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진짜 소중하다면
남편은 가끔 내게 서운해한다. 자신이 아내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몰라준다는 이유다. 남편 안에는 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큰지 모르겠지만, 그 마음이 내게 와닿으려면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일러준다. 행동 없는 사랑은 실체 없는 공염불이고, 자신까지도 속이는 거짓일 수 있다. 우리 두뇌는 말과 행동을 구분하지 못하고, 말하거나 생각한 것을 실제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아내를 소중히 여긴다는 생각만으로도 스스로 괜찮은 남편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지난 시절, 남편은 자신의 마음과 아내인 내 마음이 같다고 착각했다. 남편은 “꼭 말로 해야만 알아?”라는 말을 자주 되풀이했다. 부부로 오래 같이 살았는데, 굳이 일일이 설명해야 아느냐는 의미였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척 하고 알아채야 정상적인 부부라는 듯이 말했다. 같은 이유로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서 자신의 짐작대로 아내를 대했다. 우리는 한집에 있지만 서로 다른 섬에 사는 것 같았다. 이제는 남편이 “말로 해야 아느냐”고 물을 때마다 힘주어 대답한다.
“마음은 어떤 식으로든 표현되어야 상대가 알 수 있어!”
20대 중반인 슬기 씨에게 들은 사연이다. 슬기 씨 애인은 자신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늘 표현해주었다고 한다. 마음을 시로 써서 전화로 들려주고 문자로 보내주기도 했는데, 그 내용이 무척이나 감동스러웠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만날 날짜를 정하려고 하면 매번 일이 많고 바쁘다고 했다. 사귄 지는 1년이 넘었지만 만난 횟수는 고작 서너 번에 그쳤다. 좋은 공연이 나오면 같이 가자, 이번 여름에 어디로 여행 가자, 어디 음식점이 진짜 맛있다는데 꼭 함께 먹으러 가자 등등 쉽게 다음을 기약했다. 너무 바쁘기에 지금은 만나지 못하지만, 마음은 항상 함께한다고 알아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입으로만 세상에 둘도 없는 연인일 뿐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애인과의 관계는 흐지부지되었다. 제대로 만난 적도 없기에 정식으로 헤어지자는 말도 필요 없었다고 한다.
슬기 씨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 서로 사랑한다는 표현조차 하지 않은 연애 초반이었다. 서울에 혼자 살던 슬기 씨에게 어느 날 독감이 들었다. 전염성이어서 격리가 필요했기에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그저 홀로 고열과 몸살을 앓았다. 안타까워하던 애인은 그녀를 위해 죽이나 먹을 것을 사다가 문 앞에 걸어두고 갔다. 직접 장을 보고 채소·고기·과일 등 균형 맞춘 식사를 예쁜 도시락에 담아다가 놓고 가기도 했다. 마음을 담은 행동에서 사랑이 느껴졌다.
한번은 당시에 취업준비생이던 슬기 씨가 원하는 회사 최종면접에서 떨어졌다. 하필 애인과 함께 있을 때 불합격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허탈하고 망연자실했고, 애인 앞이라 더 속상했다. 애인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자위가 붉어지며 진심으로 속상해하는 표정이었다고 한다. 그는 슬기 씨의 마음이 어떤지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듯했다.
슬기 씨는 그의 태도에서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화려한 말보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과 표정이 마음을 전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와의 관계 덕분에 슬기 씨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전달되고 전해지는지, 아주 작은 행동에서 배려를 느끼고, 말보다 진심을 담은 미소와 친절에서 위로와 존중이 비롯된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이는 타인과의 관계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자신에게 진짜 소중하다고 느낄 만한 행동을 하고 있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할 때가 많다.
예를 들면 귀찮아서 패스트푸드로 배를 채우거나, 다이어트를 한다며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으며 거식과 폭식을 반복한다. 이는 자신의 몸에 가하는 폭력과도 같다. 자식 학원비와 과외비는 50만 원이라도 기꺼이 지불하지만, 자신의 배움을 위해서는 5만 원도 아까워하는 것, 남들에게는 밥값·술값으로 몇만 원을 기꺼이 내면서 정작 자신이 필요한 물건에는 1만 원도 고민한다. 학교나 교회, 사회에서 하는 봉사활동에 기꺼이 나서고, 친구 등 남들의 고민에 발 벗고 달려나간다. 정작 스스로를 위해서는 한 시간의 여유조차 주지 않으며, 심지어 편하게 쉬면 죄책감을 느낀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를 소중하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남의 말은 잘 들어주면서 내 말은 지독히도 듣지 않았다. 나의 필요와 원하고 느끼는 것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남편이나 가족 등 타인도 나를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만큼 스스로를 대접해주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러니 남편으로부터 소중히 대접받는다고 느낄 만한 행동을 끌어내지 못했다.
아이들에게도 ‘왜 엄마를 배려해주지 않느냐’고 호소했지만, 사실 스스로 배려해주지 않은 결과였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필요한 것,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표현하면 상대는 그대로 배려해주고 싶어 한다. ‘알아서 해주겠지’라고 맡겨버리면 배려는 일어나기 어렵다.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는 것은 상대로 하여금 구체적으로 실천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확인해왔다. 누군가에게 대접받고 사랑받고 싶은 간절함은, 스스로를 대접해주지도 사랑하지도 않는다는 반증이었다. 어쩌면 나의 허기를 상대가 채워주기를 원하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진짜 소중하다면, 이미 원하는 바를 스스로 충족하고 있을 것이다. 소중한 존재가 되려면 스스로를 먼저 소중히 여기며, 대접받으려면 자신에게 먼저 대접해야 한다. 내가 나에게 행하는 대로 상대도 나를 대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