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보게 되는 사주 철학
지인 분이 내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서울에서 엄청 유명한 사주 철학을 보는 곳이 있대서 추천해 주셨다. 나는 전 남편과 결혼 전에 사주를 3곳을 보았는데, 2곳에서 인연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혼하게 될 줄 어떻게 알았으랴. 그래서 더 이상 사주팔자에 의존하지 않고 보지도 않기로 했다. 답답할 때 1년에 한 번 정도 보던 사주 철학이었다. 사주는 통계학이라고 하니 맹신은 하지 않지만 참고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주는 대부분 자신이 듣고 싶은 소리를 들을 때까지 찾아 나서는 것 아닐까 한다. 나도 이번에 추천받은 곳에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듣고 싶었다.
이번에 봐주시는 분은 서울에 계셔서 워낙 먼 거리라 전화로 상담이 진행되었다. 선생님께서
"44살 때부터 대운이 들어와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 해도 다 이룰 수 있고, 재물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 마음껏 쌓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10년간은 여전히 지금처럼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지속될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그 말에 서러웠던 시간들이 떠올라 눈물 콧물 펑펑 닦아내며
"제가 10년 하고도 10년을 또 터널 같은 삶 속에서 34살에 봄이 온다는 말만 듣고 어떻게든 이 악물고 버텼는데, 제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힘들어요. 여기서 또 10년을 봄을 바라보고 어떻게 버티나요. 저는 이제 정말 힘겹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전 남편과 관련해서는
"이 분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지금도 만나는 여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분은 올해도 내년에도 계속해서 여자가 들어오고 앞으로도 여자가 계속 생기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새로운 파트너를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2026년에는 더 좋은 여자를 찾으려 욕심을 부리다가 또 만나던 여자를 버리는 꼴입니다. 이런 사람과 사주에 엮이면 좋을게 하나도 없고, 평생 산다면 그 부분을 감안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분은 재물복이 많아 사회적으로는 재물이 많습니다."
"선생님 저 너무 억울해요. 저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제 운명은 38살에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고 하고, 악착같이 살아서 44살부터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쟤는 왜 끊임없이 여자가 나타나고 재물도 태어날 때부터 많은 건가요. 인생이 너무 불공평해요."
다시 쌓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선생님께서
"단면만 보면 그렇지만, 인생은 장편 소설입니다. 장편 소설에서도 절정 끝에 결말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인기가 많습니다. 저로서는 참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너무 부러운 사주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연애도 너무 착하게 남을 위해 맞추어 주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실익을 늘 따지며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지 찾아가며 즐기며 살 때입니다."
미래에 조언해 주신 말은 다 주옥같았다. 남편이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만나지 않더라도 앞으로도 그렇게 여자를 계속 만난다는 것도 듣기에는 썩 좋은 소리가 아니어서 마음이 불편했다. 이제 남편으로부터 예전처럼 다시 벗어나고 지워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나를 위해 하루빨리. 그리고 사주에서 해 주신 좋은 말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좋지 않은 부분은 주의하며 살면 될 것 같다. 모든 일들을 전화위복이라 생각해야겠다.
사람들은 왜 사주를 보러가는걸까? 아마도 현재의 막막하고 답답한 자기 마음을 헤아려주고 불안한 미래에 대해 조금이라도 믿는구석을 만들고 싶어서일까?
초등학교 때 뜀틀 수행평가가 있었는데 그 뜀틀이 어찌나 무섭고 높아 보이던지 내가 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여러 번 연습 끝에 뜀틀을 뛰어넘는 순간 그 뜀틀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느꼈던 쾌감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만들어 놓은 인생의 벽을 그 뜀틀처럼 하나 둘 없애야겠다. 도움닫기를 워낙 많이 하여 발구름판이 닳을 정도로 산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수많은 연습 끝에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도약하는 그날까지 나는 또 기나긴 준비 기간을 가져야겠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니까. 얼마나 눈부시게 해가 뜨려는지 기대되는 나의 미래를 위해 인고의 시간으로 나를 다시 다듬어 가야겠다.
눈물을 말리고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시원한 맥주가 흐느끼던 내 아픈 가슴을 적셔준다. 몇 날 몇 시 몇 분에 태어난 것으로 인생이 결정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인생이 재미가 없는가. 사주 철학은 참고만 하되, 내 인생의 모노드라마는 본인의 손에 달려있다. 하루하루 멋진 에피소드를 완성해 나가자. 비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더니 죽어라 울어대던 뜨겁던 여름이 인사도 없이 가버리고, 가을 하늘이 청량하게 돌아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을 공기와 어우러진 푸르른 나무들이 참 아름답다. 오늘 하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