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자신을 죽이는 것은 칼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다
영화 <테이크 쉘터>는 악몽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커티스(마이클 섀넌)는 아내와 딸을 사랑하는 아빠이자 성실한 남편입니다. 커티스는 어느 날 악몽으로 잠 못 이루더니 점차 악몽은 심각해집니다. 이상한 폭풍우가 일어나고, 그럴 땐 세상이 끝날 것 같은 불안에 빠집니다. 천둥 번개를 동반해서 몰려오는 비는 엔진오일이 섞인 듯 누렇습니다. 사람들은 그 비를 맞고는 미쳐버리고 커티스를 공격하며 딸을 잡아갑니다.
커티스가 꾸는 악몽의 단계는 이렇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이 기르는 개에게서 오른팔을 물리는 장면입니다. 악몽에서 깨어났지만 현실에서도 온종일 팔이 아파옵니다.
두 번째는 점차 가까운 사람들이 등장해서 자신을 해치려는 장면으로 나아갑니다. 같이 일하는 친한 친구가 폭풍우가 불고 나서 이상해지며 도끼를 들고 자신을 쫓아와서 다리를 찍어버립니다.
세 번째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고 사랑하는 아내가 비에 흠뻑 젖은 몸으로 주방에 유령처럼 서 있는 장면, 그 옆에는 식칼이 놓여있습니다. 아내가 식칼을 쳐다보고 커티스는 엄청난 두려움으로 깨어납니다.
커티스에게는 이러한 악몽들이 너무 생생해서 무시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진짜로 세상이 끝날 것 같고 정말 사람들이 이상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커티스는 자신도 모르게 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럴 때 문제가 현실에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커티스는 개에게 물린 악몽 이후 개를 볼 때마다 불안을 느낍니다. 결국은 집안에서만 키우던 개를 밖으로 내보내게 됩니다. 청력을 잃은 딸이 애지중지하던 개였습니다. 밖으로 내보낸 것을 의아해하는 아내에게는 원래부터 자신의 개였으니까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엔 아내와 딸이 없을 때 형에게 개를 줘버리면서 자신의 불안을 해결합니다.
자신의 친한 친구이자 함께 일하는 동료가 도끼로 자신의 다리를 찍는 악몽을 꾼 이후, 커티스는 그 친구가 괜히 꺼려졌습니다. 왠지 자신을 해칠 것 같은 불안감이 자꾸 들었던 것입니다. 반면 친구는 요즘 부쩍 이상해진 커티스가 자꾸 자리를 비워 사장의 의심을 샀을 때 해명해 주었고, 대피소를 만들려고 하는 커티스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무 말 없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런 친구를 커티스는 몰래 사장에게 부탁해 다른 곳으로 전출시켰던 것입니다. 개를 멀리 보내버리듯 친구 또한 멀리 보내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된 친구는 그동안 도와주고 보호해줬던 커티스에게 배신감과 분노를 느낍니다. 그리하여 커티스의 비리를 사장에게 다 고하게 되고 커티스는 회사에서 해고됩니다. 결국 커티스는 자신의 꿈대로 친구에 의해 자신의 다리가 도끼에 잘리듯 회사에서 잘립니다.
악몽을 꿀 때마다 커티스는 세상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자신의 가족이 안전할 수 있는 지하 대피소를 만들려고 합니다. 마치 노아의 방주를 짓듯이 말이지요. 집을 담보로 대출해서 대피소를 지을 준비를 합니다. 중장비 노동자인 커티스는 사장 몰래 회사의 중장비를 사용하고 친구에게 도움을 구해 안식처인 대피소를 만들게 됩니다. 사람들과 아내가 미쳤다고 해도 그것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악몽이 계속되며 세상이 끝날 거라는 확신이 더더욱 강해졌기 때문이다.
한편 아내는 딸의 청력 회복을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 남편 회사의 의료보험 혜택을 받아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남편의 해고로 딸의 수술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말할 수 없는 좌절과 분노가 일어납니다. 마치 커티스의 꿈에서처럼 분노와 절망감에 흠뻑 젖어 칼을 들어 남편을 죽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망설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내면 아이의 세상이 끝날 것 같은 불안
커티스는 10살 때 어머니와 함께 간 마트 주차장에서 차에 방치된 채 발견되었습니다. 커티스를 차에 두고 돌아오지 않았던 어머니는 일주일 후에 찾았을 때 길에서 쓰레기를 주워 먹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보내지고 평생을 그곳에서 보내게 됩니다.
악몽은 커티스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영화의 시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여줍니다. 커티스는 예민하게 이상기류를 감지하고 구름이 몰려오며 비가 내리는 것을 봅니다. 비는 기름이 섞인 누런 비였고 이런 악몽은 커티스에게 반복됩니다.
어느 날 악몽에서 깨어난 커티스는 성인인 자신이 이불에 오줌을 싼 것을 발견합니다. 하는 수 없이 병원을 찾아갑니다. 가족력에는 어머니가 30세에 정신분열증이 발병하였고 지금 커티스는 35세입니다. 병원에서는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정신병원을 소개합니다. 커티스는 자신도 어머니처럼 정신분열증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합니다. 약을 먹어서라도 그런 일만은 막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급기야 커티스는 한 번도 찾지 않던 어머니를 찾아갑니다. 어머니 초기의 증세가 어떤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결혼해서 아버지의 부재로 많이 힘들었고, 혼자서 아들 둘을 키우기가 버겁고 두려웠던 것입니다. 버틸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어머니는 결국 정신줄을 놓아버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자식들을 버렸지만 커티스는 반드시 가족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굳건합니다. 그렇기에 대피소를 지어 가족을 지켜 내려고 한 것입니다.
오줌을 싸는 아이는 부모에 대한 불안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들리는 나무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게 되는 아이의 내면을 상징합니다. 섬세하고 민감한 아이들은 이상 기류를 본능적으로 감지합니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에는 세상이 끝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지요. 이런 불안은 부모로부터 기인하는 경우가 큽니다. 아이에게 부모는 신과 같은 존재이며, 아이 자신의 생존도 부모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애정전선에 민감하고 부모의 싸움은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느낌이 됩니다. 심하면 부모의 불화는 지진의 강도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커티스는 10살 때 영문도 모르고 낯선 주차장에 버려집니다. 그때 아이는 세상이 끝날 것 같은 불안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이에게 트라우마처럼 새겨져 있다가 삶에서 유사한 불안을 겪게 될 때 10살 아이의 불안으로 퇴행하게 됩니다. 내면 아이의 불안은 악몽의 형태로 다시 고개를 들고 나타납니다.
커티스는 불안을 자신 안에서 찾지 않고 외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투사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진짜 악몽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지금 자신을 죽이는 것은 칼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다
고전 <몬테크리스토 백작>에 나오는 말입니다. 악몽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때 진짜 현실을 악몽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악몽을 꾸게 된다면 먼저 질문해 볼 것이 있습니다. '악몽처럼 어린 시절 자신에게 가장 끔찍했던 일은 무엇이 있는가?'
우리의 과거는 '옛날의 일'로 끝나버리는 일이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 자신을 죽이는 것은 어떤 상황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