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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g Sep 22. 2020

하바나의 첫인상

호세 마르티 동상. 하바나 공항의 이름도 호세 마르티다. 쿠바 독립을 주도한 쿠바의 국민 영웅. 당시 스페인어권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문학가이기도 했다. 쿠바 혁명의 뿌리 같은 존재

날씨가 흐렸다. 열흘간의 일정 동안 네 개의 도시를 방문해야 되는 일정이다. 마지막 이틀을 다시 하바나에서 보낼 예정이긴 했지만  처음 사흘간 가능한 많은 것을 봐 두어야 할 것 같아서 짧은 낮잠을 자고 하바나로 나왔다. 로컬버스가 모로성을 지나서 해저터널을 빠져나온 후 첫 정류장에 멈춰 섰을 때,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버스에서 내렸다. 그곳은 마르조 광장이었다. 광장 한가운데는 말을 타고 있는 호세 마르티 동상이 있었고, 그 뒤로 혁명박물관이 보였다. 광장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혁명박물관 왼쪽에서 노란색 마차가 나타났다. 마차를 타고 있던 관광객들이 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 댔다. 나는 마차가 내려오던 그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쪽에 국회의사당이 있었다. 꼭 어디를 정해놓고 걷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이든 흥미로운 피사체를 쫓아서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유명한 오비스포 거리가 나타났고 영상과 사진에서 많이 봤던 플로리다 카페도 보였다.  헤밍웨이가 단골로 와서 주로 데낄라를 마셨다는 바로 그곳이다. 오비스포는 내일을 위해 아껴두기로 하고 주마간산 격으로 하바나의 국회의사당 앞 메인도로를 따라 훑어 내려왔다. 말레꼰 해변으로 갔을 때 날씨는 더 어두워졌고 바람은 세차게 불었다. 무섭게 달려드는 파도가 말레꼰 해변을 덮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문득, 몇 년 전 캐나다에 첫발을 내디뎠던 5월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을씨년스럽게 춥고 황량했던 토론토의 낮고 음침했던 분위기가 겹쳐 떠오르며 그날의 외롭고 막막하고 그러면서도 뭔가 두근거리고 설레었던 복잡한 감정들이 오버랩되었다.

Marzo 광장 옆 상가들.
자전거 택시. 날이 흐려 손님이 없는지 하루 종일 친구랑 노닥거리는 듯.
대체로 쿠바의 건물들이 멕시코 시티의 스페인풍 건물들보다 더 세련된 외관을 가지고 있다.
경찰 아저씨들.
Maximi Gomez Monument. 도미니카 태생의 쿠바 해방군 사령관. 이탈리아 조각가 알도 감바의 작품이라고 한다. 1930년대 건축됨.
모로성 전경.
쿠바 도착 첫날 파도가 거셌다.
말레콘 해변 동쪽.
한낮에 한가롭게 게임을 즐기는 쿠바 청년들.
카스트로, 게베라, 시엔푸에고스.


검문중?
쿠바 혁명 박물관
컬러풀한 하바나의 보통 거리.
마차. 다음에 오면 꼭 타 보겠음.

멕시코시티를 거쳐 온 탓인지, 아니면 쿠바에 대한 방송이나 사진들을 너무 많이 봐버려서였는지 기대했던 것보다 쿠바의 풍경이 '와 쿠바다!' 하는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지구 상에 북한과 함께 마지막 남은 고립된 공산국가, 지구 반대편의 낯선 섬나라, 많은 여행객들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인 쿠바 여행이 내게는 너무 덤덤하게 다가왔다. 쿠바는 그냥 쿠바였다. 1950년대를 그대로 갖다 놓은 듯한 풍경, 올드카들, 거리를 활보하는 마차들, 이미 TV에서 봤던 그 풍경들을 그저 눈으로 다시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폐쇄국가, 공산국가라는 딱딱하고 어두운 느낌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발전이 덜 된 관광국가였을 뿐, 거리를 가득 채운 관광객들이 뿜어내는 자유롭고 활기찬 느낌때문인지 이곳이 폐쇄된 공산국가라느낌은 더더욱 들지 않았다. 하긴 내가 공산국가를 언제 구경해 보긴 했나?그저 북한이라는 존재를  통해 교육된 환타지일 뿐일 수도 있다.

걷다 보니 배가 고팠다. 오비스포 거리 초입 어느 식당 문 앞에 아가씨가 메뉴판을 들고 서 있었다. 메뉴를 들여다보니 가격이 비교적 저렴했다. 피자와 스파게티를 주로 팔고 있었다. 들어가서 하와이안 피자 한판과 망고주스를 시켰다. 합쳐서 5 불이 넘지 않았다. 쿡을 내니 쿱으로 거슬러 줬다. 아 쿱을 이렇게 구하면 되겠구나. 시내는 물값이 비쌌다. 보통 500미리 물 한 병에 0.5 cuc정도. 쿠바 물가 치고는 물값이 비싼 편이다. 반면에 망고주스는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미국의 슬럼가를 연상케 하는 집들. 여인은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 걸까?
낮잠을 자는 노숙인.
바람에 춤추는 빨래들.
익소라 꽃 아래를 걷는 사람들.
사진을 보고서야 저곳에 노천카페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유명한 헤밍웨이의 플로리다.
하바나에 있는 동안 매일 갔던 단골 식당. 망고 주스와 스파게티가 너무 좋았다.
도로 표지판에 묶여 있는 자전거.
자전거 택시 운전수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여성 직원들의 복장들이 대체로 타이트하다. 미국의 올드무비를 보는 듯.
닮은 얼굴이 아마도 모녀간인 듯.
올드카들.  비 오는 날은 개점휴업?
빨간 구두 아가씨?
앉아 있는 의자들이 깜찍하다.
간판 오른쪽 위에 까사 표시. 반드시 저 표시가 되어 있는 곳에서만 숙박해야 한다. 숙박객은 반드시 숙박 명부에 사인해야 한다.
저 등이 아마도 이 동네의 가로등 대신에 켜져 있는 것일까? 쿠바의 전기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으나 이른 시간부터 가로등 불이 밝혀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밤이 깊어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일단 버스의 막차 시간이 언제인지 알 수 없었고, 심신이 피곤했다.  첫날부터 진을 뺄 필요는 없었다. 숙소 주인 시타가 가르쳐준 버스 정류장을 겨우 찾았다. 알려준 대로 찾아갔지만 이곳이 버스정류장이라는 어떤 표시도 거기에는 없었다. 비닐봉지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기다리며 어떤 건물의 코너에 서서 버스가 들어오는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한 눈에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다른 버스가 몇 대 지나갔고 기다린 지 30여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A95 버스가 나타났다. 이 버스를 타고 숙소를 지나치지 않고 내리는 것도 숙제였다. 이 문제는 구글맵이 해결해 줬다. 오프라인 지도와 GPS만으로도 내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벨을 누르니 시타가 문을 열어 줬다. 저녁에 경비 역할을 하는 이웃집 아저씨가 마당 한편에 앉아 계셨다. 시타가 말을 걸었다. 하바나는 어땠는지, 버스 타는 게 어렵지 않았는지, 어떻게 용케 집을 잘 찾아왔다 칭찬해 줬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과의 영어 대화는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하다. 서로 영어를 잘한다고 추켜세워줬다. 시타는 호텔일을 오래 해서 영어가 익숙했다. 자신의 친척들이 미국에도 많이 살고 있다고 했다. 자기 숙소를 이용한 첫 한국인이라며 신기해했다.

나는 인터넷을 이용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잠시 후에 아들이 나와서 자기 폰을 테더링 해줄 테니 핫스폿을 찾아 연결하라고 했다. 방 안 냉장고에 있는 물은 유료라고 했다. 동네 슈퍼에 가서 사 오면 조금 더 싸다고 알려준다. 인터넷은 잠시 써보고 너무 느리고 자주 끊겨서 한시간 남짓 이용하고 그만뒀다. 나중에 보니 이것도 유료였다. 에어비앤비에 포스팅했던 내용과는 다소 다른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쿠바였고 숙박료는 너무 저렴했다. 컴플레인 따위를 생각할 이유가없었다. 샤워와 빨래를 하고 바로 누웠다. 수면제가 필요 없을 정도로 피곤했다.  

하바나의 첫인상? 그냥 쿠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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