버스 안의 내용들을 세상과 연결 짓는 질문을 하면 눈이 또랑또랑해진다.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나와 세상의 연결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메타버스 시대, 아이들은 메타버스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자신이 되어 멋지게 자신의 생각을 펼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자를 뜻하는 프로듀서와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가 합쳐진 프로슈머. 이미 아이들은 메타버스 안에서 프로슈머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프로슈머 활동을 멈추게 할 것인지, 발전하여 자신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인지는 어른들의 손에 달렸다. 아직도 메타버스 해보지 않고 아이들에게 하지 말라고 이야기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