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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북과 함께하는 인생여행, 하루

Liber Novus, 왜 레드북을 읽는가

by 해리포테이토

스위스의 분석심리학자 카를 구스타브 융은 1913년부터 16년 동안 글과 그림을 담은 책을 썼다. 책의 제목은 '새로운 책'이라는 뜻의 '리베르 노부스(Liber Novus)'. 빨간색 하드커버로 된 이 책을 융은 <레드북>이라 불렀다. 그는 환상과 꿈을 접하면서 적극적 상상과 자유연상 등 자신의 깊은 곳과 대화하며 글을 썼는데, 처음에는 검정색 노트였다. 이 검정색 노트 여러권이 레드북의 원재료가 된다. 융은 빨간색 하드커버에 라틴어로 'Liber Novus'라고 쓰고, 글이 시작될 때마다 중세풍의 라틴어로 장식하고 이어서 독일어로 써 내려갔다. 라틴어 장식체의 대문자로 시작하는 것은 보다 소중하게, 성스럽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무의식을 탐사하는 것은 신화 속 영웅들이 지하세계를 탐사하듯 용감하고 겸손하게 또 지혜롭게 신의 자비를 구하며 하는 일종의 성지순례이기 때문이다.


융은 정신분석 학자이면서 정신과 의사였다. 인간 내면의 깊은 무의식을 탐구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나선 사람이었다.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무의식을 탐사하면서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레드북을 썼던 것이다.


융이 겪었던 고통과 혼란, 불안과 고독, 인내와 분리와 통합 등을 <레드북>을 읽으면서, 동시에 읽고 있는 우리 자신도 유사한 일들을 겪었다. 오랫동안 버려두었던 그림자들, 포기하고 억눌렀던 생각과 감정들, 내 안에서 죽여만 하는 존재들 그런 것들을 만났다. 융이 그러했듯, (융은 자신을 따라하지 말라고, 자기의 개성을 살리라고 했기에, 독서모임을 한) 우리들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레드북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융은 레드북에 글을 쓰면서 글로 다 하지 못하는 말들은 그림으로 그렸다. 그는 200장이 넘는 그림들을 남겼다. 그는 말한다. "이 세상의 이미지는 세상의 반이다." 이미지는 텍스트보다 더 오래된 언어이다. 무의식과 잘 소통할 수 있는 언어이다.



모든 여행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나를 알아가는 여행이 레드북이고 리베르 노부스이다. 내면여행은 성지순례이다. 나는 2013년에 처음 <레드북> (한국에서의 첫출판책 지금은 절판된)을 읽었다. 그림들이 대부분 흑백이었으며 글 또한 추상적이고 역설적인 문장들이 많아 어둠 속을 걷는 느낌으로 읽었다. 무슨 뜻인지 몰라도 그냥 읽었다. 두꺼운 벽을 손으로 만지며 길고 긴 어두운 터널 속을 혼자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때 나는 마음에서 절박한 요청이 있었던 것 같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그런 물음. 사는 데 아무 소용 없을 것 같은, 그러나 알아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은.



책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듯한 문장들로 가득했다. 그래도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데, 거의 중반쯤에 이르렀을 때 딱 한 문장 알겠는 문장을 만났다.


"길은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그 뒤로 조금씩 한 문장씩 들어왔다.


길의 반은 흰색이고, 다른 반은 검정색이다. 나는 검은 부분에 발을 디뎠다가 깜짝 놀라 물러선다. 뜨거운 강철이다. 나는 흰색 반쪽을 걷는다. 거기는 얼음이다. 그러나 길은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구 레드북 174쪽)



어떤 어려운 책이든 계속 읽어나가면 반드시 한 문장은 알아들을 수 있다. 그 바늘 하나 같은 한 문장이 무기가 된다. 바늘은 칼이 되고 도끼가 된다. 도끼가 되어 굳어 있던 정신을 깨부수기 시작한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기 자체가, 무의식 안에서 자율적으로 하는 것 같았다.






보카투스아트쿠아.jpg "불리어졌든 불리어지지 않든 신은 여기 있다"(라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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