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지켜주신 삶
불안과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다. 불안을 누르기 위한 방법으로 책을 대안으로 삼았다. 공무원을 지내셨던 아버지께서는 공직을 그만두시고 사업가의 길을 걸으시면서 자수성가형 사업가가 되셨다. 자본 없이 시작한 사업이지만 시작하고 몇 년은 사업이 번창하셨다. 자수성가형 사업가의 특징은 불안과 스트레스가 많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 앞날을 알 수가 없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불안한 사람들의 특징은 부정적인 면을 크게 보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는데, 부정적인 면을 과장하여 불안을 삶에 확대시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삶은 돈이 풍족한 시기에도 풍요로움과 여유를 느끼지 못하셨고, 돈이 부족한 시기에는 더욱 과거의 명성과 부에 집착하셨다.
불안과 두려움이 단단한 삶을 만드는데 밑바탕이 되기도 하겠지만, 과연 아버지의 삶이 행복하셨을지는 의문이다. 아버지를 위한 옷과 물건을 제대로 사보신 적이 없으시고, 여행을 다녀보신 적도 거의 없으시다.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기에 불안은 노후까지 이어지셨다. 불안의 특징은 "나" 또는 "자아"를 살펴보지 못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아버지 당신의 삶으로서의 ‘나’와 ‘자아’를 돌아보기보다는 가장으로서 또는 이 시기를 사는 개인의 의무로서 노동을 하시고 돈에 집착하셨다.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봐야 하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야 하며,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한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에게 너그럽지 못하셨기에 불안한 마음이 크셨고, 삶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셨다.
가족들은 “이제 그만하셔도 괜찮아요. 더 이상 힘들게 일하지 마세요.”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평생의 삶에 드리어진 불안과 두려움, 돈에 대한 집착과 마음은 마지막까지 아버지를 붙잡았다. 아버지 세대는 열심히 성장하고 일한 세대이다. 급격한 산업 발전의 시기를 거쳐 열심히 노동을 하고 노동의 대가로 돈을 벌은 세대이기도 하다. 집 바깥에서 일을 많이 해서 그 대가로 가정을 보살피고 가족을 돌보는 게 의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 세대는 일 하느라 바빴기에 불안한 마음을 소통하지 못하셨다. 가족들과 소통하지 못한 아버지 세대는 불안과 두려움을 당신의 몸속에 누적시키는 방법밖에 없었나 보다. 그렇게 하나씩 병을 쌓아두시면서 병원에 가서 당신의 몸을 살피시는 일은 안 해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셨다. 가족들이 원하는 건 아버지께서 어떤 삶을 사셨고,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소통하는 것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건 마지막까지 노동의 의무를 다하고 가족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일이셨다.
아버지께서는 평생 건강 검진을 받는 것을 거부하셨다. 심장과 폐가 제 기능을 못하는 순간에도 가족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아서 병원에 가는 것을 미루고 미루셨다. 아버지의 어깨를 짓누르는 불안과 두려움이 그렇게 만들었던 것일까? 아버지께서는 안정된 삶의 순간에도 편안함을 누리지 못하셨다. 삶을 누리기는커녕 불안과 두려움을 키워 가셨다. 집 밖에서는 노동의 의무에 대한 불안이 있으셨고, 집 안에서는 가족들과 소통을 하지 못한 외로움과 두려움이 있으셨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부담감이 크셨기에 가족들에게 아버지로서의 위엄을 세우지도 못하셨다. 집안의 가장이나, 남편, 그리고 아버지로서 의무를 다하셨지만, 아버지의 불안과 두려움은 그대로 남으셨다. 아버지께서 경제적인 불안과 아버지의 위치로서의 불안을 조금은 누르시고, 가족들과 소통을 하시면서 지내셨다면 아버지의 마지막 길은 조금 더 행복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어떻게 보면 나 또한 아버지 세대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아버지가 찾지 못한 자아, 나 스스로를 나 또한 찾을 수 없었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면서 자아나 나는 사라지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과 위축된 불안함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삶에 분노하지 않으면서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가치를 누려보고 싶다.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사는 게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는 길이기도 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 답을 책에서 찾고 싶다.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말이 있다. “아버지, 우리 함께 등산가요. 아버지, 우리 가족 여행 가요.” 노동의 의무와 아버지로서의 의무만으로 힘드셨을 아버지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다. 아버지께서도 당시의 자아를 돌보시면서 불안의 짐을 내려놓으셨으면 편안해지지 않으셨을까 싶다. 슬픔에 충실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삶의 의미는 변화할 수 있기는 하지만 아버지께서 지켜주신 삶을 기억하려고 한다. 책을 읽는다는 건 문장 속의 의미를 내 삶의 경험으로 연결시키는 행위이다. 죽음은 예견할 수 없지만 죽기 전에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글을 쓸지는 정할 수는 있다. 앞으로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고 싶다. 아이들에게도 그런 삶을 전달하려고 한다. 살면서 경험했던 일들에 책 속의 진실을 담는다면 불안과 두려움의 영역이 희망으로 채워지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