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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휴양지로 떠나는 게 좋을 수도

죽음에의 유혹

by 해리포테이토

4장 휴양지로 떠나는 게 좋을 수도


당신은 히말라야를 꿈꾸는 것이 죽음에의 유혹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트레킹을 하다가 실족 혹은 동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불면을 핑계로 챙겨간 수면제를 먹고 눈밭에서 잠에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당신은 알았다, 죽음을 꿈꾸지 않으면 해방 역시 꿈꿀 수 없다는 것도. 잘 돌아가는 삶의 바퀴를 깨부수는 것은 죽음밖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당신은 급기야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했다. 히말라야로 떠나기로.


그곳에 가면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도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아무것도 찾지 못할 거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이대로 주저앉아 있으면서 잘 돌아가는 바퀴가 깨질 때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사 근처의 한 여행사로 향했다. 통유리 안으로 보이는 벽면에는 하와이의 푸른 바다, 괌의 하얀 모래사장, 동남아의 이국적인 리조트 사진들이 화려하게 걸려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젊은 직원이 환한 미소로 당신을 맞았다.


“어서 오세요. 어떤 여행을 원하시나요? 가족분들과 가실 휴양지 생각하고 계신가요? 요즘 괌이 정말 좋거든요.”


직원의 목소리는 활기찼지만, 당신의 눈은 그 화려한 풍경들을 지나, 벽 한쪽에 작게 붙어 있는 히말라야 사진에 멈췄다. 낡고 색이 바래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웅장함은 당신의 심장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저… 히말라야 트레킹을 알아보고 싶어서요.”


당신의 말에 직원의 미소는 조금 흐려졌다. 그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보더니, 이내 솔직한 걱정을 담아 말을 이었다.


“아… 고객님, 히말라야는 좀 힘든 코스인데요. 특히 혼자 가시는 거라면… 솔직히 말씀드려 동년배 고객님들이 가장 선호하시는 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휴양지 쪽이세요. 마사지도 받고, 맛있는 거 드시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힐링하실 수 있는….”


직원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당신도 그의 말이 맞다는 것을 인정했다. 몸은 편하고, 마음은 가벼운 여행. 십이 년 동안 열심히 살아온 당신에게 주는 보상, 무거운 삶을 살아온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휴식, 분명 그런 여행일 것이다. 당신은 고개를 저었다.


“맞아요, 저도 쉬고 싶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 편하게 쉬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뭐랄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힘들고 싶어요. 힘들어서 정신이 깨어났으면 싶어요. 정신이 잠들어 있어서 무기력한 게 아닌가 싶어요. 잘은 모르지만 무언가 새로운 환경을, 낯선 고통을 겪어보고 싶다고 해야 할까요. 좀 이상하게 들리지요. 하지만 그래야만 돌아와서 지금의 이 팍팍한 삶을 이겨낼 힘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오랜 시간 억눌러왔던 진심이 담겨 있었다. 젊은 직원은 당신의 눈을 보며 잠시 침묵했다. 그제야 그는 고객이 원하는 것이 단순한 여행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한 인간이 삶의 한계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여행이었다. 직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에서 파일을 꺼내왔다.


“가장 기본적인 코스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이 있습니다. 길이 험하지 않아 초보자도 갈 수 있지만, 해발고도가 높아 고산병을 조심해야 합니다. 간혹 지독한 눈보라를 만나기도 합니다. 많이 힘드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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