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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큐레이터 에드가 Apr 13. 2021

[문학 에세이] 방황이 필요할 때

호밀밭의 파수꾼(JD 샐린저)

 줄거리

https://blog.naver.com/dreamteller_edgar


소설은 홀든 콜필드라는 16세 소년이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후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단 2일간의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은 것이다. 뉴욕 부르주아 집안의 아들이지만 허영과 위선으로 가득찬 사립학교와 사람들을 견디지 못하는 그의 독백이다.


방황 자서전


  홀든은 죽지 않았다. 술에 취해 오리를 찾아 센트럴파크를 헤맬 때, 혹시나 한스(수레바퀴 아래서 주인공) 처럼 죽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다행이다. JD는 헤세보다 자비로운 사람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본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 언제 누구 하나 보내는 건 그들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별다른 문제 없이, ‘방황 자서전’은 끝이 난다. 별일이 생기질 않길 바랬는데..... 막상 별일 없이 내용이 끝나고 나니 뭔가 석연치 않다. 찜찜한 기분이다. 그래서 그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그 뒤로 어떤 일이 생겼는지 전화라도 걸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홀든은 무엇 때문에 저리도 심술 맞게 행동했을까? 그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본다. 그는 분명 정형화된 학교 교육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듯하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정형화된 지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홀든은 참을성이 없었다. 그렇다. 홀든은 참을성 없는 아이다. 자신이 내키지 않으면, 절대로 그 일을 하지 않는다.     

  타인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보면, 극명 확 하게 드러난다. 그의 타인을 바라보는 심리묘사가 나를 웃게 한다. 자신이 내키는 사람이 아니면, 마음속으로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간혹 자신이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 만큼은 호탕하게 인정하는 바이다. 이 또한 드러내지는 않는다.  


홀든을 대변하다.


   홀든은 매력 있는 아이가 분명하다. 그의 매력은, 무엇이든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하지만 매력덩어리 홀든을, 어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관점에서는 홀든은 문제아가 틀림없었다. 나는 홀든을 문제아로 보지 않는다. 나라도 홀든의 편이되어, 그를 대변하리라.     

  사물을 다양하게 관찰 할 수 있는 순수한 문학적 감수성이 눈에서 뛰었다. 관찰함을 글로 묘사하는 능력 또한 우수하다. 그의 영어 성적을 보면 알 수 있다.

  순수한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도 돋보인다. 상업성이 감미 된 예술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 예들은 줄곧 나왔으므로, 설명하지 않겠다.     

  주변에 그의 다름을 이해해주지 못한 어른들밖에 없어 아쉬운 마음이다. 그와 죽이 잘 맞는 친구 한 명 있었다면, 그에 말에 조금 더 귀기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방황의 시기가 그리 길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어서 다행이다. 한스처럼 끝내 자기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모른 체, 숙련공 직업을 가지게 되고, 술에 취해, 비련에 죽음을 맞는 것 보다, 훨씬 났다.     

  그는 분명 투쟁을 하고 있었다. 정형화된 사람이 되길 바라는, 사회로부터, 학교로부터, 선생으로부터, 부모로부터, 열렬히 투쟁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투쟁의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경험이 필요했다. 누군가로부터 주입된 경험이 아닌,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자신의 피부 결 하나하나로 스쳐 느껴보길 바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홀든은 미성숙했다. 그래서 표현이 거칠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아직 모르고 있다. 그렇다고, 일찍 알 필요도 없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어보는 동생에 물음에. 당황한 모습을 보아도, 아직 자신을 모른다. 한참 모른다. 하지만, 알아가기 위해 필사의 힘을 다한다. 그 모습 하나로 족하다.     

  그의 모습이 우리가 마땅히 겪어 봐야 할 사춘기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는 방황의 시기가 없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맞춰진 틀 안에서 잘 맞춰지기 위해 노력하며 자라왔다. 그러다 보니, 돌이켜 보면 나의 삶에는 '나'가 없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바라는 ‘나’는 있지만,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은 생각해본 적 없다. 생각해볼 여지도 없었다. 나이가 들어 비로소 나를 찾으려 한다면, 시간이 촉박하여, 몸이 따라주지 않아. 부조화를 일으키지 않을까.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 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애기라는 건 알고 있어.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230p-    


라때형 파수꾼 보다 홀든형 파수꾼 


   홀든이 호밀밭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는 이상한 헛소리가 아니다. 그가 진정하게 원하는 삶이다. 자유로이 호밀밭에서 뛰놀고 싶은 그의 마음이다. 그러다가 절벽으로 떨어질라 치면 파수꾼이 나타나, 구해 주길 바랐다. 이 모습이 자신의 꿈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꿈에서만, 온전한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음을 직감한다. 나는 그의 직감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자신을 지키며, 성숙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 삶에도 파수꾼이 필요하다. 주변에서 내게 꼭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 나 때는 말이야 라고 말하는 '라때형 파수꾼' 이 아닌, 내 주변에서 나를 관심 있게 바라보며, 내가 행여 잘못된 길로 빠지지는 않을까. 절벽에 떨어질라 하면 도움에 손길을 내밀어 줄 수 있는, 홀든이 되길 원하던 그런, ‘홀든형 파수꾼’ 말이다.     

  문득, 빨간 사냥 모자를 주섬주섬 꺼내, 뒤집어쓰는 홀든을 떠올려본다. 나를 미소짓게 하는 그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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