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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쁨문고 Oct 01. 2024

야구를 계속 봐야 하나요? 새로운 곳에 눈이 가는데.

고난과 역경이 오더라도

안녕하십니까 주니님. 오늘은 특별히 일요일 오후에 편지를 씁니다. 오늘은 자이언츠의 연패를 끊어야 한다는 숙명 아닌 숙명을 가지고 고척을 방문한 날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번 주 토요일까지 야구하는 6일 중 5연패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패를 끊어버리고 승요로서 주니님께 편지를 남기고자 했습니다. 결과는 메신저로 먼저 말씀드렸다시피 석패를 했지만 말입니다.


 이번 주는 배드민턴을 치고 왔습니다. 편지를 우울하게 시작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말을 돌려봅니다. 고등학교 친구의 추천으로 배드민턴을 치러 갔습니다. 어떤 모임에 참석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동호회에 일일 강습에 참석하는 거라 생각했죠. 이미 구력이 기신 분들이 있을 수 있으니 조금 긴장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도 기본적인 운동신경으로 커버가 될 거라 생각했으니 마음 편하게 준비했습니다.


 마음 편하게 최근에 산 트레이닝복 바지와 유난히 새하얀 양말을 골랐습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막을 수 있도록 머리띠도 하나 샀습니다. 배드민턴은 체육관에서 친다고 했으니 운동화 선택도 고민을 했습니다. 최근에 산 러닝화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가볍기도 하고 적당한 마찰력이 있는 러닝화. 새로 시작하는 실내 운동에는 제격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고른 뒤 배드민턴장으로 향했네요.

때가 타버린 러닝화




두근두근 입장합니다

 예상과는 다르게 강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친구의 지인들과 모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배드민턴을 치는 곳이었습니다. 간단한 준비운동이랄 것도 없이 바로 팀을 짜 복식경기를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배드민턴의 룰은 간단하면서도 복잡했습니다. 서브를 넣는 규칙부터 배워야 했습니다. 우선, 복식을 하는 경우 코트를 세로로 반등분 합니다. 머릿속으로 그려보시죠. 그럼 서브를 넣어보겠습니다.


 가운데 가로로 놓인 네트를 기준으로 우리 팀과 상대 팀이 나뉩니다. 그리고 세로로 반 등분을 해봅니다. 그럼 총 네 개의 구획이 생기겠죠. 우리 팀에 두 개, 상대 팀에 두 개. 그럼 저는 우리 코트의 왼쪽에서 서브를 넣는다고 칩시다. 이때 서브는 반드시 대각선으로 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실점을 하게 됩니다. 만약에 제가 서브를 넣었는데 득점을 했다? 그럼 다시 제가 서브를 넣어야 해요. 대신 이번엔 우리 코트의 오른쪽에서 서브를 넣어야 합니다. 역시 대각선으로 보내야만 하고요.


 스포츠 경기 규칙을 글로 설명하려 하니 쉬운 일이 아니네요. 이해가 좀 되셨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이런 규칙들은 시합을 하면서 배워나갔습니다. 그래도 함께 치시는 분들의 수준이 저와 제 친구보단 월등히 좋으셨기 때문에 배우는 느낌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상당히 재미가 있었나 봅니다. 세 시간을 내리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몸을 날렸던지 트레이닝복 바지의 무릎 쪽엔 구멍이 나기도 했습니다.


 함께 치시던 분들은 치는 동안 실력이 느는 게 느껴진다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그들과 실력 차이가 분명하다 보니 조금씩 실력이 늘어감에 따라 맞춰 상대해 주니 가시적인 성장을 느낄 수 있었고, 눈이 셔틀콕에 익숙해지면서 어디로 어떻게 떨어질 수 있는지 예상을 할 수 있으니 스스로도 실력이 느는 기분이 나더라고요. 새로운 취미에 빠져들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취미라는 말을 뱉어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습니다. 지금 하는 취미가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우선 말씀드렸던 것처럼 기타를 배우고 있기도 하고요, 글 쓰는 취미 역시 시간을 꽤 할애해야 하는 취미입니다. 애초에 글쓰기에 몰입하던 때에도 수면시간이 늘 대여섯 시간이었는데, 기타를 치기 시작하면서 수면시간이 네 시간 안팎으로 줄었습니다. 글쓰기에 관심을 덜 주더라도 일단 잠이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최근 방문한 미용실에서 전담 스타일리스트께서 흰머리가 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거든요.


 그리고 우리의 공통분모인 야구를 돌아보려면 시간이 더욱 부족해집니다. 제가 저렇게 무자비하게 취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건 겨울은 야구의 비시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구는 계속 봐야 하는 걸까요? 다시 오늘의 경기를 상기하게 됩니다. 우선 정신 승리로 시작을 하자면요, 제가 오늘 야구장에 좀 늦게 도착했습니다. 4회 초에 도착했단 말이죠. 오늘은 원정 경기였으니 자이언츠가 공격을 하고 있었습니다.

두근두근 입장합니다2


 일요일인 오늘 자이언츠는 이미 5:0으로 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도착하자마자 5:2로 따라잡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7:2로 스코어가 벌어졌지만 맹추격 끝에 7:5로 패배했습니다. 제가 도착한 뒤로 나온 스코어만 따지만 2:5인데, 승요로서 역할은 다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 주 화요일에도 야구를 보러 가기로 했으니 제 기쁨을 위해 승요가 맞았다고 해주세요.


 화딱지 나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새로 오신 김태형 감독께서는 실험해 보고 싶은 작전도 있고, 승부수도 있었을 거란 말입니다. 근데, 이런 모든 전제는 선수들이 제 역할을 다해줘야 한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한 거란 말이죠. 모든 선수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제 역할을 해줘야 작전의 성공률이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올해 저보다 직관을 더 많이 가신 주니님 앞에서 주름을 잡는 느낌이어서 민망하지만, 눈으로 보니 아쉬움이 컸습니다.




 오늘은 더욱이 아쉬웠던 것이, 9회 초 7:4에서 7:5로 따라잡은 1, 3루 2아웃 상황. 우리 타자는 최근 5할 넘는 물오른 타격을 보여주던 이학주 선수. 홈런은 아니더라도 추격의 불씨를 살릴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컸습니다. 2스트라이크. 승부수가 필요했습니다. 투수가 공을 던졌습니다. 높은 볼이 들어왔어요. 최근 타격감이 좋은 이학주 선수는 자연스럽게 몸을 뒤로 빼면서 볼 카운트를 올렸죠. 그런데 갑자기 포수가 일어서면서 공을 2루로 송구합니다. 그리고 게임이 끝나버렸습니다.


 단타에도 동점을 만들려면 주자가 2, 3루인 상황이 유리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아는 상황이었으니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손호영 선수의 내야 수비가 든든하기 때문에 대주자를 쓰기 힘들었던 부분도 공감이 됩니다. 그래도 타격감이 좋았던 이학주 선수 앞에서 주루사 한다니 이건 너무 아쉬운 결과였습니다. 오늘은 시즌 첫 경기였기도 하고 충분히 기세가 오른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헤비 한 팬처럼 상황을 묘사하게 되네요.


 배트를 휘두르면서 삼진을 당하는 것도, 땅볼을 치거나 플라이로 아웃이 되면서 경기에 패배하는 날에는 마음이 허합니다. 주중 6연패를 했다는 사실도 서운하기도 하고 말이죠. 이걸 지켜봤던 친구는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 아니냐'라고 합니다. 인생을 축소해서 보는데도 참 쓰네요. 예상치 못한 전개에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소리를 질렀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아마 야구를 보러 가는 이유는 이런 소소한 기쁨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스포츠를 스포츠로 경험하고 싶은데, 계속 삶에 비유하게 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이언츠 팬이라서일까요? 계속 새로운 취미가 생기는 이유도 삶에서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나가는 것도 빠듯한 삶인데 축소판에서도 역경을 맞이하기 버거운 걸까요? 응원가에 고난과 역경을 이겨나간다는 가사가 가장 많은 팀이 롯데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상당히 좋아하는 응원가들인데 개사하는 건 어떨까도 싶습니다. 어떤 가수가 '노래 제목에 따라 가수의 삶이 변한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최근 자이언츠의 깃발 아재의 시구가 있었습니다. '롯데가 이겨야 집구석이 조용하다'라는 깃발을 들고 다니는 롯데에서 유명한 팬이 있습니다. 이번에 시구를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더군요. '팬은 죄가 없습니다.' 코웃음이 나왔습니다. 직관을 가는 날 햄버거를 먹고서 이겼다면 다음 직관 때도 햄버거를 먹는 우리들. 이겼던 날을 최대한 재현하면서 승리도 재현해 주길 바라는 팬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팬들은 죄가 없습니다'란 말을 들으니 주니님 편지의 '평소처럼, 평소와 달리'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결이 다르다는 걸 압니다. 그런데 야구 직관을 가려 준비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니 저만큼 어울리는 표현이 없더라고요. 깃발 아재의 시구 전 말씀에 코웃음이 나왔던 이유에는 뇌리에 있던 주니님의 편지가 포함되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왜 그 글귀가 생각났는지 지금도 괜히 웃음이 나오네요.




이번엔 주니님을 알기 위한 질문으로써 '최근'에 관심이 생긴 분야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기존에 있던 취미에 질려가면서 생긴 취미라거나, 새로 눈길을 끈 것이 있거나 말이에요. 저에게 이번 주 평소와 다른 경험은 배드민턴이었습니다. 이번에 모였던 멤버들에게는 분기에 한 번씩은 참석하겠다 공표했습니다. 모임의 장소가 집에서 차를 몰아 한 시간 반정도 떨어진 곳이라 거리가 매주 가기엔 가까운 곳은 아니겠더라고요.


그래도 세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뛴 보람으로 샤워 후 잰 몸무게가 2킬로 빠진 모습을 보면서 괜스레 뿌듯함도 느꼈습니다. 남미 여행을 준비하면서 샀던 트레이닝복이 찢어졌으니 새로운 복장도 준비해야겠고 말입니다. 이번 주에도 새로운 경험과 익숙한 경험이 혼재되었네요. 자이언츠가 수렁에 빠져있을 땐 지금보다 더 라이트 해져버린 후 잠시 다른 취미를 즐겨버리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몇 없는 승리의 순간을 놓친다고 하더라도 행복한 하루가 저에겐 더 큰 가치가 될 때가 있습니다. 이러고선 다시 중계를 보거나 직관을 찾아가겠지만, 일상의 바쁜 삶이 스트레스를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 해탈한 척 슬퍼하는 중일 테니까요.. 그래서 주니님의 새로운 취미나 관심사를 들려주세요. 상기하시면서 잠시 눈을 돌려보도록 하시죠.


- 꽤 길게 새로운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챙겨본 라이트 한 팬 드리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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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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