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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Apr 27. 2020

1. 타인의 평가에 따라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다

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서로 사랑했던 여자와 남자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흔히 동화 속 엔딩은 이러한 문장으로 끝을 맺지만 여성의 진짜 현실은 그 엔딩에서 시작한다. 모든 사람의 축하를 받으며 화려하게 입장한 식장 문은 삶의 무대 밖으로 나가는 통로였다. 그래서 옛 조상들은 여성의 ‘결혼’은 곧 ‘장례’라고 여겼나 보다. 여성에게 결혼은 자신의 죽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혼하면서 무대 밖으로 사라진 여성은 사회에서도 소외되었다. 아무도 결혼한 여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 두거나 알려고 하지 않았다. 며느리·엄마·아내로 살아가며 겪는 여성들의 불평등하고 부당한 문제들은 모두 개인 문제로 치부되었다. 각자의 삶에서 홀로 애쓰다가 순응하거나 포기하며 살아왔다. 여성들 개인이 안녕하기 어려웠다. 시가와 가족 사이의 복잡하게 뒤엉킨 문제들은 빈번한 부부 불화로 이어졌고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결국 사회 구성원의 핵심인 가정 속의 한 여성이 행복하기 힘드니 가족 모두 잘 지내기 어려웠다.


《며느리 사표》의 독자인 선영 씨는 어릴 때 집안에서 어머니와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와 어머니에게는 여자의 목소리가 커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래야 교양 있고 수준 있는 여자라고 여겼다. 어머니는 평생을 욕 한 번 해본 적 없이 살아오셨다. 그런 어머니가 70대가 되어서 처음으로 욕을 하셨다. 나이 든 여자는 더는 여자가 아니라고 여기셨던 것 같다.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이어지는 ‘교양 있는 여자’의 삶이 선영 씨에게도 몸과 마음 깊이 배어 있었다. 선영 씨는 자신의 몸에 밴 습성을 ‘몹쓸 교양’이라고 표현했다. 그 몹쓸 교양 때문에 맏며느리 역할, 시가의 집안일과 제사는 물론 경제적으로 원조하고, 시동생의 사고까지 뒷감당하면서도 불평불만이 없었다. 교양 있는 여자니까. 자신의 가정과 아이들보다 시부모와 시가의 일이 우선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맏며느리로서 최선을 다해도 시어머니에게는 늘 부족하고 문제 많은 여자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는 며느리로서 당연한 듯, ‘그저 내 아들 잘 만나서 팔자 좋은 여자!’라는 인식뿐이었다.


선영 씨는 결혼 21년 동안 시가에서 일어나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일들에 분노하면서도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힘들었다고 한다. 시가와의 문제, 특히 시어머니 태도에 관해 남편에게 하소연하면, “어머니가 당신보다 더 사시겠어?”라며 ‘젊은 당신’이 이해하라고 다그쳤다. 친구들은 은근히 한 수 가르치려 하거나 선영 씨를 욕심 많고 유별난 존재로 보았다.


“다들 그렇게 살아. 그 정도 시집살이 겪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니?” 
“너는 너무 똑똑해서 힘들게 사는 것 같아. 때로는 어리숙하게 굴어야 모두가 편안해지지.”


선영 씨는 늘 혼란스러웠다. 

‘내가 이상한 여자인가?’, ‘다른 여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잘살고 있는데 왜 나만 힘들지?’, ‘내가 진짜 욕심이 많은가?’


정신이 깜박거릴 때가 많고 그냥 멍하게 있을 때도 잦았다. 마치 머릿속이 복잡한 실타래로 뒤엉켜버린 듯했다. 때로는 자신이 바보가 되거나 미쳐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선영 씨에게 가장 큰 혼란은 부부와 시가와의 관계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는 데에서 왔다.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배워왔던 ‘여자의 삶’에 대한 가르침과 현실에서 느끼는 부당함이 자꾸 부딪히고 의문을 낳았다.


가장 큰 문제는 딸에게 나타났다. 딸은 열 살 무렵부터 몸을 긁어 상처를 냈다. 얼굴을 제외한 온몸에 상처 자국투성이였으며, 딱지 난 곳을 뜯어 다시 부스럼을 만들었다. 두드러기도 심했다. 약도 듣지 않았다. 피부의 상처와 부스럼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온몸에 난 부스럼으로 딸은 한여름에도 목까지 올라오는 긴 옷을 입고 다녔다.


2년 전 선영 씨는 시어머니에게 “더는 며느리 역할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단다. 이런 아내에게 남편은 즉각 이혼을 통보하고 생활비를 끊었다. 그 상황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길을 잃었던 그때 《며느리 사표》를 읽었다. 며느리 사표를 먼저 냈던 나의 이야기를 읽고 오랫동안 감지해왔던 시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고 안도했다고 한다. 부당한 처우에 더는 참지 않고, 며느리를 그만둔 것이 이상한 행동이 아님도 알았다.


선영 씨는 며느리 사표를 내고 나서야 비로소 21년 동안 시가에 쏟았던 에너지를 온전히 자신에게 돌릴 수 있었다. 지금은 용기를 내어 시가와 남편에게 당당하게 맞서고 있다. 동시에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꿈만 꾸던 일을 준비하고 공부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딸의 온몸에 난 상처들이 아물기 시작했다. 아문 피부에서 뽀얀 새살이 올라왔고 딸은 지난여름 민소매와 반바지를 입었다. 엄마 스스로 길의 방향을 틀기만 했는데도 딸이 치유되었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본 선영 씨는 용기 있는 행동이 자신은 물론 딸까지 되살아나게 했음을 깨달았다.


우리의 가정은 지금 건강한가?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정신 바짝 차리는 여성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자신을 잃어버리고 인습에 순응하는 여성은 당연하게 보는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에게 일어나는 불합리하고 부당한 문제들을 살피고, 좋은 며느리이기보다는 자신에게 먼저 최선을 다하려는 여성인 우리는 이상하지 않다. 이상한 가부장 월드에 갇혀 며느리로 살아올 수밖에 없었을 뿐이었다. 더는 이상한 세상에서 살지 않겠다는 여성들이 스스로 그곳을 빠져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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