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해 본 사람들이라면 익히 알법한 뭔지 모를 외로움.
당장 이직을 위해 퇴사를 해 본 사람이 아닌, 그저 본인의 개인사정과 다른 이유로 퇴사를 한 경우에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외로움이란 것이 찾아온다. 그 외로움의 정체를 알기 위해 부던히도 애를 쓰지만, 끝내 그 정의를 제대로 내리지도 못한 채 더한 외로움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그 외로움은 같이 일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리던 공동체적 몰입감, 뭔가 몰두하지 못하는 원하지 않는 자유로 부터 오는 외로움일 것이다.
익숙해지라고 하지만, 다들 겉으로만 괜찮은 척하다가 다시 외로움에 빠져든다. 퇴사조차도 그런데 은퇴라는 인생의 큰 전환점에서의 외로움은 더 크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은퇴로부터 본격적인 긴 외로움의 시작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큰 외로움의 파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도대체 어떤 외로움이 있길래 외롭다고 하는 것이고, 그 외로움을 견뎌내는 방법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걸까?
왜 방법이 없겠는가와 굳이 외로움을 타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생각이 든다.
인간은 태어날 때 부터 외로운 존재라는 말은 거의 공식으로 굳이 있는데도 외로움은 견디기 힘들다.
'외롭지? 정상이야.'라는 말이 와닿지 않아도 정말 맞나보다.
일단 은퇴를 하게 되면, 퇴사를 하면서 겪었던 그 '연락두절'이라는 1차 고비를 겪게 된다. 그동안 그렇게 친하던 사람들의 연락이 하나둘 끊기기 시작하면서 결국에는 거의 연락할 사람이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초반에는 보고싶다는 둥, 그때가 그립다는 둥하면서 연락이 종종 오지만, 나중에는 연락을 하기가 무서울 정도로 뜸해지고,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돈봉투를 만지작 거리게 만드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정말 인생 1막에서의 사람관계가 끝난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자신이 어떻게 사람들을 대했느냐에 따라 조금은 달라지는 것 같다. 단순히 직장인으로서의 관계를 넘어서는 관계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직장인으로서의 형식적인 관계에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로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맺어진 하나의 관계, 하지만 그 당시에는 둘도 없는 의형제같은 관계라고 착각하고 산다.
은퇴를 하게 되면 이 도움을 주는 관계 중 하나의 방향이 끊기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어 연락을 하기 주저하게 된다. 만약 여전히 영향력이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계라면, 아마도 이 관계는 지속될 가능성이 클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은퇴라는 큰 산을 넘고 있는 상황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끊어진 관계를 이어보고자 하는 쪽은 늘 은퇴자의 몫이다. 연락도 해보고, 식사도 같이 해보지만, 예전과 같은 대화의 장에 참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화에 끼더라도 진정한 대화가 될 리 만무하다. 끊어진 관계를 이어보고자 하는 노력은 언제나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와 같이 돌아오지 않는 한방향의 관계가 되어버린다.
이런 끈을 놓지 않고자 하는 노력은 1년, 2년이 지나다 보면 쓸데없는 노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허무함은 이루말할 길이 없어진다. 하지만, 이런 외로움은 언제 없어지더라도 섭섭할 뿐 심각한 것은 아니다. 일로 만들어진 관계라 언제 끊어지더라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외로움을 느끼는 곳은 바로 가족이다. 나의 가족에서 멀어지는 외로움은 참기힘든 외로움이고 괴로움이다.
보통의 대한민국의 가장들은 일과 직장에 몰두하다보니 가족에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고, 은퇴 후에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더 보내려고 한다고 한다. 말처럼 그렇게 쉽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고, 혼자 사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까?
가족은 가장의 소유가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동반자이기 때문이고, 때로는 의무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써야 하는 곳이다. 반드시 필요한 시간에 직장과 일을 핑계로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면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가족에게 준 빈 시간의 외로움은 나중에 다시 10배 이상의 외로움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일이 바빠서라는 것은 핑계일 수도 있지만 사실 핑계가 아닐 수도 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낮으로 바삐 움직여야 하는 가장이라면 자신의 건강을 돌볼 시간도 갖지 못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가족에게 소홀해 질 수 밖에 없을 뿐이다. 이런 이유가 아닌 다음에야 일 때문이라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직장에서의 시간은 어쩔 수 없지만, 가족에게 써야 하는 시간에 대한 생각의 가벼움때문에 가족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고 자신에게만 시간을 쏟아 스트레스를 줄여보고자 하는 가장도 있다.
이런 가장에게는 은퇴 후의 시간이 힘들기만 하다.
은퇴 후에는 외로운 시간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다시 얘기하면 혼자 있을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많아진다는 의미도 된다. 외롭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것을 벗어나거나 즐기려고 하는 노력을 안해 본 것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은퇴 후의 많은 시간을 혼자만의 즐거운 외로운 시간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미리 그 ‘즐거운 외로움’에 익숙해 지는 것이 필요하다. 취미생활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찾는 방법을 은퇴 전부터 찾아야 한다.
주말에 등산을 가거나 도서관을 가는 것도 좋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다.
혼자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을 때의 즐거움을 뛰어넘는 경우도 있고, 오롯이 나를 돌아보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나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혼자하는 것에 대해서 익숙해 지는 것이다.
이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에 익숙해 지면, 이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찾는 시간도 더 많아질 것이다.
나의 혼자만의 즐거운 노하우를 알기 위해서도 있고, 서로간의 즐거운 외로움을 공유하는 것도 더 없는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외로움, 더 이상 외로워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혼자라서 즐거움이라는 것으로 새롭게 생각을 바꿔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