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소설로 읽고, 영화로 보았다. 소설은 제1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영화는 청룡영화상ㆍ대종상ㆍ백상예술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이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서울의 명문 초등학교에 다니던 주인공 한병태는 공무원 아버지의 좌천으로 인해 5학년 때에 시골의 초등학교로 전학한다. 그 초등학교에는 엄석대라는 급장이 있는데, 학교의 모든 일들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한병태는 엄석대에게 저항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 한병태는 엄석대에게 굴종함으로써 특권을 얻게 된다. 그렇게 6학년이 되고, 새로 부임한 김 선생은 엄석대를 예사롭지 않은 눈으로 의심한다. 김 선생은 대리시험을 잡아내고 엄석대는 물론 비겁했던 모든 아이들에게 처벌을 가한다. 그 이후 엄석대는 자취를 감춘다.
이 핵심 줄거리는 같으나 소설과 영화의 대비되는 특징 역시 당연히 있다. 소설을 각색하여 영화로 만들었기에 그러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 이유 세 가지를 들고자 한다.
일단, 시간적 배경이 엄밀하게 보면 차이가 있었다. 소설에서는 ‘벌써 30년이 다 돼 가지만, 그해 봄에서 가을까지의 외롭고 힘들었던 싸움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해진다.’(11p)라는 첫 문장이 시작된다. 영화에서는 ‘벌써 30여 년이 넘게 지났지만 그해 가을에서 겨울까지의 외롭고 힘들었던 싸움을 돌이켜 보면 언제나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해진다.’라는 내레이션이 초반부에 깔린다. 한병태와 엄석대의 싸움이 소설에서는 ‘봄에서 가을까지’인 반면, 영화에서는 ‘가을에서 겨울까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엄석대의 통치가 멈추는 데에 큰 몫을 담당한 김 선생이 등장한 시간적 배경이 영화에서는 새 학기, 곧 ‘봄’으로 더욱 부각된다. 여기서 나는 이성부의 시 <봄>이 떠올랐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이성부 <봄>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김 선생의 등장, 그리고 시 <봄>에서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과의 포옹은 ‘봄’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공유하며 같은 결을 지닌다. ‘봄’은 영화의 주인공, 그리고 시의 화자가 간절히 기다린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다린 대상이 나타나기 전, 영화에서는 5학년 담임이었던 최 선생뿐만 아니라 다른 교사들의 무능한 모습을 소설에서보다 더 보여준다. 특히 시험 감독을 맡은 여교사가 엄석대에게 손짓으로 답을 알려주는 장면에서는 기가 막혔다. 이러한 부조리함들을 영화에서 여러 번 보여줌으로써 엄석대에 대한 한병태의 굴종이 어쩔 수 없었음을 관객으로 하여금 인지하게 한다.
마지막으로는 어른이 된 엄석대에 대한 묘사가 달랐다. 소설에서는 엄석대가 범죄자가 되었으나, 영화에서는 열린 결말로 처리되었다. “한다발의 꽃으론 그의 성공과 실패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사는 오늘도 여전히 그때의 5학년 2반 같고 그렇다면 그는 어디선가 또 다른 급장의 모습으로 5학년 2반을 주무르고 있을 거다. 오늘 그를 만나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그의 그늘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솔직히 확신할 수 없다.” 작품 속 60년대나, 작품이 세상에 나온 90년대나, 그리고 지금이나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맞서는 정치적 권력 관계’라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듯하다.
이 글에서 나는 소설보다는 영화에 집중했다. 허나, 결론적으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소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규율한다”(191p)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김 선생이 칠판에 쓴 ‘진실과 자유’를 풀어 설명하자면 이렇게 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의 소제목을 ‘스스로가 스스로를 규율한다는 것’이라고 달며 글을 마무리짓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