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 육아와 스트레스
둘째 아이가 세 살 무렵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다녀왔다. 놀이터는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지만 엄마들의 수다 터이기도 했다. 수다스럽지 못한 성향을 가진 엄마가 놀이터에 한 번 다녀온다는 것은 그날의 에너지를 다 사용하는 날이기도 했다. 에너지 소진을 다 하고 들어온 날에는 예민하기 마련이었다. 첫째 아이가 샤워를 하러 들어가면서 둘째 아이에게 시비를 걸었다. 아마도 첫째 아이도 엄마에게 어떤 요구사항이 있었을 텐데 그것을 받아주지 못하는 엄마의 그릇 때문에 그날 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혼냈고, 엄마와 두 아이들은 화장실 앞에 주저앉아서 대성통곡하며 울었던 적이 있다.
아이들을 더 잘 키우고 싶은 마음, 엄마가 일을 하면서 아이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 선택한 독서 교사로서의 직업이었다. 그렇기에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모두 잘 해내고 싶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첫째 아이는 친정 엄마께서 전적으로 돌봐주셨고, 살림이나 반찬도 엄마께서 도움을 주셨다. 둘째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직업을 독서논술교사로 전환을 하게 되니 모든 상황이 변하였다. 육아와 살림이 내 몫이 된 것이었다.
마음과 현실은 달랐다. 많이 해 보지 않았던 살림은 뭐 하나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렸고, 예민한 둘째 아이는 깨어 있는 시간 내내 울었다. 이제 막 새로운 직업인 독서논술교사를 시작한 나는 새로운 일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수업 준비에 몰입하고 싶었다. 그러나 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남편은 늘 두 아이를 재우면 집에 들어왔다. 둘째 아이는 수시로 깼고, 아이를 달래서 재우는 것은 엄마의 몫이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자상하고 집안일도 많이 해 주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 남편이 늦게 들어온 이유는 회사일이 정말로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편과 회사가 왠지 원망스러웠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스트레스와 독박 육아가 계속되었다. 아이들에게는 예민한 엄마가 되어 갔다. 둘째 아이는 기질이 예민한 아이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많이 울었고, 엄마 껌 딱지로서 늘 엄마의 품을 필요로 했다. 새로운 직업을 잘 해내고 싶었고, 엄마로서도 잘 해내고 싶었다. 엄마의 조급한 마음이 아이에게도 전달이 되었는지 엄마가 조급하게 행동할수록 아이는 엄마에게 더 매달리며 엄마와 시간을 나누고자 하였다.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을 거부하는 시기와 엄마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시기를 지나갔다. 첫째 아이는 뭐든지 혼자서 잘하는 아이였지만, 스트레스를 동생에게 풀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먹는 것에 의욕이 없었다. 두 아이는 잘 먹지 않는 엄마의 식욕을 닮았는지 새로운 음식은 거부했고, 씹는 속도는 느렸으며, 소화 기능이 좋지 않아서 억지로 먹였다가는 토해내기 일쑤였다. 하루 세 끼 밥 먹을 때마다 우리는 전쟁 아닌 전쟁을 치렀다.
두 아이 다 까다로운 성질을 가진 예민한 아이였던 것이다. 첫째 아이는 잘하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었고, 둘째 아이는 자기의 본성을 가리지 않고 보여주는 날들이 많았다. 낯선 환경을 좋아하지 않았고, 음식에 대해서 특히 예민하게 반응을 하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잘 돌볼 수는 없을까? 아이들을 잘 돌보기 위한 명분으로 직업도 바꿨는데, 이렇게 육아를 힘들어하면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한 건 아닐까 라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마음의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일도 더 잘하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워킹 맘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했을 법한 이렇게까지 하면서 일을 해야 되는 건가라는 생각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