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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늘이 May 22. 2019

영국 나이 5.5살, 한국 나이 7살

율율

율율

주머니 난로를 가지고 다녔게 며칠 전이었는데. 혹독하게 추웠던 겨울 대신 벚꽃과 라일락 꽃 냄새로 진동하는 요즘이다. 뜨거운 햇살로 이마가 뜨거웠던 여름 같은 날씨가 며 칠 이어지는가 싶더니 어제부터 비가 주룩주룩. 창문을 활짝 열어 빗소리를 듣는다. 하.


5.5살(한국 나이 7세) 율율은 요즘 말이 트여 그동안 못했던 한국말이 많은지 쉬 멈추지 않는다. 오늘은 주말 아침에 자주 먹는 팬케익을 만들어 달라며 나를 깨운다. 계란 값이 금값인 요즘을 핑계 대는 건 아니지만, 이날 계란이 똑 떨어져 다음 날 만들어 준다고 약속하고 어제 장 볼 때 가장 저렴한 15구에 4천 원 대 계란을 사놨다. (2-3천 원대면 유기농 계란을 살 수 있었는데 지난달부터 7천 원부터 1만 원대까지 계란값이 미친 듯이 올라 정부에서는 서민들을 위한 대책으로 대형마트를 상대로 무조건 가격을 내리게 했다. 그래서 4-5천 원이 저렴한 축.) 


월요일 저녁마다 8시까지 과외 공부를 가르치러 가야 하는 재익을 위해 저녁 준비를 빨리 해야 했다. 집에 오는 길에 빠르게 장을 보고 후다닥 비프 파스타를 만들고 있을 때-맥주도 홀짝여 가며- 아이패드를 보고 있던 율율은 계란에 그림을 그려도 될지를 나에게 허락받은 후 계란 하나를 조심히 다루며 그림을 그리고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각자 하던 일ㅡ율은 아이패드 보면서 젤리와 레고를 늘어놓고 부엌 테이블에서 놀고, 난 남편이 나가는 시간 전에 저녁을 먹게 하기 위해 잘 나가는 레스토랑 셰프를 사수로 둔 부주방장 마냥 숙련된 손놀림으로 요리를 하며 시간을 쟀다ㅡ로 돌아가고. 나의 비프 파스타는 재익의 <정말 맛있다. 맛있었다. 어제 파스타 정말 맛있었어>라는 세 번의 칭송을 들었다. 하하.)


나의 태양 이뜬 율리에게, 

(이뜬 율리가 커서 읽어 볼, 첫 편지)


추억으로만 남아 없어질 수 있는 내 라이프 스토리도 조금은 남기고 싶어 다이어리 사설이 길어지네. 우리 율리가 커서 엄마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엄마 아빠가 그리고 이모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얼마나 너에게 잘해줬고, 얼마나 귀하고 귀하게 사랑을 줬는지 알아주면 좋겠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이번 주에 있을 율 유치원 생일파티 때 친구 4명에게 줄 책 선물을 포장하고 있었다. 유치원 버스 시간이 다가와 율이 원하는 팬케익을 만들어줄 시간은 부족했고. 거기에다 선물(Toy) 받기를 좋아하는 이뜬 율리는 아빠가 준비해준 시리얼을 먹으며 나에게 <내 선물도 있어?>하고 묻길래 유치원에서 할 생일 파티 때 생일인 반 친구들이 받을 거라 <없어>라고 하니까, 시리얼을 먹다 말고 굵직한 눈물이 소 눈처럼 긴 속눈썹을 적시는 거 같더니 날씬하고 작은 볼을 타고 빠르게 내려온다… 헉! 이 아침에?! 선물을 그렇게 자주 사주는 데도? 장난인가 싶었다. 요즘 재익과 <트릭 놀이>를 많이 해서 곧 기글 거리며 <Trick~~~!>이라고 말하려나 기대하는데  진심으로 슬퍼하네. <하하> 표정으로 재익과 나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슬퍼하는 아이 유치원 준비물을 챙기면서 <이뜬은 겨울이 생일이니까 겨울이 오면 많이 받을 수 있어>하며 달했고, 재익은 <Don’t be silly buddy>하며 율의 어깨를 톡톡 두들겨 준다. <겨울 언제까지 받을 수 있는데?>라며 집요하게 묻는 율에게 <11월이 되면 재익도 이뜬도 생일이 되니까 그때 선물을 받을 수 있어>라고 했다. 후우. 평소 씩씩하고 해피한 아인데 너무 슬퍼하네.  


불과 지난 이틀 전인 일요일에도 친구 <가니>와 그의 딸 <다운>이와 함께 수영장도 가고~ 홍대 앞 새로 오픈한 토이 샵에 가서 장난감을 사줬다. 그리고 믹슬(=레고 시리즈 중 하나)과 동전(500원짜리 4~6개가 보통 들어가는데, 이뜬은 동전 6개가 들어가는 걸 좋아해서 뽑기 하기로 약속 한 날은 가방 무겁게 동전을 준비해 다닌다.)을 넣고 돌려서 큰 플라스틱 에그를 뽑아 그 안에 들어있는 랜덤 장난감을 조립하는 건 요즘 일주일에 5일은 사주나 보나. 내가(왜 그랬을까'') 재익은 <가끔 자주> 레고 조립 세트를 사준다. 난 그 건 너무 비싸다고 뭐라 하고, 재익은 나에게 제발 그런 자잘한 작은 장난감, 플레이도, 젤리 따위 그만 사주라고 하고. 그래도 난 이뜬이가 매일 같이 <서프라이즈가 있어?>하며 잔뜩 기대에 찬 얼굴을 들이밀면, 작은 거라도 꼭 주고 싶다. 이젠 토이를 받아도 몇 초 기뻐하고 <또 서프라이즈가 있어? 있지?!>하고 묻는 통에 한 개로 먹히지도 않지만.


아이 하나를 <오냐오냐>하며 키우는 거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경우에 어긋난 태도를 보이면 나와 재익은 약속한 듯 차가운 모드로 바뀌고 잘못을 알려주고 반성하게 도와준다. 혼자 할 수 있는 건 습관을 들여주고. 가령 옷을 벗어 <휙!> 던질 게 아니라 꼭 빨래 바구니에 넣기, 화장실을 쓰면 꼭! 무슨 일이 있어도 변기 뚜껑을 닫고(이건 엄마에 대한 <배려>이기 때문에. 재익과 아이 중 누구 하 나 잊어버리고 닫지 않으면 난 보란 듯이 범인을 찾아내 창피와 주의를 준다.-말로만 <사랑한다>가 아닌 평소 습관으로도 <배려>와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손 씻기. 잊어버리고 그냥 나오면(거의 아이패드를 보다가 일을 보러 들어가고 1초도 안 되는 LTE 속도로 손을 씻는다.) 다시 뚜껑을 닫고 손도 다시 씻게 한다.- 간식을 다 먹은 접시나 파우더 밀크(두유+프로틴 파우더)를 다 먹은 컵은 꼭 싱크에 넣게 한다.


영국에 사는 에마 할머니나 닉 할아버지, 강남이면서 창 밖에 계곡과 산과 절이 보이는  곳에 사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그리고 늦게 결혼해 달콤한 신혼을 즐기는 아름다운 심리학자 <라비 이모>, 대기업을 다니는 대부분의 <여직원>들이 임신부터 아이들 학비에 개인 경조사 비용이 평생 나오는 대기업에 <뼈를 묻을 거야>라고 외칠 때, 보수적이고 여성에겐 불합리한 한국 문화에 쩔은 그 대기업을 버리고 스웨덴 IT회사에서 중역을 맡아 활약하고 있는 매력, 능력, 탄력이 철철 흐르는(그녀는 운동으로 다지는 탄탄한 몸매와 타고난 데다 순간순간 노력하는 똑똑한 뇌에서 매력이 넘쳐흐른다. 나의 자매들은 나의 롤모델.) <센아이모>까지. 재익과 내 가족 중 이뜬 율리는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난 이들의 손자이자 조카다. 감사한 사랑을 듬뿍, 아주 듬뿍 받는다. <Lucky boy>가 따로 없다. 장난감을 듬뿍듬뿍 받으며 소포 상자도 뜯고 오픈도 많이 한다. 보통은 장난감이나 그 포장이 플라스틱으로 되어있어  <Re-cycle>에 넣으라고 하면 율율이 알아서 플라스틱 분리수거 함에 넣는다. <너무 잘했어 율~> 하고 칭찬을 해주면 스스로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오늘 생일 선물을 못 받는다는 말에 아침부터 슬퍼하던 이뜬은 재익과 유치원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즐겁게 뛰어가 기분 좋게 차를 타고 갔다고 했다. 아점으로 간단한 요리를 하려고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냈다. 어제 이뜬 율리가 계란 하나에만 그림을 그린 게 아니었다! 숫자 배열이 맞진 않지만, 모든 계란 껍질에 숫자를 써놨다. 서수, 기수, 한국어, 영어로 100도 넘게 읽는데, 그런데 쓰기가 잘 안되는구나... 한국어를 잘하게 된 것만으로도 정말 다행으로 생각하던 터였고 매일 동화책을 읽어주지만, 쓰기 연습도 같이 해야 할 때가 왔다. 비싼 계란이 깨질까 하도 주의를 줘서 조심조심 계란을 다루며 숫자를 썼을 율율의 얼굴을 상상한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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