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와 결별, 정신의 구조
어릴 때 융은 친구와 다투다가 기절을 했다. 그 이후 자주 기절한다. 그래서 학교를 빼먹는 일이 잦아진다. 그러던 어느 날 어른들이 자신에 대해 말하는 대화를 듣는다. 간질병에 대한 내용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대화였다. 그들의 대화를 엿들은 그는 충격을 받았다. 더 이상 기절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책상 앞에 앉아 라틴어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여지없이 기절한다. 깨어난 후 그는 지독히도 어려운 라틴어를 계속 마주하고, 그러면 또 기절하고, 잠시 뒤 깨어나 또 라틴어를 마주하고.. 이렇게 기절과 깨어남을 반복하다가, 결국 어느 순간 기절은 사라진다.
융은 훗날 이 기절은 자신이 간접적 방식으로 만들어낸 것이며 그것은 학교나 숙제 등 불쾌한 경험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 사건은 융에게 인간의 신경증과 관련한 메커니즘을 알 수 있게 하였다. 나는, 융의 어릴 적 자기 극복 과정이 훗날 레드북을 쓰며 겪는 자기 극복의 과정과 무척 닮았다고 여겨졌다.
융은 <레드북>을 쓰는 16년 동안 원형과 집단무의식, 개성화 과정을 체계화했다. 그가 말하는 원형(archetype)이란 인간이면 누구가 겪는 경험과 행동들, 인간의 전형적인 성격과 타입들을 말한다. 또 자신의 내면 중심에 닿고 의식과 무의식이 통합된 상태가 자기이며, 융은 이 자기를 실현하는 과정을 개성화 과정이라고 말한다.
융은 1906년부터 프로이트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류를 시작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고수하는 '리비도'와 '종교적 본질'에 관한 의견은 달랐다. 프로이트는 성적인 이슈, 예를 들면 유아성욕론이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것을 포기할 수 없었고, 융은 보다 더 고태적인 신화와 전설 민담 등의 인간 내면의 신성성의 이슈에 마음을 더 두었기 때문이었다. 둘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으면서 결국 1913년 결별한다.
이 무렵 그는 환상과 환청에 시달리며 정신분열증에 걸린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하지만 그는 이 정신병적 징후를 외면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대면한다. 자신의 그림자와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적극적인 상상을 통해 대화를 하면서 레드북 집필을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어릴 때의 기절 사건과 그 극복 과정이 그에게 힘을 주는 뿌리가 아니었을까.
지금도 여전히 불안은 하지만 예전에 나는 무척이나 불안했다. 친구들과 즐겁게 웃으며 행복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아주 잠깐 고개를 돌리면 땅바닥에서 지진이라도 난 듯 쩍쩍 갈라진 모양을 보곤 했다. 어떤 경우에는 하룻밤에 꿈을 열세 개를 꾼 적이 있다. 열세 개의 꿈을 적는데 세 시간쯤 걸렸다. 나는 이러다 미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면서 어릴 적 아버지가 뇌수술의 후유증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던 때가 다시 떠오르곤 했다. 술이나 일로 자신의 몸과 정신을 혹사하고 중독시킴으로써 불안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다. 아주 멀리 도망갔다고 느끼는 순간 몸에 고무줄이 있는 것을 본다. 결국 어디든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마음에서 조용히 말을 해준다. 인간은 원래 그런 거야. 이러쿵저러쿵 판단하지 말고 작은 것에 기쁨을 느껴. 한 문장만 써보자. 단어 하나도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